박한선·구형찬 저/창비/360쪽/2만원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지도 1년이 넘었다.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나타난 상황을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인식하지만 감염병을 둘러싼 여러 재난 상황은 이미 인류가 수없이 겪었던 사건들이다.

매년 150만명이 결핵으로 사망하고, 40만명이 말라리아로, 70만명이 에이즈로 사망한다. 과학기술과 의료산업이 이토록 발전했음에도 왜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이처럼 감염병을 둘러싼 상황을 인간 본성(human nature)과 인간다움(humanity)의 차원에서 접근한 신간 <감염병 인류>가 출간됐다. 이 책은 감염병 상황에서 발생하는 혐오 심리, 타자에 대한 배제가 질병에 맞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행동면역체계에서 비롯한 것임을 진화사 관점에서 조명한다.

저자인 신경인류학자 박한선과 인지종교학자 구형찬은 균과 인류과 공진화(여러 종이 서로 영향을 주며 진화하는 현상)해 온 역사와 감염병으로 인해 생겨난 사회문화적 관습의 사례를 모아 신간에 담았다.

이들은 지난 500만년의 진화사 전체가 감염균에 맞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인류의 투쟁으로 가득하고, 이러한 기억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감염병 인류’인 것이다.

인류의 진화사 역시 감염병의 진화사다. 인류는 끊임없이 감염병을 만들고, 만들어낸 감염병을 두려워하고, 그 원인을 애꿎은 곳에 전가하면서 증오와 혐오, 공포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현상은 인류가 감염병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행동에서 비롯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미국 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예방한다며 클로로퀸(말라리아 치료약)을 먹었고, 이란에서는 바이러스를 죽인다며 소독용 알코올을 먹고 수백명이 죽었으며, 한국에서는 마늘과 김치의 효능을 치켜세우는 이들이 있다.

또한 팬데믹 과정에서 나타난 종교,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 혐오와 배제의 시선이 차례로 옮겨간 것을 떠올리더라도 우리 안에 자리한 원시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예측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수백만년간 감염병와 싸워 온 조상의 이야기를 통해 팬데믹의 위기와 갈등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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