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서독 의료제도로 완전히 흡수하는 방식으로 통합

남북정상회담으로 통일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면서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경험한 독일의 사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독일은 통일 전에도 보건의료 분야 교류가 많았음에도 보건의료인력 통합 과정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보건의료인 자격 인정 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동독과 서독은 통일된 지 2년 만에 보건의료체계가 통합 됐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통일 전 동독은 사회주의 의료체제로, 모든 외래 진료는 국가 소유 외래진료소에서 이뤄졌다. 동독 의과대학 교육은 의학교육 외에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러시아어 과목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서독과 달랐다.

북한도 동독처럼 의대에서 김일성주의화기본, 김일성혁명활동, 김정일혁명활동, 주체철학, 주체정치경제학, 조국통일 및 남조선문제, 미일제국주의 침략사 등 정치사상 과목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은 서독의 의료제도로 완전히 흡수하는 방식으로 보건의료를 통합했다. 전문교육기관이 동독 의사들에게 서독의 사회복지행정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통일조약에 따라 동독 의료기관을 사유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동독 의료를 서독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1995년부터 7년 동안 7억 DM(Deutsche Mark)을 투자했다.

또 통일조약이 체결된 지 4개월 만에 서독형 의료보험이 동독에 도입됐으며, 국가 보건의료체계를 민영화하는 데 2년도 걸리지 않았다.

동독과 서독은 통일 전에도 의료 분야 교류가 많아 서로의 수준을 잘 알고 있었기에 통일 후 동독 의사면허를 그대로 인정해줬다.

하지만 동독에서 의사는 중간계층 정도이며 그 숫자도 많았다. 반면 서독에서 의사는 사회적 지위가 높았고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를 갔다.

통일 전 동독에서 의사 일자리는 포화상태로, 분단 후 매년 증가하던 의사 수는 장벽 붕괴(1989년 11월) 직후 일시적으로 감소했다. 의료 장비 등이 열악한 동독을 떠나 서독으로 간 의사가 1만명을 넘었기 때문이다(동독과 서독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약 1년 뒤인 1990년 10월 통일됐다).

동서독 의료 수준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서독 각 주 의사회와 자매주를 편성해 동독 종합병원 고위, 중진 경영진을 서독 출신으로 채용하거나 서독의 종합병원 전문가가 한시적으로 동독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동독과 서독 의료진 간 반목도 생겼다. 서독 의사들은 동독 의사들이 실력이 없고 의료의 질이 낮다고 비난했고 동독 의사들은 서독 의사들이 돈만 밝힌다고 지적했다. 또 서독 의료인은 동독 의료인이 융통성이 없다고 생각해 병원 내부 개혁을 두고 갈등이 많았다. 동독 의료인은 새로운 의료체계에 불만이 많았다. 각자 새로운 의료장비를 구입하고 직원을 고용해야 하는 데서 오는 비용 부담 문제와 다수 보험사를 상대해야 하는 데서 오는 혼란이 컸다.

연구진은 “독일은 1945년 분단 이전에 같은 제도로 의학교육이나 의사면허제도를 운영했으나 분단 이후 달라진 의학교육이나 의사면허제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격차를 크게 줄인 상태에서 통일이 이뤄져 면허 부여 여부 문제는 없었다”며 “다만 통일 후 양쪽 의사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 보완에 애쓴 점이 특별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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