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의사 양임용 씨의 '내가 경험한 해외 의료봉사, 그리고 나아가야 할 길'(2)

의대생이거나 의사라면 의료봉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의사들에게 의료봉사활동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회활동이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주변 여건 등에 떠밀려서는 지속성을 유지할 수 없는 게 또 봉사활동이다. 그런데 쪽잠을 자면서까지 진료하느라 수련하느라 여념이 없는 젊은 의사들이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해외의료봉사 활동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중보건의사로 군복무 중인 양임용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또한 많지 않은 휴가기간을 쪼개어 올해도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청년 의사 양임용 전문의가 해외의료봉사활동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며, 이를 통해 다른 의사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알아보자.

프렌즈 의료봉사팀은 성형외과팀, 치과팀, 종합진료팀, 일반지원팀으로 구성되어 각각 구순구개열 수술과 각종 외과적 수술, 구강보건교육 및 치과진료, 소아청소년과 및 내과 진료 등의 활동을 담당했다. 성형외과팀은 ‘강동성심병원’, ‘건국대학교병원’, ‘박진석 성형외과’ 의료진이 호흡을 맞춰 구순구개열 수술과 화상환자 수술, 기타 외과적 수술 등을 담당했고, 약 50여건의 수술을 통해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해 주었다. 치과팀은 치과의사 및 치위생사 선생님들께서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교사와 학생들에게 구강보건교육 및 치과진료를 담당했다. 치과팀의 활동에서 고무적이었던 점은, 수 년째 계속되는 교육과 보건사업을 통해 아이들의 치아 상태 뿐 아니라 구강보건의 중요성에 대한 관계자들의 인식 또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쿠스 소아병원 신생아실에서 아이를 진찰하는 모습

내가 속한 종합진료팀에는 소아청소년과 및 가정의학과 전문의, 약사,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진과 함께 비 의료인 봉사자 분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헌신해 주셔서 진료팀, 약국팀, 접수팀으로 나뉜 작은 병원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각 팀들은 일반진료와 의료상담, 조제 및 복약지도, 예진 및 대기환자 정리 등의 세분화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에 매진했고, 드디어 10월 4일 이른 아침부터 누쿠스 소아병원에 도착하여 장비들과 약품을 정리하며 업무를 시작했다.

나는 낯선 진료실에 잠시 앉아 생각에 빠졌다. 형광등이 켜지지 않아 진료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진료해야 했지만, 밝고 화려한 한국의 진료실과는 사뭇 다른 긴장감과 설레임이 있었다. 어떤 아이들이 나에게 찾아올지 궁금했고 통역을 도와주는 학생들이 있긴 했지만 소통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진료를 해야 할 지도 막막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병원 어디를 둘러보아도 제대로 된 진찰도구를 찾아볼 수 없고 현지 의사들이 사용하는 보급형 청진기와 설압자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비록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진료실 풍경이 그러했으리라 생각하니, 이 나라에 의료봉사팀으로 올 수 있게 된 것이 새삼 감사하기도 하고 가슴 뭉클한 감동마저 느껴졌다. 어느새 진료가 시작되었고 환자, 보호자들과의 대화가 계속되면서 점점 누쿠스의 보건의료 상황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대략 예상은 했지만 충격이 아닐 수 없었고, 좀더 확실하게 파악하고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한 켠에 남았다.

누쿠스 소아병원 진료실 모습

우즈베키스탄 지역의 아이들은 우리나라만큼 급성 감염성 질환이 흔하지 않고 다양한 만성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뒤늦게 찾아본 자료를 통해 철분, 엽산, 요오드, 비타민 A의 부족이 주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임산부들 또한 엽산 이나 철분제 복용이 보편화 되어있지 않아서 다양한 주산기적 문제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임신했을 때 어떤 것을 먹어야 하고 먹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교육이 되어있지 않았으며, 꼭 먹어야 하는 약들 조차도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산모들이 많았다.

또한 성인 뿐 아니라 어린 영아들도 차를 많이 마시는 문화로 인해 철분흡수율이 낮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2002년 UNICEF 연구자료에 따르면 1세 이하 아동의 40% 이상이, 1~3세 아동의 40%가 차를 마신다는 결과가 있었고, 심지어 6개월 미만의 영아에서도 모유수유 이외에 차나 죽을 공급한다고 한다. 이런 문화적 차이는 인해 빈혈 뿐 아니라 다양한 영양학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첫 날 진료실에서 느꼈던 진한 아쉬움은 내가 진료한 아이와 부모님들에게 이런 상황을 개선할만한 많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선천성 기형, 그리고 분만 손상이나 신생아 가사로 인한 만성 후유증으로 수술이나 재활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것, 구충제와 비타민, 그리고 소량의 철분제를 쥐어주는 것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질환들을 경험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결국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특별한 게 없다는 한계의 인식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현지 주민들은 아쉬움이나 불평보다 ‘쓰바시바(감사합니다)’와 아름다운 미소로 감사함을 전해왔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었다.

진료를 기다리는 엄마와 아이의 다정한 모습

이후의 시간들은 감사함의 연속이었다. 날이 지나가면서 환자는 점점 많아졌고, 지역 방송에 소개된 우리 프렌즈 팀의 수술과 진료 문의를 위해 새벽부터 대기하는 분들도 생겼다고 한다. 4일 동안 약 1000여명의 환자들이 방문하였는데, 쉬지 않고 진료와 접수, 약제 업무를 이어나갔다. 육체적으로는 힘들고 우리가 당장 고칠 수 없는 질병들도 많았지만, 그들에게 한마디라도 더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것에 보람과 기쁨이 있었다.

마지막 날 오후엔 현지 병원의 요청으로 입원환자들을 진료하게 되었는데, 이 짧은 시간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값진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병원의 풍경과는 달리 환자복이나 수액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평상복을 입은 채 누워 있었다. 선천성 심장 기형으로 수술이 필요하지만 당장 수술을 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백혈병과 혈우병으로 집중 치료나 관리가 필요하지만 제대로 된 격리 시설 조차도 갖춰지지 않았다. 신생아실에는 열 나는 아이가 입원해 있었지만 특별한 검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없어 보였다. 현지 의료진과 아이들의 보호자의 눈에는 기대감과 간절함이 느껴졌지만, 우리는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누쿠스 소아병원 입원실 풍경

모든 일정이 끝나고 프렌즈 팀원들과 함께 활동내용을 정리했고, 종합진료팀 뿐 아니라 성형외과, 치과팀들의 활약상과 또 다른 감동을 공유하면서 1주일간 누적된 피곤함 마저도 잊게 하는 어떠한 벅차 오름이 있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타지에서 고생한 모든 팀원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묻어있었고, 우리들의 목소리에는 그 민족을 향한 간절함이 배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모든 아름다운 시간들은 단순한 성취감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거룩한 무언가가 있었다.

양임용(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총무이사,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