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료가 위험하다] 중소병원장들이 말하는 현실② 의대 정원 증원·병상총량제 부각
“당장 증원해야” vs “4차산업혁명시대 맞지 않아”…해법 두고 이견도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시행 이후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이 심해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빅5병원’은 전체 상급종합병원 급여비의 35%를 가져갈 정도로 환자 쏠림이 심각하다. 환자뿐이 아니다. 의료인력 쏠림 현상도 문제로 지적된다. 빅5병원 등 대형병원으로 의사나 간호사가 몰리면서 중소병원들은 의료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같은 쏠림 현상은 의료 현장에 여러 문제를 파생시켰다. 일부에서는 의료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에 청년의사는 의료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고 이를 통해 한국의료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중소병원의 현실이다.
청년의사는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대한병원협회에서 좌담회를 열고 중소병원의 현실과 제도적 개선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사진 왼쪽부터 대한중소병원협회 정영호 회장, 동군산병원 이성규 이사장, 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 인천사랑병원 김태완 원장.

의료 인력난을 호소하는 병원들이 늘고 있다. 간호사만 부족한 게 아니다. 최근에는 의사 인력난이 더 심각하다. 지방 중소병원들은 수도권보다 연봉을 2,000만~3,000만원 더 줘도 의사를 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전공의법 시행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이 줄면서 그 공백을 입원전담전문의로 채우려는 대학병원들도 지원자가 많지 않아 고민이기는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계 내에서도 오랜 논쟁 거리였던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는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의견은 분분하다.

청년의사가 마련한 좌담회에 참석한 중소병원장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좌담회에서는 더 늦기 전에 의대 정원을 지금보다 20% 이상 증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반면 4차 산업혁명으로 의료 인력 간 업무 조정이 생기고 이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의사 과잉 공급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박재영: 대한병원협회는 최근 ‘의사 인력 적정성 연구’와 ‘진료보조인력(PA) 제도화 방안 연구’ 과제를 공모했다. 오랜 논쟁 중 하나인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공론화한 셈이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영호: 병협 차원에서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사회적인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실제 진료를 하지 않더라도 의사 면허가 필요한 곳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위기감을 더 크게 느낀다. 지금 의대 정원을 늘려도 10년 후에나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가 되면 의료 수요가 지금보다 2배 이상 증가한다는 전망도 나왔다.

수요에 따른 적절한 인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생산성과 상관없이 인건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의료 수요를 줄이기는 힘들고 재정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편은 일손을 늘리는 것이다. 지금 당장 의대 정원을 증원해야 중장기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수요에 따른 적절한 인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생산성과 상관없이 인건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의대 정원 최소 20% 이상은 증원해야 한다”

대한중소병원협회 정영호 회장(한림병원장, 대한병원협회 '의료인력 수급개선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김태완: 고령 환자가 늘고 그들이 받아야 하는 진료나 수술 등도 많이 늘었다. 옛날 기준으로 책정된 의사 인력으로 급증하는 고령 환자의 수요를 모두 감당하긴 힘들다.

한국은 인구 대비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적다(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 임상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3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적다. 한국 임상의사 수 통계에는 한의사도 포함된다. OECD 평균은 3.4명이다). 그런데도 의료시스템이 유지되는 건 의사들이 초고강도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의법 시행으로 전공의들이 주 80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게 되면서 자잘한 사고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대학병원들이 입원전담전문의를 채용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력 부족으로 인해 생긴 문제는 인력 증원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성규: 예전에는 의사 1명당 환자를 100명 이상 진료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의사 1명이 볼 수 있는 환자는 점점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로 인해 의료수요는 줄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증원 방법으로 의대를 신설하는 것은 반대한다. 나는 81학번으로 의대 졸업정원제 1기다. 의대 정원이 30% 늘었지만 졸업하고 나서 아무 문제없었다. 졸업정원제를 시행한 기간에 배출된 의사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얘기 들어본 적이 없다. 의대를 신설하지 않고 기존 의대 정원을 30% 정도 늘리면 된다. 의대를 신설하면 추후 진료 형태 변화 등으로 인해 의사 수를 줄여야할 때 시행하기 힘들다.

“4차 산업혁명으로 오는 2030년 의사 인력의 50% 가량이 AI로 대체된다는 전망 나와. 의사 양성 위해 추가로 드는 사회적 비용을 다른 분야에 투자해야”

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대한중소병원협회 병원정보위원장, 대한병원협회 정책부위원장)

박진식: 의대 정원 증원에 부정적이다. 많은 전문가가 4차 산업혁명으로 오는 2030년 의사 인력의 50% 가량이 인공지능(AI)로 대체된다고 전망한다. 사실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가 반드시 의사의 손을 거쳐 일상적인 케어를 받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영상 판독도 AI가 담당하면서 관련 과가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진짜 의사 인력을 늘리는 게 맞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 4차 산업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기술을 의료현장에 적용해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구조다. 우리나라가 이 상태로 그냥 가면 외국에서 개발한 AI를 사다 쓰기만 해야 하고 결국은 외국 의사 수입해서 쓰는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간호사는 액팅(acting)하는 사람이고 의사는 판단하는 사람이어서 그 역할이 다르다. 판단하는 사람의 역할이 AI로 가장 빨리 대치될 것이다. 빠르면 오는 2035년 의사, 변호사의 80%가 대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런 부분을 보상해주고 의사가 하는 일을 적절히 조정하면 의사를 더 키우기 위해 투입하는 사회적 비용을 다른 분야에 재투자할 수 있다. 의대 정원을 늘려서 효과 보는 건 15년 후다. 15년 후 미래를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현재 문제 해결하는데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박재영: 의사와 간호사 외에 다른 직종도 인력난이 심각한가.

이성규: 의사와 간호사, 약사가 심각하다. 의료기사 구인난도 심해지고 있다. 대형병원이 개원하고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의료기사도 부족해졌다.

정영호: 대학병원들이 대기 간호사 채용을 줄여야 한다. 현장에 당장 배치하는 인력보다 2배 이상 많은 간호사를 채용해서 대기시키는 대학병원들이 있다. 이들이 다른 병원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PA 문제도 빨리 현실화해야 한다.

박재영: 한 지역에 대학병원 분원이 생기면 그 주변 의료기관들은 인력난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 그 일대 생태계가 망가진다고 말까지 나온다.

이성규: 대학병원이 무한 확장하는 것은 전체 의료체계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중소병원들과 협력을 하고 상생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상급종합병원인 대학병원의 분원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하면 안된다. 분원마저 무한 확장하면서 지역 의료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힘들다.

박진식: 모든 대학병원의 분원은 상급종합병원을 지향하면서 끊임없이 고비용 구조를 만든다. 서울대병원이 시흥에 또 다른 분원을 개원한다고 하는데 분당서울대병원도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됐고 보라매병원도 곧 상급종합병원이 될 것 같다. 다른 대학병원도 마찬가지다. 필요하지 않은 3차 의료기관이 늘어나는 현상이 생긴다.

“대학병원 분원마저 무한 확장하면서 지역 의료생태계 교란시키고 있다”

인천사랑병원 김태완 원장(대한중소병원협회 홍보위원장, 대한병원협회 정책이사)

김태완: 이 모든 문제의 원인 중 하나는 의료이용이 너무 쉽고 과하다는 점이다. 한국 국민은 OECD 평균보다 2배 많이 병원을 방문한다. 급성기병원 재원기간도 2배 더 길다(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16.6회, 입원일수는 18.5일이다. OECD 회원국의 평균 외래 진료 횟수는 7.1회, 입원일수는 8.2일이다). 이걸 한 번에 되돌릴 수는 없다. 국민들이 의료를 쉽게, 많이 이용하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이 너무 많기에 로드맵을 갖고 조절해야 한다. 같은 질환으로 같은 날 병원 여러 곳을 다니면 건강보험 적용을 제한하는 방법 등이 논의되고 있다. 단계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정부와 의료계가 같이 추진해야 해결된다. 무한히 양을 늘리는 방식으로 가면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시스템이 될 수밖에 없다.

박재영: 정부가 상급종합병원이 경증환자를 외래 진료하면 종별가산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정책을 실효성이 있다고 보는가.

정영호: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런데 중증질환과 경증질환을 나누기가 애매하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중요한건 중등도 질환이다. 증중과 경증이 아닌 중간에 있는 질환은 누가 담당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빠졌다. 그 역할을 2차 의료기관들이 해야 하는데 1차와 3차 의료기관이 잠식하고 있다.

김태완: 질환 분류가 쉽지 않다. 상병만 바꾸면 경증질환이 중증질환으로 바뀐다. 2형 당뇨병은 경증질환이지만 2형 당뇨에 특별하지 않은 합병증이 동반됐다고 하면 경증질환이 아니다. 외래 진료는 상병 코드만 바꾸면 경증도 중증질환이 된다.

“상급종합병원 쏠림 악화시키는 진료의뢰·회송시범사업, 1차→3차 직접 의뢰는 전달체계상 맞지 않아”

동군산병원 이성규 이사장(대한중소병원협회 부회장, 대한의료법인연합회장)

박재영: 장기적인 과제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지금 당장 개선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박진식: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을 악화시키는 여러 가지 제도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진료의뢰·회송 시범사업이다. 1차 의료기관에서 3차 의료기관이나 300병상 이상 2차 의료기관으로 환자를 진료의뢰하면 수가를 주는 사업이다. 반대로 3차에서 1차로 환자를 회송해도 수가를 준다. 그런데 1차에서 3차 의료기관으로 환자를 바로 의뢰하는 건 의료전달체계에 맞지 않다. 그런데 1차에서 2차보다 3차 의료기관으로 진료의뢰할 때 수가를 더 많이 준다.

지역 내에서 의료체계가 돌아가려면 적절한 수요와 공급이 맞아야 하는데 지금은 한쪽으로 쏠리게 하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2차 의료기관의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 1차에서 3차 의료기관으로 환자를 보내는 건 하지 말아야 하는 행태인데 거기에 수가를 주고 있다. 말이 안된다.

오히려 1차에서 2차 의료기관에 환자를 의뢰할 때 주는 수가를 강화해야 한다. 3차 의료기관에 환자를 의뢰하는 건 2차 의료기관에서 해야 한다. 아주 작은 인센티브지만 거기에 현장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성규: 간호 인력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의원뿐 아니라 병원들도 간호조무사 인력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간호사 업무를 간호조무사로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역할도 다르다. 그래도 간호조무사를 교육시켜 어느 정도의 업무 분담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태완: 상급종합병원이 병상을 늘리면 더 강한 페널티를 줘야 한다. 또한 적어도 대학병원에는 분원을 포함해서 병상총량제를 확실하게 적용해야 한다. 분원까지 포함해서 병상을 늘리면 그로 인한 쏠림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영호: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의대 정원 증원이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에 출마하는 상당수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에 있는 의대의 정원을 증원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리면 좋은지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총선을 하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 최소 20% 이상은 증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재영: 이번 좌담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은 둑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인데도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를 듣고 그런 위험을 예측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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