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시범사업에 ‘연명의료계획서’ 107건은 문제…계획서 ‘본인서명’ 포함 걸림돌
허대석 교수 "현장에선 지적하는데 정부는 문제 없다고만…방어진료 불가피"

내달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연명의료제도)가 시범사업을 거쳐 본사업에 돌입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행을 열흘 남겨놓고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높이기 위한 제도인 것은 맞지만 비현실적인 기준이 많아 제도가 실제로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연명의료계획서에 의사 서명과 함께 환자 본인 서명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부분은 원활한 제도 시행을 막는 벽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및 항암제 투여 등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말한다.

연명의료제도가 시행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 등을 통해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남길 수 있게 된다.

3개월 시범사업에 연명의료계획서는 107건?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진행한 연명의료제도 시범사업 결과 연명의료계획서 작성건수가 107건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암이나 만성폐쇄성폐질환 등 말기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20만명, 하루에 500명 이상인데, 3개월 시범사업에서 연명의료계획서가 107건뿐이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서울대병원의 한달 말기질환사망자 수가 약 100명이다. 하지만 병원 자체적으로 3달 시범사업을 한 결과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사례가 18건에 불과했다”면서 “이같은 결과는 연명의료제도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반영하기 위한 것임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반영이 안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정확히 어떤 이유라고 말할 순 없지만)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시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하게 하고 반드시 본인서명을 하게 하는 것은 문제”라며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해놓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니 연명의료를 원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오류”라고 덧붙였다.

허 교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있지만 그건 건강할 때 작성하는 것이고 결국 중요한 것은 연명의료계획서”라며 “연명의료계획서 작성건수가 적다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본사업에 들어가겠다는 복지부 발표를 보면 그런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연명의료 중단’ 가족 반대도 넘어야할 산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가족들의 반대가 여전하다는 것도 현장에서는 개선돼야 할 과제로 꼽혔다. 특히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위해 환자 본인에게 서류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되면 가족들의 반대는 더 심해진다고 했다.

허대석 교수는 “죽어가는 사람한테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의사를 묻지 못하는 이유를 파악해보면 가족이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가족들이 나쁜 뜻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고 죽어가는 환자한테 ‘당신이 죽어가는데 중환자실 갈거냐(아니면 연명의료계획서 작성하고 연명의료 받지 않을 것이냐)’고 묻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이런 현실적인 과정 때문에 현장에서 할 수 없는 제도인데 정부는 추진 중”이라며 “서울대병원뿐만 아니라 대부분 의료기관에서 이런 혼란을 겪고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는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데 정부는 문제가 없다고만 한다”고 덧붙였다.

시행과 함께 추진되는 법 개정, 어떤 내용?

하지만 복지부는 오는 4일부터 연명의료제도 본사업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시범사업 등을 통해 확인된 제도개선 방안 중 일부는 이미 국회에 개정안이 발의돼 있거나 향후 논의될 예정인 만큼 국회 입법절차를 통해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현재 논의돼야 하는 주요 사항들은 ▲연명의료 대상 의학적 시술 추가 ▲수개월 내 임종과정에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환자의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허용 ▲말기환자 진단 후 호스피스 제공 환자의 경우 담당의사 1인에 의한 임종과정 판단 허용 ▲대상자가 아닌 사람에게 연명의료 중단 등을 한 자에 대한 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유예 등이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및 항암제 투여의 4가지 연명의료 대상 의학적 시술 외 승압제, ECMO 등 현재 활용되는 연명의료 시술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처벌 유예의 경우 의료계가 원하는 것처럼 법 시행과 동시에 적용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때문에 제도시행 초기 처벌을 우려해 의사들이 연명의료 중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연명의료 결정 환자범위 확대, 여전히 뜨거운 감자

특히 시행과 동시에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지만 연명의료법 제정 당시부터 논란을 일으켰던 ‘연명의료 결정 환자범위 확대’는 논의에서 제외된 것으로 확인돼 향후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 법에서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 있는 환자라고 담당의사와 전문의 1인이 판단하 사람)만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법 제정 논의 초기부터 임종과 연명의료를 연결시키는 것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진짜 연명의료 중단이 필요한 환자들은 말기환자들이라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하지만 이와 관련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이윤성 원장은 “연명의료 결정 환자 범위를 확대하는 논의는 없었다. 대상을 너무 좁게 잡았다는 의견은 있지만 확대 논의는 없었다”며 “다만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범위를 지금보다 좀 이른 시기에 하는 것은 개정 논의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허대석 교수는 “어느 나라 법을 봐도 다 말기환자 하나로 통일돼 있다. 임종과 말기를 쪼개는 것은 우리나라뿐이다. 문제는 2년 동안 이야기 해도 소용없다”며 “임종환자에 대한 기준도 인위적으로 만든 이론적인 것뿐이라 진료현장에서는 구분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연명의료법 시행으로 지금까지 의료현장에서 사용하던 ‘심폐소생술 금지(DNR)’ 서식을 활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민감한 문제다.

이와 관련 이윤성 원장은 “법에 DNR 서식이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의료기관마다 서식이 다 다르고 현실적으로 DNR 오더를 받는 현장은 환자가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라면서 “연명의료법이 추구하는 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인데, 이것과 충돌하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원장은 “법에 DNR 서식을 포함시킬 수는 없었지만 관행적 서식으로 활용, 나중에 문제가 됐을 때 환자가족에게 알렸다는 정도의 증거는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대로 시행되면 의사들 ‘방어진료’ 불가피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제도 시행이 열흘 밖에 남지 않은 현재로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하면서 고치는 방법’뿐이다.

허대석 교수도 "이 정도는 식물인간인 환자에게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할 때 적용하는 법이다. 식물인간인 환자에게 적용해야 하는 법을 임종기 환자에게 적용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시행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은 해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했다.

하지만 허 교수는 “법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면 의사들은 오히려 방어진료를 할 수 있다”며 “그럴 경우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연명의료를 조장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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