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선욱·서지윤 간호사 추모하는 간호사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 겪고 있다”는 의대생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故) 박선욱, 서지윤 간호사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하며 병원이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16일 청계광장 남측에서는 故 박선욱 간호사 1주기 및 故 서지윤 간호사 추모집회가 열렸다. ‘故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서울의료원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故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 시민대책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날씨에도 수많은 간호사들이 광장으로 모였으며, 저마다 ‘더이상 간호사를 죽이지말라’, ‘내가 서지윤이다’, ‘내가 박선욱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엄지 간호사는 병원이 태움을 만들어내고 방조하는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엄지 간호사는 “병원이 (태움 등) 인권침해를 방조하는 이유는 바로 병원이 범인이기 때문”이라며 “사람을 착취하기 위해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위계문화에 가두고 길들여서 감히 (다른)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열악한 노동환경에 찍소리도 내지 못하게 되게 때문”이라고 말했다.

엄지 간호사는 “언론에 알려진 수많은 의료사고 외에도 드러나지 않는 의료인들만 아는 사고가 굉장히 많다”며 “죽음의 컨베이어벨트는 태안화력발전소뿐 아니라 병원에서도 잔인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은 병원을 떠나거나, 보이지는 않지만 사지가 찢기고 온몸이 조각나 활활 타서 재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엄지 간호사는 “태움을 당하는 사람이 부적응자가 아니다. 멍청한 게 아니다”라며 “크고 깊은 구멍을 막지 않는 병원과 정부에 모든 책임이 있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구멍을 몸으로 막으라고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그 구멍에 환자들도 같이 빠진다"고 했다.

엄지 간호사는 “간호사들의 죽음 뒤에는 의료의 질과 국민건강은 내팽개친 정부, 싼값으로 공장을 돌리며 모래성을 쌓는 병원, 이 모든 이해관계에 동조하며 침묵하는 대한간호협회라는 카르텔이 존재한다”며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의료원 사건은 얼핏 달라 보이지만 연결돼 있다. 다음에는 누가 죽을 차례인가”라고 반문했다.

박선욱 간호사의 산재 대리인을 맡고 있는 권동희 노무사도 “고인의 죽음은 산재이며 고인의 잘못이 아닌 병원의 책임이라고 확신한다”며 “내부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아산병원의 그 뻔뻔함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하고 또다른 박선욱이 나오지 않도록 병원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하는 건 병원의 사과”라는 유족들의 호소

유족들도 병원의 책임을 강조하며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했다.

故 박선욱 간호사의 이모 김윤주 씨는 “원하는 한가지가 있다면 바로 병원의 사과”라며 “1년이 지나는 동안 (병원의 입장에) 어떤 변화라도 있길 바랬다. 유족의 바람대로 서울아산병원이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결국 제2의 선욱이가 나오지 않았길 바랬던 우리의 뜻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근본적인 인력문제, 신규간호사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 간호사당 적정 환자수 등이 지켜진다면 태움이라는 악습이 줄어들지 않을까. 개선된 환경에서 간호사들이 근무하는 날이 와야한다”고 강조했다.

故서울의료원 서지윤 간호사 어머니는 “반드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내 딸을 죽음으로 내몬 병원 사람들,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길 바란다”며 “안타까운 죽음이 두번 다시 반복되서는 안된다. 내 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연대하겠다는 의대생들 “의사, 간호사 가릴 것 없이 겪는 문제”

이날 참여한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인권국도 태움이 의료 현장의 구조적 문제
임에 동의를 표하며 향후에도 연대활동을 펼치겠다고 했다.

의대협 전시형 회장은 “태움은 의료 현장의 뿌리깊은 구조적 문제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며 “이런 폭력적인 문화는 간호사, 의사 가릴 것 없이 병원에서 일하는 모두를 죽음으로 내몬다”고 설명했다.

전 회장은 “의대생으로서 이에 깊이 공감하고 주체적인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며 “미래 의료계를 형성할 학생 공동체 간의 연대를 통해서 이러한 폭력적인 문화와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겠다”고 약속했다.

집회에 참여한 의대협 인권국원은 “권위주의는 의대생들의 의제기도 하다. 같은 병원노동자로서 당연히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해 (집회에) 참여했다”며 “병원이 인권보다 자본을 우선하는 상황에 대해 의대생들도 함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생 사이에서는 태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태움이) 권위주의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는 (의대생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며 “앞으로도 관련 의제에 대해서 의대생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고 (공대위와) 연대해서 활동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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