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신의철 교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의사와 정부의 갈등 상황이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비록 의대를 나오고 의사면허증은 있지만 임상에 종사하지 않는 필자이기에 적어도 밥그릇 때문이라는 비난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펜을 들었다.

신의철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신의철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현재 한국의 의료 현실이 크게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에는 의사건 정부건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나는 가끔 나의 노후를 걱정하곤 한다. 한국 의료가 지금처럼 가다간 아마 나중에 필요할 때 내 몸을 맡길 흉부외과 의사가 없을까봐…. 서울에 집중되고 지방이 무너지는 것이 한국에서 어디 의료만의 문제이겠냐 마는 지방의 의료 현실은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누군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면, 먼저 왜 이러한 문제가 생겼는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다. 그리고 난 후 올바른 처방과 치료가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전국민 건강보험을 도입할 때부터 누적되어 온 이 모든 난맥을 단순히 의사 수를 좀 늘리고 공공의대를 설립한다고 해결되리라 믿는 정부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귀찮으니 그냥 아무 처방이나 내리는 돌팔이 의사와 같다. 아니면, 이것이 해결 방법이 아닌 것을 잘 알지만 다른 이유로 이러한 정책을 밀어붙이는지도 모르지만…. 언론을 보니, 정부에서 말하는 논리 중에 이미 이러한 정책을 상당히 추진했기 때문에 되돌리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나는 행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떤 정책을 추진하다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들면 그 시기가 언제라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말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이번 의사들의 파업에 단초가 되었지만, 언론에 크게 부각되지는 않은 ‘첩약 급여화’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구구절절 설명할 것도 없이, 현대 문명국가라면 일어날 수 없는 정책이 21세기 나름 선진국이라는 한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효능은 검증되었지만 건강보험 급여항목에 포함되지 못해 처방을 못 받는 신약이 있음을 고려할 때, ‘첩약 급여화’는 당장 철회되어야 할 정책이다. 온 국민이 의료보험이라는 한 주머니를 공유하는 우리나라에서, 과학적 방법론, 즉 근거중심 의학으로 증명되지 못한 의료행위는 발을 붙이지 못 하게 해야 마땅하다.

이번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하여 의과학자 양성 사업도 항목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의사이자 과학자인 의과학자의 한 명으로서 나도 그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의사를 ‘투입할 자산’으로만 보는 정부가 무턱대고 나선다고 의과학자가 양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정부의 의료정책 입안자들은 ‘진단이 정확해야 치료도 올바르다’는 말을 명심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잘못된 의료정책에 항의하며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젊은 의사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당신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이 글뿐이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 글이라도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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