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시절 레지던트에게 성폭행, 법적 다툼 예고하자 2차 가해 이어져

그날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공든 탑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의과대학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그날 이후 꿈은 점점 멀어져 갔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가진 걸 다 잃을 수 있다는 공포

2016년, 인턴이었던 그는 실습을 돌던 과의 치프(chief) 레지던트 A씨와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A씨는 과 실습을 마친 것을 기념해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저 ‘호의’로만 생각했다(A씨는 유부남이었다). 당직 날이어서 동료 인턴에게 백업을 부탁한 후 병원을 나왔다.

그는 당직이기에 빨리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지만 A씨는 그를 붙잡으면서 계속 술을 권했다. 그는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그는 성폭행 피해자가 됐다.

다음 날 아침에야 병원으로 돌아온 그는 성폭행 피해 신고를 할까 고민했지만 포기했다. 신고를 하는 순간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병원에서 레지던트 수련을 받아야 하는 그에게는 ‘소문’이 더 무서웠다.

“어떻게 대응하는 게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소문이 나면 레지던트 지원도 힘들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을 만든 A씨에게 화가 났다. 사건이 발생하고 며칠 뒤 사과를 받기 위해 만난 A씨는 그에게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면 같은 병원에서 일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가진 걸 다 잃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해 최선이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다 잊고 레지던트 수련을 마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신고하지 못했다.”

사라진 일상…“용서를 구한 적도 없다”

하지만 잊으려고 할수록 잊히지 않았다. 그날이 기억나 매일 밤 혼자 울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유 없이 짜증이 났다. 다른 레지던트들과도 대화를 나누기 힘들어 피해 다녔다. 당연히 성적은 떨어졌다. 사건이 있기 전까지 그의 인턴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레지던트 지원 시기인 10월, 그의 성적은 하위권이었다.

“교육수련부에 알아보니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성적이 좋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 인턴 성적에 레지던트와의 관계가 중요한데 피해 다녔으니 성적이 좋게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레지던트 면접에서도 ‘학부 성적은 굉장히 좋은데 인턴 성적이 좋지 않다. 왜 이렇게 성적이 좋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동안 참고 일한 것밖에 생각나지 않아서 면접장에서 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결국 레지던트 모집에서 떨어졌다. 그는 이 기회에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억지로 버텨왔던 인턴 생활이었다. 당시 4년차였던 A씨가 레지던트만 마치면 그 병원을 그만두겠다고 한 약속을 믿기도 했다.

쉬는 동안에도 ‘그날의 일’은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더 옭아맸다. 지친 그는 성폭력상담소의 문을 두드렸다. 상담을 받으며 회복되길 바랐다. 그러던 중 A씨가 아직도 그 병원에 전임의(펠로우)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너무 뻔뻔한 그 사람한테 화가 났다. 그 사건 이후 나에게 용서를 구한 적도 없었다. 내 일상은 사라졌는데 그 사람은 아무런 반성도 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사건 폭로 후 이어진 2차 가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전임의로 근무하고 있는 A씨를 보면서 그는 고소를 결심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정도 지난 뒤였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의 부모도 처음에는 그 자리에 나간 그를 탓했다. 그리고 조용히 덮고 지나가길 바랐다. 이 일이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닐 거라고 했다. 그는 의지할 곳 없이 혼자 모든 걸 알아봐야 했다.

그가 법적 다툼을 결심하고 사건을 폭로하자 2차 가해가 시작됐다. 그는 지인을 통해 병원에 진정을 넣었다. 진정이 접수되자 병원 기획실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기획실장은 A씨에게 사직서를 받고, 이 일을 끝내자고 했다. 그 이후에는 병원 기획실 남자 직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징계위원회 소집을 원하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했다.

“기획실 남자 직원이 전화해서는 ‘그 분(A씨) 인생이 걸린 일이니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는 말도 했다. 내가 왜 이 말을 다 듣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징계위 열기를 원한다고 했는데도 왜 자꾸 연락하느냐고 했더니 답이 필요하다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A씨는 병원 측에 나와 연인 사이였고 합의된 성관계였다고 얘기했다고 하더라. 병원 사람들도 다 그 사람 말을 더 믿는다는 상황 자체도 힘들었다.”

지난 2017년 9월 열린 병원 징계위원회에서는 수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며 A씨에게 직무대기 발령만 내렸다. A씨의 일상에는 변화가 없어 보였다. A씨 이름으로 외래 진료도 진행되고 있었다. 그가 병원 측에 항의하자 10월에야 외래 진료 의사 목록에서 A씨의 이름이 사라졌다.

“조직적으로 사건 덮으려는 병원과도 싸워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018년 2월 21일 병원 측으로부터 법적인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A씨는 전임의 과정을 수료하고 2월 28일부로 병원을 나간다는 연락이 왔다.

“이렇게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전임의를 수료하고 병원을 나간다니 충격적이었다. A씨가 전임의를 수료한 뒤 다른 대학병원 교수로 가기로 돼 있다는 말까지 나오더라. 변호사를 통해 한국여자의사회를 알게 됐고 여의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변호사는 언론에도 알려보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러자 병원 측 태도가 달라졌다.”

여의사회는 병원 측에 2월 28일까지 A씨를 징계해야 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그리고 병원 측이 성폭행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유보하고 있다는 기사도 나왔다. 그러자 병원 측은 계약 기간 종료 하루 전날인 2월 27일 징계위를 열고 A씨를 해고했다.

“조직적으로 사건을 덮으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A씨뿐 아니라 병원과도 싸워야 했다. 수사 과정에서도 병원 측은 상당히 비협조적이었다. 인턴 OT에서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면 심리상담 등을 지원한다고 안내했었는데 실제 사건이 발생하자 해준 게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난 뒤 재판 결과가 나왔다. 법원은 준간강,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업무상 지위를 이용한 간음이라며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또 의료기관 등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2년간 취업을 제한했으며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도 명했다(관련 기사: 레지던트 시절 인턴 성폭행한 의사 ‘징역형’).

“이전 생활로는 돌아갈 수 없지만…”

사건이 발생한 지 2년 6개월여 만에 법원 판결을 얻었지만 A씨가 항소하면서 법정 다툼은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시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도 하고 있다. 지난 2년 6개월간 싸워봤기에 그 길이 얼마나 힘든지도 안다. 돌아가고자 하는 일상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도 안다.

“이전 생활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계획했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 사회로 다시 돌아가는 게 두렵기도 하다. 지금도 사건을 회상하면 불안해진다. 하지만 의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 내가 정말 이 일을 하고 싶다는 걸 느낀다.”

그는 의대 교수가 되어 학생들도 가르치고 환자들도 진료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하기로 했다. 도피가 아닌 도약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미국에서 의사로 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학식을 더 쌓고 입지를 공고히 해서 부조리한 부분을 개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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