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HCQO 워킹그룹 의장인 심평원 김선민 기획이사가 말하는 패러다임 변화
OECD, 'Low value care'에 주목…"의료비 계속 올라가면 비용 가치 논의하는 시점 올 것"

공급자인 의료인이 아닌 환자 중심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환자경험이나 서비스디자인을 의료현장에 접목하는 의료기관도 늘고 있다. 어디까지나 ‘의료서비스’ 관점에서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의료의 질’도 환자 중심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의제이기도 하다. OECD는 환자를 넘어 사람 중심으로 의료를 바라보는 논의도 진행하고 있다(Putting People at the Center of Health Care).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선민 기획상임이사는 ‘OECD 보건의료 질과 성과(Health Care Quality and Outcome, HCQO) 워킹그룹’에서 10년간 활동하면서 이같은 변화를 체험했다. 심평원은 지난 2007년부터 한국을 대표해 HCQO 워킹그룹에 참여해 왔으며 김 이사는 2009년 합류했다. 의사 출신인 김 이사는 지난해 아시아 최초이면서 여성 최초로 HCQO 워킹그룹 의장에 선임돼 현재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HCQO 워킹그룹은 OECD 보건위원회(Health Committee) 산하로 지난 2001년 구성됐으며 의료의 질 측면에서 보건의료 성과를 개발·수집·비교한다. OECD 회원국인 36개국에서 전문가 60여명이 참여한다.

HCQO 워킹그룹은 비교가능성과 정책적 중요성을 고려해 지표를 개발·비교하고 이를 통해 회원국에 벤치마킹 기회를 제공한다. 또 HCQO 워킹그룹에서 만든 자료는 국가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 근거로 활용된다.

‘OECD 보건의료 질과 성과(Health Care Quality and Outcome, HCQO) 워킹그룹’ 의장으로 선임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선민 기획상임이사가 지난 6월 6일과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워킹그룹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제공: 심평원).

“환자 중심으로 패러다임은 이미 바뀌었다”

김 이사는 최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OECD에서 논의되는 사안들이 처음에는 임상적 효과성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환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 흐름에서 한국이 뒤처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도 지난 2017년 환자경험평가를 도입했지만 아직은 임상적 효과를 중심으로 의료의 질을 판단하는 게 대세다. 하지만 OECD 회원국 중 상당수는 의료의 질 평가가 환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으며 OECD 내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OECD는 환자보고지표를 개발해 회원국 간 측정 결과를 수집해 비교·분석하는 작업(Patient Reported Indicator Survey, PaRIS)을 시작했다. 그리고 환자 경험(Patient reported experience measurement, PREMs)와 환자가 보고하는 결과 평가(Patient reported outcome measurement, PROMs), 환자가 보고하는 안전사고 평가(Patient reported incident measurement, PRIMs)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 2017년 1월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ECD 보건장관회의에서는 ‘사람 중심 의료(Putting People at the Center of Health Care)’가 미래 보건의료가 취할 방향이 돼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각국 보건장관들은 5~6년 뒤 열리는 차기 보건장관회의까지 ‘환자 스스로의 경험과 결과’를 측정할 통계지표 산출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김 이사는 “전체 의료의 질 평가의 일부분이라기보다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심평원 김선민 기획상임이사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OECD 보건의료 질과 성과(Health Care Quality and Outcome, HCQO) 워킹그룹’에서 논의되는 주요 사안들에 대해 설명했다.

김 이사는 “OECD에서도 처음에는 사망률 등 임상적 효과성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제공자(공급자) 중심 논의였던 셈이다. 그러다 환자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며 “처음에는 임상적 효과성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한국이 매우 앞서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최근 환자 중심성 평가가 강조되면서 OECD가 저 만큼 앞서간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또 보건장관회의 전날(1월 16일) ‘People at the Centre: The Future of Health’를 주제로 열린 ‘2017 OECD High-Level Policy Forum’에서 세계적인 경영학 석학인 마이클 포터(Michael E. Porter) 교수가 기조연설을 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김 이사가 전한 마이클 포터 교수의 강연(The Strategy to Transform Health Care and The Role of Outcomes)은 이렇게 요약된다.

‘도대체 수백만 달러의 비용을 써서 생존 3개월 연장하는 의료기술에 대해 환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 봤느냐, 의사들이 열심히 해서 사망률을 낮췄다고 하는데 환자들의 삶의 질은 어떻게 됐는지 관심을 가져 봤느냐. 결국 이 모든 것들을 해석하고 결정하는 중심에 환자가 있어야 한다.’

김 이사는 “높은 비용이 의료의 질을 보장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과연 환자의 관점에서 비용이 높아지는 게 타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며 “한국도 의료비가 계속 올라가면 환자의 관점에서 그럴만한 비용을 쓸 가치가 있는지를 논의하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다른 나라들은 환자에게 안전에 대해서도 묻기 시작했다. 아직은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지만 확 바뀌고 있다”며 “한국이 사망률 등 임상적 효과성 평가 부문은 잘하지만 환자에게 물어보는 건 아직 낯설다”고 했다.

김 이사는 “이런 것은 기술적인 변화가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다. 이런 변화들을 한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힘들게 따라왔는데 다시 벤치마킹해야 할 것들이 다시 수북이 쌓였다. 올해는 이런 것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한국에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자료제공:건강보험심사평가원

OECD가 주목하는 ‘Low value care’

‘성과 낮은 의료서비스(Low value care)’를 줄이는 것도 OECD의 주요 관심사다. 의료의 질과 상관없는, 불필요한 의료를 줄이자는 것이다. 미국 등은 이미 관련 학회로 분야별 Low value care를 지정해 의료인과 환자에게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김 이사는 “미국은 5~6년 전부터 100여개 학회들이 관련 진료 분야에서 대표적인 Low value care를 10개씩 지정해 회원들에게 공유하고 환자 버전도 따로 만들어서 공유한다”며 “정부 주도가 아닌 의료계가 자발적으로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OECD 내에서 Low value care 지표를 만들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조만간 관련 지표가 나올 것 같다”며 “요통 환자에게 MRI 검사를 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감기에 항생제를 쓰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등이다. 한국도 학회별로 이같은 국제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이어 “세계적으로 의료의 질을 보는 관점이 공급자 중심에서 환자, 사람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평가도 임상적 효과성에서 환자, 사람 중심으로 관점이 바뀌어 진행되고 있다”며 “한국 의료가 나아갈 방향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HCQO 워킹그룹에서도 환자 중심 보건의료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지표를 개발하는 작업을 집중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 이사는 “HCQO 워킹그룹은 회원국 간 비교가능성 높은 지표를 개발하고 수집한다. 환자 안전, 병원 성과 등 지표 영역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며 “특히 환자 중심 보건의료시스템 강화를 위해 환자가 보고하는 지표(Patient Reported Indicator) 개발 작업을 집중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의장으로 활동하는 올 한 해 동안 HCQO 워킹그룹 논의를 좀 더 활성화 시키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는 “통계 분석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라는 주문만 할 게 아니라 각국의 관련 정책이나 현황 등을 공유하는데 회의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할 생각”이라며 “관련 있는 다른 회의체에 참여해서 HCQO에서 일어나는 일을 공유하고 전파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OECD에서 논의하는 사안들이 국내에도 더 많이 전파되도록 노력하겠다”며 “한국 전문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후진도 양성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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