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회, 성명 통해 대리처방 요건 및 대상 확대 요구

의료법에 환자 가족 등이 처방전을 대리 수령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가 이에 대한 수정·보완을 요구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9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대리처방의 요건 및 처방 등의 내용을 담은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한 바 있다.

해당 개정안은 환자의 직계존속·비속, 배우자 및 배우자의 직계존속, 형제자매 또는 노인의료복지시설에 근무하는 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가 환자를 대리해 처방전을 수령할 수 있게 하는 게 골자다.

또 대리처방 요건은 ▲환자의 의식이 없는 경우 ▲환자의 거동이 불편하거나 장기간 동일 처방인 경우 ▲의사 등이 해당 환자 및 의약품에 대한 안전성을 인정하는 경우로 제한했다.

처벌 규정도 신설돼 의사 등이 대리처방의 교부 요건을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으며, 보호자 등이 대리처방의 수령 요건을 위반했을 경우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처방전 발급 방법과 절차 등에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12일 성명을 통해 해당 개정안의 수정·보완을 요구했다.

정신과의사회는 “신체가 건강하고 거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결국 병원에도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정신건강 문제가 꽤 많다”면서 “일례로 은둔형 외톨이는 대개 병식이 없을 뿐 아니라 치료에 대한 의지도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못해 병원을 오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이한 사고나 간헐적 공격성을 불규칙하게 보이는 특정 정신질환은 병식이 없고 심지어 투약을 완강히 거부해 결국 보호자는 병원을 가자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걱정과 불안만 가중되는 고통을 겪는다”면서 “최근 보도된 강력 범죄 중 정신질환이 관련된 경우, 대리처방이라는 부득이한 수단을 통해서라도 적절한 약물치료를 가능케 한다면 범죄에 따른 희생과 피해를 크게 줄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리처방 가능의 사유에 ‘정신질환으로 자타해의 위험성이 매우 높거나, 병식 결여로 치료를 거부해 본인, 가족 등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를 추가해야 한다는 게 정신과의사회의 입장이다.

정신과의사회는 또 대리처방을 받을 수 있는 인적 범위의 확대를 요구하기도 했다.

정신건강 문제의 발생·악화에 직계 보호자가 직간접으로 연관된 경우 대리처방 대상을 개정안이 정한 범위로 한정하면 일부 정신질환의 치료에 오히려 큰 지장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친구 혹은 멘토의 돌봄과 지지 속에 인격이 잘 보존되고 증상도 호전되는 경우를 임상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에 환자 및 국민 정신건강증진 측면에서 다소의 여지가 필요하다는 게 정신과의사회의 설명이다.

더욱이 65세 이상 인구 중 혼자 거주하는 독거노인의 비율이 20%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의 노령화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대리처방의 주체를 보호자 범주로 한정하고 처벌 조항을 둔 것은 국민정신건강 뿐 아니라 국민건강보호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신과의사회는 “대리처방이 가능한 주체로 ‘다만 정신질환의 경우 환자가 지정한 사람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함께 방문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확인을 득한 경우는 보호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규정도 추가로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과의사회는 이어 “최근 우리나라 의료의 전반적 분위기와 방향은 그간 꾸준히 증진해온 신체건강 외에도 상대적으로 간과됐던 정신건강 문제의 중요성을 새롭게 재인식하는 추세”라면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춰 위 법안에 반드시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좀 더 신중한 고민과 노력을 반영해 국민정신건강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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