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의대 정원으로 설립되는 공공의대
교육권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던 학생들
“책임 떠넘기기 급급했던 정부 부처들”
“공공의대 실패 시 책임질 각오돼 있나”

의사들이 ‘공공의대 신설’에 부정적인 이유는 ‘서남의대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서남의대가 신설될 때도 의료계는 반대했다. 그리고 부실 교육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지만 정부는 눈을 감았다. 그러다 서남대 설립자의 교비 횡령 사건이 계기가 돼 2018년 2월 폐교됐다. 그것도 교비 횡령 사건이 발생한 지 6년 만이다. 지난 1991년 설립된 서남대는 27년 만에,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여전히 서남의대가 상처로 남아 있다. 서남의대 졸업생과 재학 당시 모교가 사라져 전북의대와 원광의대로 흩어진 학생들이다. 이들은 서남의대가 다시 거론되는 최근 상황이 불편하다.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공공의대 신설 계획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학생들을 누가, 어떻게 가르친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부속병원 없이 공공의료기관을 교육협력병원으로 지정해 임상실습 교육 등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서남의대가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서남의대도 부속병원이 없었다.

전라북도 남원시에 위치했던 서남대 의과대학은 지난 2018년 2월 폐교됐다.
전라북도 남원시에 위치했던 서남대 의과대학은 지난 2018년 2월 폐교됐다.

서남의대 정원으로 ‘공공의전원’ 설립 추진

정부는 지난 7월 23일 폐교된 서남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해 ‘국립공공의료대학원’을 설립하고 오는 2023년 3월 개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의대라기보다 의학전문대학원 개념이다. 역학조사관, 감염내과 등 필수분야 인재를 양성하는 일종의 ‘의무사관학교’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도별로 학생을 일정 비율 배분해서 선발하고 10년 동안 공공보건의료기관에 종사하는 것을 조건으로 입학금, 수업료, 실습비, 기숙사비 등을 모두 국고로 지원한다. 의무 복무기간 10년에는 전문의와 세부전문의 수련 기간도 포함된다.

의대 부속병원은 설립하지 않고 임상실습 등을 위해 필요한 교육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과 남원의료원을 활용할 계획이다. 그외 지방의료원, 국립대병원, 국립암센터, 산재의료원, 국립재활원, 국립정신병원, 군의료기관 등 공공보건의료기관이 교육협력병원으로 지정된다.

모교가 상처로 남은 서남의대 졸업생들

학교 설립자의 교비 횡령 사건으로 한창 시끄러웠던 시절 서남의대를 다녔던 의사 A씨는 현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실패한 정책을 왜 반복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 교육부가 인정한 서남의대에 들어갔지만 ‘부실의대’라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다. 그 꼬리표를 떼기 위해 서남의대생들은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했다.

“최근 동문들을 만났는데 서남의대 얘기가 또 나오는 요즘 상황이 참담하다고 하더라. 서남의대는 우리에게 상처다. 의사가 되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교육환경이 따라주지 못해 개인적으로 더 노력했다. 의사는 실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끝이다. 하지만 여전히 서남의대를 졸업했다고 하면 부실한 교육을 받은 의사로 보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그는 이번 인터뷰로 동문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지 모른다며 걱정했다(그가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경험은 공공의대 설립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했다. 정부는 2024년 3월 공공의대(국립공공의료대학원)를 개교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남원시 등에서 의대 설립 부지를 매입했다는 소식만 들릴 뿐이다. 그는 “공공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실력 없는 의사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으려면 재정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교수진 등 교육 인프라도 갖춰야 한다. 현재는 그런 고민 없이 성급하게 밀어붙이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서남의대 재학생 150여명은 지난 2016년 7월 12일 대한의사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 정상화를 요구한 뒤 침묵시위를 이어갔다.
서남의대 재학생 150여명은 지난 2016년 7월 12일 대한의사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 정상화를 요구한 뒤 침묵시위를 이어갔다.

“의대만 설립하면 다 되는 줄”…서남의대 기억해야

그가 공공의대 설립 졸속 추진을 우려하는 이유는 의사가 되기 위해 그곳에 입학할 학생들 때문이다. 당시 서남의대생들은 학업에만 정진할 수 없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교육권을 스스로 확보하기 위해 교육부와 복지부, 국회를 찾아다녀야 했다.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설립자의 횡령 사건이 터지고 폐교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정작 폐교되기까지 6년이 걸렸다. 한 학생이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학교가 언제 폐교될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된 셈이다. 정부가 좋은 취지로 공공의대를 설립하겠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학교만 설립하면 알아서 굴러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부실 교육 이야기가 나오면 그 학교를 졸업한 의사가 ‘내가 공공의대 출신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교육권 보장 요구에 책임 떠넘기기 급급했던 교육부·복지부”

서남의대 설립을 허가한 정부는 교육권을 확보해 달라는 학생들의 목소리에는 침묵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남의대생들은 전북과 서울, 경기도를 오가야 했다. 그는 “학생들은 불안한 상황이 계속됐는데 정작 외부에서는 서남의대가 폐교되면 그 정원을 가져갈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교육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며 “제일 억울하고 싫었던 부분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했다는 점이다. 어디에 호소를 해야할지 몰라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집회를 열기도 했다”고 말했다.

“누가 뭐래도 피해자는 당시 학생들이다. 더 슬펐던 것은 학생들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서 정부나 지자체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때도 정치권의 관심은 의사 교육이 아니라 의사 수가 아니었을까. 학생들을 어떻게, 어떤 의사로 양성할지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는 없었고, 서남의대가 폐교되면 어느 지역에서 정원을 가져갈지에 온갖 관심이 쏠려 있었다.”

“의전원제 도입으로 의과학자 얼마나 양성했나”

그에게 정부가 설립하려는 공공의대에 대해 묻자 “교수진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공공의료에 헌신하는 의사들을 양성하겠다는 곳이니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분들이 교수로 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사명감이 교육으로 생길지 모르겠다. 오히려 필수의료 분야에서 헌신하는 의사들이 사명감을 잃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전문가로서 존중해주는 게 먼저 아니냐”며 “의학전문대학원제도도 이공계 출신 의과학자 양성을 위한 목적으로 도입했다. 그런데 지금은 의전원 대부분이 사라졌다. 의전원체제가 유지되는 동안 의과학자는 얼마나 많이 양성됐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공공의대 신설 계획을 발표한 후 지역별 신설 의대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가 공공의대 신설 계획을 발표한 후 지역별 신설 의대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 공공의대 제 역할 못하면 책임질 각오 돼 있나”

부속병원을 설립하지 않고 남원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을 교육병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위탁교육이나 교육협력병원 관계로는 한계가 있었고, 학생들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가르치는 분들도 어떤 마음을 갖고 학생들을 교육하는지 분명 차이가 있었다. 결국에는 학생 교육을 체계적으로 담당하면서도 전공의 수련병원으로서 역할도 할 수 있는, 일정 조건과 시스템을 갖춘 의대 부속병원이 꼭 필요하다. 학생들은 교수뿐만 아니라 전공의와 다른 의료진에게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의대 설립을 추진하는 목적이 필수의료 분야 중심의 인재 양성이라면, 교육병원으로 지정하려는 그 병원의 구성원과 시스템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것을 평가하고 설계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의학 교육 관련 전문가들이어야 한다.”

그는 “공공의대는 정부가 직접 투자한다. 의대 설립 비용뿐만 아니라 매년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며 “그런데 10년, 20년 후 그 ‘공공재 의사’가 필수의료 분야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정부가 책임질 각오가 돼 있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코로나19 관련 정책 논의할 시기 아닌가”

의료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공공의대 설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지자체별 의대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서남의대가 있었던 남원시는 의대 설립 부지까지 마련해 놨다. 남원의료원 인근 부지로 이 중 일부는 토지보상도 끝난 상태다.

이런 상황에 대해 그는 씁쓸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정부와 지자체를 향해 “코로나19로 인해 정부와 의료진, 국민들 모두 고생하는 이 시점에서는 방역과 확진자 진료 등에 필요한 정책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의대를 신설하려는 정부나, 이미 우리 지역에 의대 유치를 완료했다고 떠들어대는 지자체가 진심으로 지역의료체계 개선과 공공의료 기능 강화를 원하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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