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료가 위험하다] 중소병원장들이 말하는 현실① 환자는 줄고 인건비는 급증
상급종병 평가지표로 중소병원 평가…보상체계나 평가제도가 인력 쏠림 부추겨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시행 이후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이 심해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빅5병원’은 전체 상급종합병원 급여비의 35%를 가져갈 정도로 환자 쏠림이 심각하다. 환자뿐이 아니다. 의료인력 쏠림 현상도 문제로 지적된다. 빅5병원 등 대형병원으로 의사나 간호사가 몰리면서 중소병원들은 의료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같은 쏠림 현상은 의료 현장에 여러 문제를 파생시켰다. 일부에서는 의료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에 청년의사는 의료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고 이를 통해 한국의료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중소병원의 현실이다.
청년의사는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대한병원협회에서 대한중소병원협회 정영호 회장(한림병원장), 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 동군산병원 이성규 이사장, 인천사랑병원 김태완 원장과 함께 좌담회를 갖고 중소병원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어렵다’는 중소병원의 하소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위기의식은 더 커지는 모습이다. 의료인력 채용에 드는 인건비가 경영난을 더 악화시킨다는 지적이다. 최근 3~4년 동안 환자 수나 수술 건수는 15% 정도 줄었지만 인건비는 50% 이상 증가했다는 병원들이 많다.

청년의사가 마련한 좌담회에 모인 중소병원장들은 간호사뿐만 아니라 의사 인력난도 심각하다고 했다. 수익은 크게 늘지 않는데 인건비는 오르면서 “한계점에 다가서고 있다”고 했다. 현재 한국 의료의 상황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둑’으로 표현하며 “무너지려는 둑을 중소병원들이 겨우 막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영: 한국의료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위기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래서 의료계 분야별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오늘은 중소병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중소병원이 어렵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오늘 모인 분들은 중소병원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대한병원협회, 대한중소병원협회에서도 일하고 있다. 의사 경력도 30년 정도 되는 분들이니 체감하는 게 있을 것 같다. 과거보다 어려워졌다고 하는데 특히 심각해진 건 언제부터인가.

정영호: 조금씩 어려워지다가 최근 2년 사이 더 어려워졌다. 인력 문제가 크다. 해마다 환자 수가 5%씩 줄고 있다는 중소병원들이 많다. 환자 발생이 줄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대형병원으로 쏠리면서 중소병원을 찾는 환자가 감소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거기에 최근 들어 인건비가 폭등했다.

대한중소병원협회 정영호 회장(한림병원장, 대한병원협회 '의료인력 수급개선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성규: 지방은 훨씬 오래전부터 어려움을 체감했다. 그러다 지금은 더 힘들어졌다. 수도권에 있는 의료기관이 별로 느끼지 못하다가 최근에 와서 수도권 내 중소병원마저 상황이 안 좋아진 것이다. 인력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 서울 소재 의료기관도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지방에서 인력을 구하려면 인건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요즘은 저수가 문제보다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인력난이라고 생각한다.

김태완: 우리도 1~2년 사이 심각해졌다. 상급종합병원 진료의뢰서만 쓰러 오는 환자나 보호자가 급증했다. 중증질환자들도 아니다. 종합병원에서 많이 하는 인공관절 수술을 상급종합병원에서 받기 위해 진료의뢰서를 몇 장씩 써달라고 한다. 상급종합병원 여러 곳을 돌면서 의료쇼핑을 한 후 결정하겠다는 의미다.

4~5년 전에 우리 병원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서 잘 지내고 있던 한 환자가 있다. 이 환자가 관절염이 생겨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자식들이 진료비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다면서 대학병원 가서 수술받으라고 했다면서 진료의뢰서를 써 달라고 왔다. 그전에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진료비 차이가 2배는 났는데 지금은 거의 나지 않으니 자식으로서는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시켜드리고 싶다는 것이다.

이성규: 아픈 부모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개념이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해드렸다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술받겠다며 진료의뢰서를 몇 장씩 써달라고 찾아오는 환자들. 상급종합병원 여러 곳 돌면서 의료쇼핑 후 결정한다."

박진식: 세종병원을 개원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인력이동도 계속 생기면서 심장전문병원인 세종병원의 역할이 과거보다 줄어든다는 생각이 든다. 중증질환자들 사이에서 대형병원이 더 낫다는 인식이 늘어나면서 전문병원 중에서도 증증환자를 보는 전문병원들이 영향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평가제도, 보상체계 등이 환자들에게 상급종합병원으로 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상급종합병원에 맞춰진 평가지표로 중소병원도 평가하니 병원 규모가 작을수록 의료의 질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환자들이 작은 병원을 가려고 하지 않는다.

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대한중소병원협회 병원정보위원장, 대한병원협회 정책부위원장)

박재영: 대형병원에 비해 중소병원이 의료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데 평가지표가 잘못돼서 그렇게 보인다는 의미인가.

박진식: 종합적인 평가인 의료질평가지원금제도를 보면, 위암을 많이 하고 잘하면 1등, 조금 하고 잘하면 2등, 많이 하고 못하면 3등, 하지 않으면 4등 점수를 주는 식이다. 사실 환자에게 피해를 가장 많이 주는 건 수술을 많이 하면서 못하는 병원이다. 하지만 현실은 위암 수술을 아예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기에 하나라도 해 놓자는 식이 된다. 이렇게 되면 평가에서 점수는 조금 더 받을지 몰라도 환자가 경험한 서비스는 좋을 수 없다. 결국 환자에게 좋지 않은 인식이 생기는 것이다.

보상체계도 마찬가지다. 신속대응팀이라고 해서 병원마다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인력을 배치하면 환자 1인당 수가를 준다. 환자가 많은 빅5병원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반면, 환자가 적은 병원은 신속대응팀을 설치하면 인력 채용 등으로 손해지만 설치하지 않으면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생각할 수 있다.

중소병원에 신뢰를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환자들에게 중소병원이 더 잘하는 게 있다는 메시지를 줘야 하지만 그런 정책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김태완: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위해 간호사를 더 채용하는 등 평가를 잘 받으려고 고용 인력을 증원했다. 그런데 실제 입원환자는 줄었다. 그러니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평가제도, 보상체계는 환자들에게 상급종합병원으로 가라고 얘기한다”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에서 경기하고 있는 중소병원들

박재영: 평가체계가 인력난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가.

김태완: 예전에는 대학병원이 신규 간호사를 뽑아서 교육을 시켰지만 몇 년 전부터는 3~4년 경력직을 대규모로 뽑기 시작했다. 경력직 간호사는 급여를 더 받을 수 있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교육하고 능력을 갖춰 놓으면 대학병원에 빼앗기는 셈이다. (중소병원) 간호사는 늘었는데도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이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아 있는 경력 간호사들은 업무 외에도 후배들을 계속 가르쳐야 하기에 힘들 수밖에 없다.

동군산병원 이성규 이사장(대한중소병원협회 부회장, 대한의료법인연합회장)

정영호: 지난해 처음으로 빅5병원이 시즌 중 경력간호사를 채용했다. 중소병원뿐만 아니라 다른 상급종합병원에서도 간호사들이 연쇄적으로 이동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가 결정타였다.

김태완: 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뿐만 아니라 수술실 간호사도 많이 스카우트해 간다. 빅5병원에서 간호사를 채용하면 다른 대학병원 간호사들이 그곳으로 이동하고 그 빈자리는 종합병원에서 이동하는 간호사들이 채우는 식이다.

이성규: 중소병원에서 주는 월급과 비슷하다고 해도 대학병원은 사학연금이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느낌이다.

정영호: 의사 인력은 올해 요동쳤다. 전공의법이 가장 큰 영향을 줬지만 최근에는 입원전담전문의가 중소병원 의사 인력난에 영향을 미쳤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보상체계나 평가제도가 알게 모르게 인력 쏠림을 부추긴다.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종별로 역할이 있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질환과 희귀난치질환을 위주로 진료해야 한다. 그리고 2차 병원인 종합병원은 중등도 질환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평가제도나 보상체계는 중증질환 위주로 돼 있다. 중소병원으로서는 하지도 않은 진료를 평가받아야 하는 셈이다. 2차 병원이 진료하기 적절한 질환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가를 평가해야 한다.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수가도 받지 못하고 별로 좋지 않은 병원이라는 이미지도 생긴다. 그러니 견딜 수 없다.

“정부 정책에 따라 특정과 전문의 품귀 현상. 정부는 의료생태계 고민하지 않고 제도 시행한다”

박재영: 의사 인건비가 얼마나 올랐나.

이성규: 특히 몇몇 진료과가 올랐다. 문재인 케어로 CT, MRI 검사가 급여화되면서 영상의학과 전문의 품귀 현상이 왔다. 전문의를 구하지 못하니까 인건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지방은 서울보다 연봉을 2,000만원 정도 더 줘도 구하기 어렵다. 약육강식 세계에서 지방 소재 병원이나 중소병원은 약자다.

인천사랑병원 김태완 원장(대한중소병원협회 홍보위원장, 대한병원협회 정책이사)

김태완: 특정 과에서 인력이 2~3%만 부족해도 이런 현상이 생긴다. 어떤 정책에 의해 수가를 더 줄 테니 전문의를 더 채용하라고 하면 다른 병원에서 빼내야 한다. 중간에 빼내는 방법은 돈을 더 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오르다 보면 전체적으로 인건비가 상승한다. 병원이 인력을 더 쓰면 수가를 더 주고 평가를 잘 주는 게 정부 정책 방향이다. 현재는 경쟁력 있는 대형병원일수록 유리한 구조다.

이성규: 칸막이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제도를 시행하려면 생태계를 만들어가면서 해야 한다. 현재는 의료생태계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박재영: 현 상황이 환자로서는 적은 비용으로 대형병원에서 좋은 서비스를 받게 됐고 의사나 간호사도 근무시간 제한 등으로 삶의 질이 올라갔다고 볼 수도 있다.

김태완: 환자입장에서 얘기해보겠다. 한 대학병원에서 어깨 진료를 하는 교수가 있다. 그 교수는 진료실을 6개 열고 진료를 한다. 6개 진료실을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건 1분 동안 경과를 보고 ‘수술하자’, ‘지켜보자’ 그것밖에 하지 못한다. 환자는 자기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없다. 역으로 대학병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를 갖고 와서 설명해 달라는 환자도 있다. 그 환자들에게는 진찰료만 받고 설명해준다.

빅5병원에서 환자를 많이 보는 진료과 의사들은 대부분 번아웃(burnout) 상태다. 모든 걸 쏟아붓고 퍼지기 직전인 자동차와 같다. 의사뿐 아니라 거기에 있는 인력도 마찬가지다.

이성규: 한계점에 다가서고 있다. 2차 병원이 무너지면 3차 병원도 진료량을 소화할 수 없다. 한국의료는 무너질 위기에 놓인 둑과 같은 상황이다. 지금 중소병원들은 둑이 무너지지 않게 그 구멍을 막고 있다. 중소병원 한두 곳이 없어진다고 해서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시그널이라는 게 있다. 그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박재영: 어렵다고 해도 망하는 병원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영호: 굉장히 위험한 얘기다. 모든 생명체는 죽을 때 그냥 죽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발버둥 치다 죽는다. 그로 인해 나타나는 2차적 시장 교란 효과는 엄청나다. 붕괴 직전이라는 건 재무제표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통상적으로 어떤 사업이든지 경상이익이 8%는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의료 분야 재무제표 평균을 내보면 1%대다. 심지어 마이너스도 속출한다. 결국 빚을 내서 견디는 것이다. 축대가 무너지기 전까지 그 축대로 인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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