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주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전공의
"뜨겁고 처절했던 2020년 여름을 기억하십니까?"

전국의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가득 모여 올바른 의료에 대한 염원 하나로 “Do no harm, Do right”을 외쳤던 여의대로는, 어느덧 쌀쌀한 겨울을 지나 벚꽃 내리는 봄을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왜인지 전공의들의 눈에 비친 의료계 현실은 당장이라도 얼어붙을 것 마냥 차갑고 아리기만 합니다.

진료 현장은 여전히 전쟁터와 같고, 힘없는 의사들은 또다시 여기저기 치이며 손가락질 받기 일쑤입니다. 필수과 지원율은 반 토막이 났고, 어깨가 축 늘어진 후배들은 꿈꾸던 미래를 포기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저 매일같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업무에 구멍이나 내지 않는 것이, 전공의들이 살아가는 하루의 최선이라 착잡하고 공허한 현실입니다.

#1. 전공의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의협회장이 되어 주십시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의 독단적인 합의로 짓밟힌 전공의들의 눈물을 기억하십니까. 크레인 위에 올라설 용기만큼, 왜곡된 의료제도를 바로 잡아 옳은 가치, 바른 의료의 실현을 이루겠다는 대표단체장의 열망 또한 높고 크리라 기대했습니다. 허나 아직도 잊기 힘든 9월 4일, 모든 기대는 처절히 무너져 내렸고, 이후로 지속된 부끄러운 정치적 행보는 생채기가 난 청년 의사들의 마음을 두세 차례 더 난도질 했습니다.

단지 보여주기 식의 쇼가 아닌, 바닥까지 추락한 세대 간 신뢰를 회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영향력을 보여주십시오. 부디, 힘없는 저희 전공의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정의로운 어른, 약속을 지키는 책임감 있고 진실 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2. 다양한 지역과 직역을 아우르는, 진정한 대표단체로서의 의협을 세워 주십시오.

의료계만큼 파편처럼 흩어진 조직은 대한민국의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지역별로, 또 직역별로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서로를 향해 비난하고 손가락질 합니다. 대표단체인 의협마저도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이리 저리 끌려가기 일쑤이며, 이에 다수의 회원들은 기대도 관심도 저버린 채 회비납부의무조차 외면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조직력을 회복하고, 때론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불협화음을 조율하여, 진정한 의료계의 화합과 통합을 이뤄 주십시오. 교수, 개원의, 봉직의, 전공의 등 다양한 직역의 의견을 청취하며, 시도의사회와 대의원회 또한 서로 건강하게 견제할 수 있는 의협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잃어버린 자존감과 전문가로서의 영향력을 되찾고, 너도나도 회비를 내고 참여하고 싶은, 하나 된 의료계의 참 리더가 되어 주십시오.

#3. 혁신적이고 효율적인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여, 일 잘하는 의협을 만들어 주십시오.

의료계는 복잡한 역학과 구조가 맞물리는 다양한 문제들이 산재한 집단입니다. 몇 년째 의협 회장 후보들의 공약이 별반 달라진 게 없을 만큼, 임기 내 한 가지만 해결하기에도 어마어마하게 힘들고 어려운 한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내부개혁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을, 모두가 깨닫고 알고 있는 현실입니다.

매사 끌려 다니는 소극적이고 안일한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더욱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의협으로 개혁해 주십시오. '화합, 헌신, 능력, 공정, 자율'의 원칙을 바탕으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젊고 능력 있는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해 주십시오. 창의적이고 훌륭한 아이디어들이 공중에 떠돌다 사라지는 안타까운 일을 막아주시고, 효율적인 의사소통 체계와 혁신적인 거버넌스를 확립하여, 현명하고 일 잘하는 의협의 리더가 되어주십시오.

#4. 전공의들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귀 기울이고 노력하는 의협 회장이 되어 주십시오.

의료계 정치 속에서 매번 전공의들은 선거 혹은 투쟁 때에만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아무도 전공의들의 수련병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있는지, 수련 평가는 잘 이뤄지고 있는지, 전공의법에 따른 복지와 인권이 잘 지켜지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표밭 혹은 총알받이로 여기기 전에, 전공의들이 배우는 과정의 의사들임을, 그리고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주요 자원임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수련병원의 역할과 기준, 수련환경평가의 중요성을 반드시 되새겨 주십시오.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의 ‘수련환경평가위원회’ 구성을 바로 잡고 보다 진실 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대표단체로서 충분한 노력과 책임을 다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의료 환경이 더욱 안전하고 또 마땅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근본적인 차원부터 고민하는 지혜로운 리더가 되어 주십시오.

이제껏 그래왔듯 저희 전공의들은, 최선을 다해 배우고 밤낮없이 환자들을 돌보며, 저희들의 일터이자 쉼터인 진료 현장을 지키겠습니다.

이필수 제41대 의협 회장 당선인은 부디 회원들의 믿음과 지지를 바탕으로, 전공의들이 꿈꿨던 바른 의료와 옳은 가치의 실현을 이뤄주시기를, 그로서 상상 이상의 진짜 변화를 만들어 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대한민국 전공의 1인, 서연주 올림.

서연주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전공의 3년차로 23기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여의도성모병원 대표로 가톨릭중앙의료원 전공의협의회 집행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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