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본, 2017년 결핵진료지침 개정 통해 ‘결핵 신속내성검사’ 시행 권고
심평원, 2013년 급여기준 고수하며 삭감…의료현장, ‘검사 위축’

세계보건기구(WHO)가 결핵 발생률을 줄이기 위해 내성이 의심되는 환자에 대해서는 ‘신속내성검사’를 실시토록 권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질병관리본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서로 다른 기준을 제시하는 등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16년 WHO는 ‘결핵을 진단하는 시점에서 성인과 소아 모두에서 신속내성검사를 시행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에 2017년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도 WHO 기준에 맞춰 결핵진료지침을 개정했다.

하지만 심평원은 2013년에 세워진 고시에 맞춰 ‘결핵균 신속내성검사’에 대한 급여를 대대적으로 삭감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질본, WHO 권고 받아들여 2017년 진료지침 개정

결핵은 전염성이 높기 때문에 환자에서 결핵균이 검출되면, 이 환자가 내성환자인지 아닌지를 빠르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시행하는 것이 결핵균 신속내성검사이다. 빠르면 하루, 병원검사시스템 등을 고려하더라도 일주일이면 내성 여부를 판별할 수 있어 치료 방향은 물론 환자 위험성 판별에도 큰 도움이 된다.

때문에 WHO도 지난 2016년 내성결핵 진료지침 개정을 통해 ‘결핵을 진단하는 시점에 성인과 소아 모두에서 결핵균 신속내성검사를 시행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미국흉부학회와 미국감염학회도 2017년 1월 결핵 진단에 대한 새로운 진료지침을 발표하면서 ‘결핵발생률이 10만명당 20명 이상인 국가에서 태어나거나 최소 1년 이상 거주한 환자에서는 모두 결핵균 신속내성검사를 시행하라’고 권고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7년 결핵 신환자는 2만8,161명으로 이는 10만명당 55명에 해당한다. 즉, 미국흉부학회와 미국감염학회 지침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결핵균 신속내성검사를 시행해야 하는 나라에 해당, 미국을 방문하는 우리 국민들 가운데 결핵 의심 증상이 있다면 신속내성검사를 무조건 받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도 질병관리본부가 2017년에 WHO 진료지침 권고안을 그대로 수용, ‘재치료 등 다제내성결핵이 의심되는 경우 도말 양성 검체 혹은 배양된 결핵균주를 대상으로 리팜핀과 이소니아지드에 대한 신속내성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그 외 상황에서 다제내성결핵을 검출하기 위해 신속내성검사를 초기 시행할 수 있다’고 결핵진료지침을 개정했다는 데 있다.

심평원, 2013년 기준 들이대며 삭감의 칼 휘둘러

하지만 본지 취재결과, 심평원은 여전히 2013년 고시를 고수하며 신속내성검사 시행 시 삭감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심평원이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고시에서는 신속내성검사를 ▲재발환자·치료실패환자·치료 중단 후 재등록환자 등 약제내성 결핵균이 의심되는 경우 ▲치료시작 1개월 후에도 계속해 결핵균 도말 양성이면서 임상증상의 악화 혹은 방사선학적 약화의 증거가 있는 경우 ▲생명을 위협하는 결핵감염(결핵성 수막염, 속립성결핵, 기관 결핵, 영유아의 결핵, 면역저하 환자 결핵)의 경우 ▲다제내성결핵환자와 접촉한 가족 및 의료인이 결핵에 감염된 경우 등에만 하도록 돼 있다.

결핵균만 나와도 신속내성검사를 실시해 내성 여부를 빠르게 판단하도록 한 세계 기준과 동떨어진 기준을 제시하며, 결핵 1위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특히 심평원은 이같은 기준에 따라 현장에서 시행된 신속내성검사의 약 20% 정도를 삭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결핵환자 발생률은 감소하고 있지만 내성결핵환자 수는 아직도 너무 많다”며 “신속내성검사로 빨리 검사할 수 있음에도 심평원은 과거 만들어진 고시에 따라 검사 시 삭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병원의 경우 최근 발표된 질병관리본부의 결핵 진료지침에 따라 결핵균이 배양된 모든 환자에서 신속검사를 해왔다. 그랬더니 18.8%나 삭감된 상태”라며 “이는 부당한 조치일 뿐아니라 결핵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정부 정책과도 맞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결핵균이 배양된 환자 100%에서 신속검사를 하고 있는데, 모두 삭감하는 것도 아니고 20% 정도만 삭감하고 있다”면서 “어떠한 잣대로 삭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 이런 식으로 삭감하면 현장에서는 필요한 검사라고 생각하지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정부에서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게 적극적으로 검사하라고 해놓고 심평원에서는 뒤처진 기준을 들이대고 있다면 의료현장은 말 그대로 심평의학대로 진료를 하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의료현장 반발 거세지자 질본·심평원 “검토하겠다”

의료현장에서 문제가 불거지자 질병관리본부와 심평원도 뒤늦게 대책 논의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질병관리본부 결핵·에이즈관리과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아직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심평원을 만났을 때 신속내성검사 급여기준 관련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며 “신속내성검사 급여기준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얼마나 검사가 시행되는지 등에 대해 조사할 필요가 있어 5월 중 질병관리본부와 심평원이 관련 데이터를 매칭해 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신속내성검사 급여기준 개선에 대한)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다. 실제 급여기준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와도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그 전에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심평원도 신속내성검사 관련 현황을 파악한 후 급여기준의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심평원 급여기준운영부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의료현장에서 (오래된 급여기준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는지, 기준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조사해보겠다”며 “결핵은 국가적으로도 관리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의료계에서 의견을 제시해준다면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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