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환자커뮤니티서 ‘남는 약’ 거래…환자단체 "경제적 부담 때문”
의료진 "의약품 오·남용 우려…선의로 했어도 환자 위험 가능성"

폐암치료제 '잴코리' 나눔 게시물
폐암치료제 '잴코리' 나눔 게시물

"무료 나눔, ‘로무스틴’·‘나툴란’(뇌종양치료제) 필요한 분."

"‘엑스탄디’(전립선암치료제) 한 달 치 판매합니다."

일부 암 환자 커뮤니티에선 이처럼 복용을 중단하거나 복용하고 남은 희귀약·항암제를 ‘무료나눔’ 또는 판매하는 글을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로무스틴 나툴란 둘 다 필요합니다. 6차 중 3차 치료를 하고 있는데 다음 주 금요일에 희귀의약품을 신청해야 합니다. 기초수급자로 선정돼 병원비나 약국 (비용)은 거의 무상인데 희귀의약품만 비급여라 가격이 좀 있어서요. 아직도 항암 (치료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뇌종양치료제 '로무스틴', '나츄란' 나눔 게시물
뇌종양치료제 '로무스틴', '나츄란' 나눔 게시물

또한 지난 8월 한 암 환자 커뮤니티에서는 뇌종양치료제 로무스틴과 나툴란을 무료로 나눠준다는 글에 이같은 댓글들이 달렸다. 이 작성자는 다른 ‘로무스틴’‧‘나툴란’ 나눔 게시물에도 추가적으로 댓글을 달기도 했다.

‘로무스틴’과 ‘나툴란’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 공급하는 희귀의약품이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희귀난치질환 환자를 위해 국내에 유통되지 않는 의약품을 직접 수입해서 절차에 따라 공급하고 있다.

또 다른 암환자 커뮤니티에선 화이자의 폐암 치료제 잴코리를 나눠주겠다는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소세포폐암 ROS-1과 ALK에 사용되는 표적치료제 잴코리 한 박스 나눔합니다(2022년 1월까지 복용가능). 보험이 돼도 워낙 고가의 약이라 10만원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필요하신 분들은 연락주세요.”

이밖에 아스텔라스의 전립선암치료제 ‘엑스탄디’와 화이자의 유방암치료제 ‘입랜스’, 바이엘의 간암치료제 ‘넥사바’ 등을 판매한다는 글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었다.

선의가 독이 될 수 있는 항암제 무료나눔

하지만 전문의약품은 판매나 무료 나눔 형태로 거래할 수 없게 돼 있다. 즉, 불법이다. 여기에 항암제 등과 같이 중증 질환에 사용되는 약은 부작용 발생이 드물지 않은데, 이렇게 개인 간 거래될 경우 부작용 관리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자칫 약화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본지가 일부 환자 커뮤니티에서 확인한 거래 의약품은 ▲뇌종양치료제 ‘로무스틴’·’나툴란’ ▲한국화이자의 폐암치료제 ‘잴코리’·유방암치료제 ‘입랜스’ ▲한국아스텔라스의 전립선암치료제 ‘엑스탄디’ ▲바이엘코리아의 간암치료제 ‘넥사바’·’스티바가’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폐암치료제 ‘타그리소’ 등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거래는 불법일뿐만 아니라, 선의가 바탕이 된 무료나눔이 되레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태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전에 치료하던 환자 중 비슷한 사례가 있어) 범죄행위라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들의 절실함으로 인해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도 “로무스틴은 니트로소유레아의 대표적인 약제로 과량 복용하면 심한 골수 독성이 발생할 수 있고, 프로카바진(나툴란)은 알킬화제로 약물 및 음식물과 상호작용하며 독성을 유발하기 때문에 (전문의 처방 없이 임의로 복용하는 건)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로무스틴과 나툴란의 설명서에는 백혈구 감소와 급성백혈병, 골수이형성증후군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고지함과 동시에 질병 징후가 동일하더라도 타인에게 전달할 경우 해를 끼칠 수 있음도 명시돼 있다. 또 로무스틴은 혈액 형성 시스템의 기능을 손상시킬 수 있으며 이 독성은 누적되므로 의사는 환자의 복용량을 조정할 수 있다고, ‘나툴란’은 의사의 지침에 따라 정확하게 복용하도록 각각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순천향대천안병원 소화기내과 김홍수 교수는 “약의 효과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을 뿐더러, 약을 순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임의 복용 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넥사바를 복용할 때 드물게 뇌출혈이 나타날 수 있는데 예상할 수 없는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환자가 대응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이어 “대학병원에서 넥사바를 처방할 때도 여러 번 설명하고 환자들에게 위험성을 충분히 알린 뒤 복용케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연희 교수도 “(약 무료나눔을)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더라도 환자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암은 돈과의 싸움”

항암제를 사적으로 거래하는 것이 불법이며 부작용 발생 등을 우려하고 있는 환자들도 있었다.

모 커뮤니티에선 전문의약품을 나누면 안 된다는 취지의 게시물을 작성해 여러 회원들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이 커뮤니티의 전문의약품 나눔 금지 게시물 작성자는 “필요하지 않은 의약품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은 백 번 이해한다”면서도 “환자를 보고 의사가 필요 여부를 판단하고 처방해 주는 것이므로 절대 나눔을 하면 안 될 것 같다. 근처 약국이나 보건소에 반납하는 게 맞다”고 했다. 이 게시물에는 “선의로 하는 거지만 서로 자제해야 한다. 용기 있는 글에 박수를 보낸다”, “전문의약품은 처방 없이 복용하면 안 되니까 나눔도 안 되는 게 맞다. 옳은 말이다”, “카페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의약품 나눔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항암제가 적게는 연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연 수천만원 이상 되는 고가의약품인 만큼, 나눔이나 소액을 받고 판매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이 커뮤니티에 비급여로 구입한 200만원 상당의 넥사바 210정을 1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오자, “(전문)약을 이렇게 판매해도 되는 건가요?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라는 댓글에 달렸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다시 “암은 돈과의 싸움입니다. 비급여로 구입한 약을 이정도 가격에 파는 건 나눔으로 봐도 무방할듯합니다”, “치료가 급하시거나 구하기 힘드신 분들을 위해 양도하는 거지 돈의 목적이 아니니 이런 부분은 민감하게 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등 판매자를 옹호하는 의견들이 이어졌다.

“돈이 부족한 환자들에겐 나눔이 희망”

항암제 나눔 또는 판매를 옹호하는 주장의 주된 이유는 ‘비싼 약값 때문’이었다.

간사랑동우회 윤구현 대표는 환자들 간 무료나눔 또는 판매가 이뤄지는 것에 대해 “비급여로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생긴 문제”라며 “약값으로 한 달에 몇 백만 원을 지불하면서 집을 파는 환자들에게 위험이 있으니 (약을 싸게 구매)하지 말라고 한다고 안 하겠나. 사고 위험이 존재하지만 돈이 부족해 치료를 중단하는 환자들에게는 이게 희망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지 ‘불법이니 하지 말라’는 말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환자단체 관계자도 “수익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약이 유통되는 것은 마땅히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내일 모레 당장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선의로 약을 나누는 것까지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어렵다. 환우 보호자로서 절박한 심정을 알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환자들의 어려운 상황은 의료진들도 인지하며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홍수 교수는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이런 경로(암 환자 커뮤니티)를 통해 약을 싸게 구입해서 치료를 받는다”며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급여 제한을 완화하거나 제한적 비급여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박연희 교수는 “약을 처방하는 최소 단위가 3주기 때문에 다른 용량 등으로 처방을 변경할 경우 환자들에게 남는 약이 발생한다”며 “이렇게 남은 약이 일부 환자들 사이에서 유통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의약품 유통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환자 간 항암제 거래는 불법이며, 절차에 따르지 않은 복용은 정당한 피해 구제를 받기도 어렵다고 했다.

식약처 윤지상 주무관은 “의약품은 약국에서 판매하는 경우가 아니면 불법”이라며 “전문의약품은 정식으로 처방을 받은 뒤에 복용해야 부작용 발생 시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다. 임의로 복용하면 부작용이 발생해도 보상을 받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해당 항암제를 공급하는 주요 제약사들은 환자들 간 무료나눔 등의 거래가 이뤄지는 걸 “몰랐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한국화이자제약과 바이엘코리아는 각각 "일부 암 환자 커뮤니티에서 환자 간 약 유통이 이뤄지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전문의약품은 전문가의 처방과 약사법에 따라 유통, 구매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아스텔라스제약 관계자도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면서도 “직접 답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내부적으로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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