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사태에서 고전하고 있으나, 여전히 영국의 대표적 자랑거리 중 하나가 무상의료제도이자 국영체제인 ‘국립의료제도(National Health System, NHS)’다. 심각한 전염병 시대를 맞아 ‘NHS’라는 이니셜을 뒤집어 ‘SHN’을 전면에 내세우며 “Stay Home Now”라는 강렬한 메시지로 이목을 끌기도 했다. NHS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싹터 형성된 영국 국민의 일치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전후 국민적 연대(solidarity) 의식에서 의료문제 해결을 위해 물꼬가 튼 것이다. 물론, 국립의료제도라고 표기하였으나 영국을 구성하는 4개의 왕국이 각각의 국립의료제도를 갖고 있으며 그 중 영란(England)은 우리나라와 영토와 인구 규모가 비슷한 수준이다. 영란의 NHS 2019년 예산은 한화로 214조원에 이르고, 약 15만 명의 의사를 고용하고 있다.

영국의사회(British Medical Association)는 단체의 성격을 의사노조(Trade Union)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NHS는 우리나라의 의료사회주의자들이 즐겨 벤치마킹하는 의료제도이기도 하다. 의사회가 노조의 위치에서 NHS에 고용된 의사는 조합원으로 당당하게 노조활동에 대한 시간적 보상과 권리적인 보장도 받고 있다. 당연히 노조로서의 역량이나 실질적인 정치적 역량 또한 대단한 수준이다. 반면에, 의사주도로 별도로 설립한 영국의학협회(General Medical Council)는 자율규제가 강하여 영국사회가 의사에 대한 확고한 신뢰감을 형성케 하는 기반이 된다.

한국 의료사회주의자의 이데아 NHS, 영국의사 권익보호 자율규제 BMA-GMC 투 트랙

영국의사회가 보유하고 유지하는 오랜 기간의 이익단체 경험을 알아보기 위해 대한의사협회 중앙 대의원회와 유사한 영국의사회 대표자회의(Representative Meeting)의 2019년 회의록을 문헌검색으로 살펴보았다. 회의록에서 흥미로운 것은 지역단위의 작은 분회나 지회에서 올린 안건 중에서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여 발생할 수 있는 외국자본의 공격적인 영국침입에 대한 경고를 BMA의 공식 정책 아젠더(Policy Agenda)로 채택하여 상정했다는 대목이다. 특히, 미국 의료자본의 영국 침투에 대비하라는 주문도 눈에 쏙 들어왔다. 그리고 최근 등장하는 영국의 사립 의료기관에 대한 경계심도 드러나 있었다. 회의록을 잘 살펴보면 영국 의사들은 NHS를 지지하고 NHS 체계가 조금도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게 영국은 오로지 국립건강제도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엄연히 사립기관도 존재한다. 이들은 환자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강조한다. 그리고 국립건강제도와 같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나름대로 그 존재 이유를 친절하고 정확히 밝히고 있다.

영국의 의료제도라면 우선 ‘무상의료’와 ‘주치의제도’를 떠올린다. 우리나라에서 정부나 시민단체가 주치의 제도를 주장하면 우리 의료계는 또 다른 정부의 규제가 아닌지 정부에 대한 커다란 의구심을 갖고 긴장의 각을 세운다. 여기에는 사전 피해의식도 더해진다. 그런데 반하여 일각에서는 주치의 제도가 근본인 영국의 의료제도를 왜 영국 의사들은 적극적으로 지지하는지에 대해 강한 궁금증이 생긴다. 통념적으로 영국의 의료제도는 모두가 무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무상의료라는 개념은 이용하는 집단의 관점인 것이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 의사나 병원은 어떤 재원과 소득으로 생존하는가? 단순하면서도 지극히 당연한 질문이다. 국가운영보험제도가 어떤 형태든 간에 사용된 의료비가 실제로 세금에서 아니면 의료보험에서 지불이 되던 간에 어딘가에 ‘근로’나 ‘자본’의 투입이 이루어 졌으면 여기에는 적정한 보상과 지불이 따르는 것은 별도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무상의료’ 순수 공짜 개념 착각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 재원 국영시스템 이해해야

우리나라 의사들이 경계하는 주치의 제도가 근간인 영국의 NHS를 무슨 이유로 영국 의사들은 지지하는가를 살펴보던 중 영국의 NHS 소속 병원(NHS Trust)의 초진료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를 보고 더 이상 조사가 필요 없겠다는 쉬운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전문과목별로 초진료의 차이가 있으나, 영국 병원의 초진료가 우리나라 돈으로 약 25만원(National Price of £168)이 넘는 수준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토대를 갖춘 의료제도라면 전 세계 어떤 의사들이 지지하지 않을 수 없는지 명확하게 와 닿았다. 영국의 일반의(General Practitioner)는 일종의 소규모 사업으로 자신에게 등록된 환자의 기본적인 관리와 일차 진료 관련 행위수가로 종합적으로 산정되어 표준 초진료 계산의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등록된 환자 1인당 연간 지불액이 평균 160파운드에 가깝다. 연 간 단 한 번도 주치의를 만나지 않은 사람도 있는 반면 여러 번 찾아온 환자도 있다. 영국에서 외래진료는 연 평균 5건이고, 우리나라는 단순한 수치상으로 3배가 넘는 16.6건을 기록한다. 영국인은 연 평균 3회 정도 주치의인 GP를 만난다고 한다. 인두제가 기본인 영국에서 주치의의 초진료로 분명히 표시된 자료는 없다. 다만 대략적으로 보면, 주치의 진찰료는 35 파운드에서 50파운드 정도로 한화로 계산하면 약 5만원에서 8만원 사이에 해당되는 비용임을 추산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 의사의 수입구조에 대한 보다 상세한 자료는 NHS에 소상히 공개되고 있는 방대한 양의 자료로 투명성을 담보로 제공되고 있어 의사 수익구조의 신뢰도에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환자의 수진 횟수가 우리나라보다 낮아도 영국의 의사수입은 아직도 전 세계 톱 10 국가 순위에 들어간다. 미국 이외 나머지 9개의 의사 고소득 국가 모두 세금이나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달리 말하면,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거나 혹은 의료가 공공재인 국가라고 해서 의료 노동에 대한 가치를 정부 마음대로 함부로 산정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영국과 한국 초진료 25만원 VS 1만5천원…박리다매 의료노동 가치는 사치에 불과

2020년 2월 국회의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우리나라 국민의 의료서비스 이용 현황과 시사점’을 보면, 우리나라 적은 수의 의사가 많은 수의 외래환자를 진료한다는 것이 진찰시간의 최소화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로 인한 의료의 부실 문제와 불충분한 문진에 따른 의료과실의 증가와 항생제 등 의약품 과다사용을 우려하면서 의료 공급자에 대한 문제점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분석 자료를 우리나라 국회에서 내놓았다는 사실에 충격적이면서도 놀랍기만 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회에서 조차, 게다가 소위 입법조사기관에서 발행한 분석 자료를 보면서 의료 현실에 근거한 객관적인 자료가 아닌, 누구의 입맛을 맞추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사실을 왜곡하고 각색을 해도 너무 심하게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핵심적인 원인은 단순히 적은 의사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의사 수를 초진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선진국제도를 벤치마킹한 것 같은데 병원 초진료가 우리나라 1만5,000원대와 영국의 25만원대는 단순 비교하기에도 너무나 다른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영국의 국민소득이 우리나라 규모에 비해 두 배 이상도 아니지 않은가?

의료전달체계 정상화의 핵심 조건인 초진료 30% 인상을 의료계에서 요구할 때, 정부 주무부처 담당 복지부공무원은 전체 의료비 상승 폭이 너무 커진다며 고민도 해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불가입장’의 복선을 깔았다. 여기에 힘을 더 보탠 복지부 산하 연구기관의 대가 연구원은 초진료 인상 요구에 대하여 우리나라 의사들이 큰 틀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며 설교 아닌 설교로 열성적으로 비말을 내뿜었다. 아직도 저소득층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이들을 생각하여 초진료 인상은 자제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럼에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서 정치권의 전화 진료 주문에 복지부는 하루아침에 ‘전화 상담료 30% 인상’이라는 루어낚시 미끼 같은 형광색 카드를 쉽게 꺼내들었다. 그렇다면, 평소 복지부 관리의 입에서 나온 의료비 증가에 대한 죽는 신음 소리는 가짜였나? 만일에 청와대의 뜻이라면 만사형통의 모습이다.

원가 보전 진찰료 30% 인상 요구 모르쇠…전화상담 미끼로 영혼 없는 정책 펴

국회나 정부가 제시하는 자료는 최소 편견 없이 중립적 위치에서 자료를 만들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마땅히 국가에 대한 두터운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 그럼에도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의 조사 분석 자료가 이정도 수준이라면, 이들이 하고 싶은 일은 안 봐도 충분히 알만하다. 의료 공급자인 의사에게 의료전달체계와 의료이용률의 문제점의 이유를 찾으니 다시 의사를 규제한 입법안을 만들려고 할 것인데 좋은 의료전달체계가 법으로 형성할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국회에서 올바른 사실에 근거한 자료를 바탕으로 법안을 만들어야 함에도 국회보다 더 힘센 권력기관과 상위기관의 눈치를 보는지 의료정책에 관한 입법을 위한 보고서를 한낱 이념보고서로 둔갑시킨 것이다. 아니면, 배운 사람들의 말장난과 손장난에 불과한 것을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식의 유희로 포장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낸 세금이 처량하고 아까워 보이는 대목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사법, 입법, 행정의 삼 분화 된 권력의 균형인데 이런 보고서가 바탕이 되는 법안의 결과는 어떨지 매우 우려된다. 이런 모습은 아마도 민주주의가 아닌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하기야 우리에게 전체주의는 너무나도 낯익은 일이 아닌가? 반독재 투쟁이 반드시 민주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다. 독재투쟁의 승자는 또 다른 독재자일 가능성도 많은 것이 숨겨지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다.

동네상권 무너지듯 의료전달체계 망가져도 의료관리학적 의사 수 증원에만 안구 충혈

영국의 NHS에 고용된 의사는 은퇴 후 자신의 급여 70% 정도를 연금으로 받는다고 한다. 국가 의료직에 헌신하고 노력한 국가의 보답이란다. 그리고 영국의 NHS는 별도의 산하기관(Medical Education England)을 설립하여 연간 조 단위의 재정을 투입하여 의과대학 교육비부터 전공의교육 등 사회적 공공재로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의사노조에 대하여 법으로 활동 범위를 보장하고 있다. 이러니 영국 대부분의 의사들은 NHS를 옹호하고 지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나 의료제도를 옹호하는 의사가 과연 몇이나 될지 물어 본다면 아마 그 결과는 확인하지 않아도 뻔할 것이다. 영국의 지지도에 비해 참담할 것이다. 정권의 주도로 의사집단이 사회적 공동이익에 반하는 패륜적 집단으로 더욱 강하게 조명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영국 의사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의사집단의 초진료 30% 인상의 요구도 어떻게 보면 매우 순진하고 사회 친화적인 의사집단의 요구로 해석될 수 있어 보인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의료 이용률이 세계 1위인 것이 공급자의 문제가 아닌 너무나 싼 초진료로 의료소비를 부추기는 미끼 상품이 된 것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임은 의료관리나 의료정책의 대가가 아니어도 쉽게 파악 가능하다. 공급자나 이용자가 모두 의료소비의 도덕적 해이를 정부가 장려하는 희한한 정책이다. 이런 것이 과연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주장하는 사회주의 지향적인 의료정책인가? 아니면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의 전형적인 의료정책의 모습인가? 매우 혼란스럽다. 평등도 중요하나 의료 근로의 정당한 가치 산정도 정치체제와 무관하게 마땅히 보장받고 존중되어야 하는 진정한 선진국의 사회적 보편적 가치인 것이다.

참고자료:

2019/20 National Tariff Payment System. p54;National Price of £168.

2019 March. NHS

NHS Payments to General Practice, England 2018/19 Annex 1-Data tables and fig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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