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자살예방백서,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 OECD 국가 중 1위...평균 보다 3배 높아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 "‘외로움’ 달래는 사회공동체 복원 및 부처간 협의 필요"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수가 줄어들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공개한 ‘2019년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만2,463명으로 2016년 대비 4.8%(629명) 감소했다.

특히 자살자 수가 가장 많았던 2011년과 비교해 21.6%(3,443명)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60대 노인 자살률도 2016년 34.6명에서 2017년 30.2명으로 두드러지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동기는 연령대별로 달랐다. 10~30세는 정신적 어려움, 31~50세는 경제적 어려움, 51~60세는 정신적 어려움, 61세 이상은 육체적 어려움이었다.

이같이 우리나라 자살자 수가 줄어든 데는 정부가 자살예방국가행동계획을 선포하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데 있다. 정부가 자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100대 국정과제에 자살 예방을 포함시켜 힘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노력에도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리투아니아(26.7명)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자살률(25.8명)을 보이고 있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로 조사됐다. OECD 국가 평균(18.8명)보다 3배 정도 높은 58.6명에 달하고 있다.

<2011∼2016년 OECD 주요 회원국 자살률 추이(출처: OECD, OECD health data)>

우리나라 노인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문제로 고민하다 자살을 선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7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이 자살을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이 27.7%로 가장 높았고, 건강문제가 27.6%, 배우자·가족·지인과의 갈등(18.6%), 외로움(12.4%) 순으로 조사됐다.

과거 가족이 노인의 부양책임을 갖고 있던 반면 그 책임이 사회로 점차 이전되는 과도기에 놓이게 되면서 사회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적 문제, 건강문제, 외로움에 직면한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인자살예방, 외로움 달래는 '공동체 복원' 필요

이같은 복합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동체 복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 백종우 센터장(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은 “사회적 관계망지수가 자살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가족의 개념을 넘어선 사회 공동체 복원이 자살예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 센터장은 “일본은 자살 예방을 위해 비정부조직(NGO)이 적극 나서고 있다. 과거 어려움을 겪었던 노인들이 삶의 지혜를 통해 자살 위험군을 찾아가 설득하고 돕는 자원봉사를 한다”며 “핵가족화 되고 주변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위기에 처했을 때 이런 공동체가 아직 살만하다고 느끼게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백 센터장은 “일본의 노인 세대는 본인의 노년을 준비한 세대이기도 하고 다양한 사회참여 활동을 하며 70~80대까지 건강하게 일을 하고 있다. 일본의 자살률 저하에 이 같은 요소들이 기여하고 있다”며 “노년기를 넘어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는 한국도 공동체를 만들고 일을 찾는 등 자살예방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면 자살률은 낮아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국도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외로움’을 국민 전체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에 나섰다. 테리사 메이 총리는 지난 2018년 ‘외로움 대응 부서’를 설립하고 해당 부서의 자치 정부 행정수반을 임명해 외로움 대응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이같은 외로움 대응 전략에는 ‘사회관계망 연결 시스템’이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처방’을 통해 오는 2023년까지 외로움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무료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으며, 요리 수업, 산책 그룹 및 미술 단체와 같은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환자들을 연결한다. 또 직장 내 외로움 극복을 위해 ‘고용주 서약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영국 국립우체국과 파트너십을 맺고 리버풀, 뉴몰든, 회트비 지역 내 우편배달부는 배달 지역의 소외된 사람들과 대화하고 필요한 경우 가족이나 지역사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관계망 연결 시스템을 구축했다.

백 센터장은 “우리나라 노년 문제 중 하나는 독거노인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독거노인에게 가족을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가족을 대체할 수 있는 공동체나 인간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며 “정신과를 포함해 외과나 내과, 응급의학과 등 의료시스템에서도 신체적인 치료와 더불어 정신건강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노인 자살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사회도 반드시 자살 예방 과정이 자살 사망자 수만 줄이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 살만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조기에 발견하는 시스템이 자살을 줄일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자살예방정책위원회, 12개 부처 '자살예방' 힘 모아

자살은 보건과 복지, 고용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는 만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부처 간 협력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백 센터장은 자살은 보건과, 복지, 고용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는 만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부처 간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센터장은 “자살은 워낙 복잡한 현상이기 때문에 예방 시스템 구축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자살률이 낮아지고 있는 경향이지만 자살 문제는 복잡하다. 노인의 경우 경제적인 문제와 더불어 신체질환이 겹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됐다고 생각해 자살로 이어진다”며 “보건과 복지, 고용 등 굉장히 다양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여러 부처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우리나라도 오는 7월부터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꾸리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기획재정부, 복지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등 12개 부처가 자살 예방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백 센터장은 “7월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통해 자살예방 환경이 성장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지난 2011년부터 정부 정책으로 시행하는 자살예방 효과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 지금부터 5년 내 OECD 기준에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