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처방전 내용 결정해 작성‧교부 지시한 이상 무면허의료행위로 볼 수 없어”

전화로 처방전을 발행했다는 이유로 면허정지처분을 받은 의사가 대법원에서 구제됐다.

대법원은 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B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운영하던 A씨는 지난 2013년 2월경, 촉탁의로 협약된 요양원 진료를 위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환자 3명이 B의원에 내원하자 간호조무사 C씨에게 환자들의 처방전을 발행하도록 지시했고, C씨는 지시에 따라 처방전을 발행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복지부는 ‘A씨가 부재중에 C씨로 하여금 원외처방전을 발행하게 하고 이후 원외처방내역 등을 진료기록부에 기재하며 실제 실시하지 않은 진찰료 등을 요양급여비용으로 청구하는 등 의료인이 아닌 자로 하여금 의료행위를 하게 하고, 진료기록부 등을 거짓으로 작성했다’는 이유로 의사면허 자격정지 2개월 10일 처분을 내렸다.

이에 A씨는 “전화로 환자의 상태를 듣고 처방전을 발행한 것이고 C씨로 하여금 원외처방전을 발행하도록 한 사실이 없다”면서 “처분 사유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설령 처분사유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위반행위를 하게 된 동기에 참작할 사정이 있는 점, 위반행위의 내용이 경미한 점, D시로부터 업무정지 60일에 갈음한 과징금 부과처분까지 받아 복지부 처분이 이중처벌로 볼 수 있는 점, 지역사회를 위해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온 점 등에 비춰 복지부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한 형사재판 결과를 토대로 A씨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A씨가 C씨로 하여금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내원한 환자 3명에게 처방전을 교부하도록 했다’는 의료법위반의 범죄사실로 선고유예 판결을 선고받았고 이 판결이 확정됐다”면서 “이와 함께 ‘직원으로 하여금 원외처방전을 발행하게 하는 등 진료비를 부당하게 청구했다’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작성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또 “A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위 형사재판의 사실판단을 채용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과 A씨가 작성한 사실확인서가 의사에 반해 강제로 작성됐거나 그 내용의 미비 등의 이유로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증명 자료로 삼기 어렵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보이지 않은 점을 종합해 복지부의 처분사유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면서 “이에 반하는 A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복지부 처분이 이중처벌’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D시의 과징금 부과처분은 A씨가 운영한 의료기관에 대한 것이고 복지부 처분은 의료인인 A씨 개인에 대한 것으로 그 대상이 다르다”면서 “의사 1인이 의원을 개설한 경우 의료법을 위반한 의료인이 다른 병원에서 의료행위를 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의료기관에 대한 업무정지처분 또는 이에 갈음한 과징금 부과처분 외에 의료인 개인에 대한 자격정지처분을 할 필요성이 있는 등 고려해 복지부 처분이 이중처벌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A씨는 항소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A씨는 “2013년 2월 14일 원외에서 환자들과 통화해 상태를 확인한 후 C씨에게 처방 내용의 단순입력행위만 지시했고, 이에 따라 C씨가 자신의 지시대로 처방 내용을 입력한 후 작성된 처방전을 단순히 환자에게 교부한 것뿐”이라며 “이와 같은 행위는 의료인이 아닌 사람으로 하여금 의료행위를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 적법한 의료행위”이라고 피력했다.

또 “같은 해 2월 21일은 원외에서 C씨에게 처방전 발행을 지시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2월 21일 처방전 발행 사실이 없었다’는 A씨 주장을 인용하면서도 복지부 처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복지부 처분은 그 사유가 일부 인정되고, 그에 대한 처분의 양정도 적정해 정당성이 인정되므로 적법하다”면서 “따라서 A씨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할 것인 바, 1심 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에 A씨는 결국 대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대법원은 A씨의 주장을 인용,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은 “처방전을 받은 환자들은 이전에 A씨로부터 진찰을 받고 처방전을 발급받았던 환자들”이라며 “A씨가 C씨에게 환자들에 대해 ‘전에 처방받은 내용과 동일하게 처방하라’고 지시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처방전 기재내용은 특정됐고, 그 처방전의 내용은 C씨가 아니라 A씨가 결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의사가 처방전의 내용을 결정해 작성·교부를 지시한 이상, 그러한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환자에게 처방전을 작성․교부하는 행위가 의료법에서 금지하는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원심은 A씨가 의료인이 아닌 C씨에게 의료인에게만 허용되는 의료행위인 ‘처방’에 필수적인 처방전 작성·교부행위를 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의료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구 의료법 제27조 제1항의 무면허의료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에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해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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