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동유럽

본지는 '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 여행'이라는 코너를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양기화 상근평가위원의 해외여행기를 싣는다. 양기화 위원은 그동안 ‘눈초의 블로그‘라는 자신의 블로그에 아내와 함께 한 해외여행기를 실어왔다. 그곳의 느낌이 어떻더라는 신변잡기보다는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찾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터키, 발칸,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에 이어 다시 동유럽으로 돌아왔다. 이 여행기를 통해 인문학 여행을 떠나보자.<편집자주>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킹가 성녀의 성당.(좌상) 안톤 비로데크의 걸작 ‘최후의 만찬’(좌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소금상(우)(Wikipedia에서 인용함)

‘킹가 성녀의 성당’은 경이로웠다. 길이 54m, 폭 17m, 높이 10~12m로 지금까지 본 공간 가운데 가장 큰 장소인데 2만2천톤의 소금을 캐낸 공간이라고 한다. 성당바닥은 지하 101m 깊이이다. 1895년 이곳에 성당을 만들 것을 결정하고 광부들 가운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요셉 마르코브스키와 토마스 마르코브스키 형제에게 작업을 맡겼다. 요셉은 성녀 킹가를 모신 주제단을 4년에 걸쳐 제작했다. 역시 광산에서 캐어낸 소금으로 만든 것이다. 1920년 요셉이 죽은 다음에 토마스는 성당의 벽면을 돌아가면서 예수의 일대기를 소금으로 조각하기 시작했다. 1927년 토마스의 죽음으로 작업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안톤 비로데크라는 광부가 작업을 이었다. 주제단 왼쪽에 걸린 ‘최후의 만찬’은 안톤이 1935년에 완성한 최고의 걸작이다. 이 작품은 두께 20cm의 소금덩어리에 조각한 것인데 거리를 두고 보면 원근을 잘 살려 실제의 모습처럼 보인다. 킹가 성녀의 성당에서는 결혼식이나 음악연주회가 열리기도 한다.

성당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조각상이 있다. 교황이 되기 전에 이곳을 방문했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를 비롯하여 독일의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독일의 탐험가 알렉산더 본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폴란드 음악가 프레데리크 쇼팽(Fryderyk Chopin), 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에프(Dmitri Mendeleyev), 폴란드의 발자끄'라고 하는 볼레스와프 프루스(Bolesław Prus),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며 폴란드의 총리였던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Ignacy Paderewski), 스카우트 운동을 창시한 영국의 군인 로버트 베이든파월(Robert Baden-Powell),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이 이곳을 방문했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에는 풍부한 지하수가 흐르고 있다. 따라서 지하에 많은 호수가 만들어졌는데, 그 중에 규모가 큰 에라즘 바라체즈 호수를 구경했다. 나무로 된 난간이 벽을 따라 설치되어 있다. 호수의 깊이가 무려 9m나 된다고 하니 등덜미가 서늘해지는 것은 실내온도가 낮은 탓 일수도, 희미한 불빛에 으스스한 분위기 탓 일수도 있다. 호수바닥에서 부터 천정까지 이어져 버티고 있는 커다란 소금기둥이 인상적이다. 물에 잠긴 소금기둥이 녹지 않는 것은 호수물에 소금이 더 녹아들지 않는 과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1ℓ의 물에 320g의 소금이 녹아 있다. 소금바위 틈을 흐르며 소금을 녹여낸 지하수는 이곳을 포함한 호수에 모여드는데, 지하호수의 물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증발시키면 소금을 얻을 수 있다.

지하호수는 요셉 필와수드스키 이중방에서도 볼 수 있다. 원래는 깊이 5m의 소금물이 채워진 두 개의 방을 길이 10m의 터널로 연결시킨 곳으로 오스트리아가 폴란드를 점령했던 기간에 독립운동을 펼쳤던 요셉 플와수드스키장군을 기리기 위한 방이다. 배를 타고 터널을 통하여 다른 쪽 방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하지만 1915년 오스트리아병사들이 승선인원을 초과하여 배를 탔다가 뒤집혀 7명이 죽는 사고가 있은 뒤로는 수심을 1.5m로 낮추고 배의 운항도 금했다. 더하여 성 존 네포무크의 조각상을 세웠다. 성 존 네포무크는 프라하의 카를교에서 블타바강에 던져서 순교한 성인으로 물에 빠진 자의 수호성인이다.

소금광산에는 보석을 지키는 신에 관한 전설이 오래 전부터 내려온다. 오래된 채광통로에서 흰 수염의 노인을 보았다는 광부의 말에 따르면, 혼자 떨어져 통로를 걷고 있는데 앞에 있는 한쪽의 벽에서 튀어나와 반대편 벽으로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그 짧은 순간 반짝이는 눈으로 광부를 무섭게 노려보면서 손으로는 위험을 알리더라는 것이다. 이 노인은 가스폭발이나, 굴이 무너질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나타나는 것이라고 해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말고 돌아서 동굴 밖으로 나가거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 노인 말고도 동굴 속에서 파란 불빛을 보는 것도 나쁜 일이 생길 징조이다.(1)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화장실과 휴게실이 있는 비스툴라방이다. 지하 125m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소금으로 만든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와 식당이 있다. 이곳에서 광부들이 이용하던 승강기를 타고 지상으로 이동하게 된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으로 가면 두 개의 승강기가 서로 다른 층에 도착한다. 수직갱도를 따라 올라가는 철골구조의 승강기를 타고 40층에 해당하는 높이를 오르다보면 바로 광부가 된 듯하다. 지상에 올라오니 11시반이다.

비스와 강가 바벨언덕 위에 있는 바벨성

다시 크라쿠프로 이동하여 버스를 내리고 보니, 비스와 강의 언덕에 바벨성이 서 있다. 바벨성은 폴란드 피아스트왕조의 마지막 왕 카시미르 3세[폴란드어 카지미에서(kazimierz III Wielki); 1310 – 1370)대왕의 명에 따라 처음 지었다. 폴란드에서 가장 큰 성으로 중세, 르네상스 및 바로크 등 유럽의 대표적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크라쿠프 구도시의 남쪽 끝에 있는 바벨언덕 위에는 지금은 국립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궁전과 황금색 돔을 얹은 르네상스 양식의 지기스문트 예배당이 서 있다. 1595년의 화재로 바벨성의 북동쪽이 타버렸고, 지기스문트 3세(Sigismund III)왕이 재건하였다. 왕은 이탈리아 등에서 최고의 건축과 조각의 장인을 불러들여 성을 지었다. 당연히 세련된 르네상스 건축양식이 적용되었다.

하지만, 1655-1657, 1702년 스웨덴의 침략과 1794년 러시아의 침입 등으로 성이 황폐화되면서 지금은 상원 계단과 버드 룸에 있는 벽난로만이 남아있는 내부장식이다. 1905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셉황제가 재건을 명하여 복원되었다. 1930년에 설립된 박물관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그림을 비롯하여 판화 조각품 등을 보유하고 있다. 그 밖에도 지기스문트 2세 왕의 테피스트리 수집품을 비롯하여 금세공의 공예품, 무기와 갑옷, 도자기 등을 전시하고 있다. 바벨성 아래에는 드레곤스 댄이라고 하는 지하 동굴이 있다. 250m가 넘는 동굴은 2,500만년 전에 형성되었는데, 16세기 들어서 발견되었다. 중앙광장에서 소개한 용의 전설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굴은 창고, 사창가 혹은 거주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동굴의 입구에는 거대한 용의 청동상이 있고 간헐적으로 불을 내뿜고 있다.(3)

폴란드 최초의 야기엘론스키대학은 보수 중.(좌), 내경(중), 내경에서 만난 조각상은 누구?(우)

버스에서 내린 일행은 코페르니쿠스가 수학했다는 폴란드 최초의 야기엘론스키대학(Uniwersytet Jagielloński)을 구경했다. 야기엘론스키대학의 전신 크라쿠프대학은 1364년 카시미르 3세 대왕이 설립하였다. 폴란드 최초의 대학이며 중부 유럽에서는 프라하의 카를대학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 14세기 중반 카시미르 3세 대왕은 국법을 체계화하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할 수 있는 사람을 육성할 고등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우르반 5세(Urban V) 교황로 부터 대학설립 허가를 받아낸 그는 비엘리치카의 소금으로 얻은 자금을 투입하여 대학을 설립하였다. 그의 사후 대학은 구심점을 잃어 교육이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다.

1390년대 들어 브와디스와프 2세(Władysław II Jagiełło) 왕과 왕비의 투자로 대학은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 왕비는 개인의 보석을 처분하여 203명의 학생을 등록시켰고, 천문학, 법학 및 신학분야에서 저명한 학자를 모셨다. 특히 수학과 천문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만든 유럽 최초의 대학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영입된 천문학자 앨버트 부르드스키는 1491년부터 1495년까지 니콜라우스 코페르티쿠스를 가르치게 된다. 1817년 폴란드의 야기에우워왕조의 후원을 받으면서 왕조의 이름을 딴 야기엘론스키대학교로 개명하였고 대학은 부흥을 이룰 수 있었다. 인문학, 법학, 자연 및 사회 과학, 의학 등 15 개 학부를 둔 야기엘론스키대학교는 4천명의 교수진이 80개 분야의 4만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4)

구시가지에 흩어져 있는 대학을 구경하고는 점심을 먹었다. 지하에 있는 식당은 이전에는 포도주를 저장하던 창고였다고 한다. 감자스프와 함박스테이크가 맛있었다. 우리가 식사를 한 곳에서 유대인 지구는 그리 멀지 않아서 폴란드 유대인의 힘들었던 삶을 볼 기회였지만, 일정에 포함되지 않아 아쉬웠다. 포르투갈의 리스본 거리에서 만난 오래된 전차를 설명할 때 인용했던 영국 작가 존 버거의 소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는 크라쿠프의 노비광장(Plac Nowy)에서 11살 때의 선생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중앙광장과 혼동했던 노비광장의 가운데에는 노천시장이 있어 도시 변두리의 마을에서 온 여자들이 직접 기른 양상추, 붉은 무, 겨자무, 오이, 햇감자 등 야채를 바구니나 양동이에 넣어 와서 팔고 있다고 했다. 주인공은 선생님에게 크라쿠프의 차르토리스키 미술관에서 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을 모사한 드로잉을 보여준다. ‘이제 너무 늙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서서 그림을 그리는 건 무리예요’라고 변명을 하면서도 선생님이 항상 자기연민을 혐오했던 것을 기억해낸다. 자기연민은 많은 지성인들의 나약함이며, 그런 태도를 경계하라는 것이 선생님에 주인공에게 전해준 유일한 도덕적 명제라고 했다.(5) 다시 크라쿠프에 갈 기회가 있다면 이 책을 들고 가리라.

타트라산맥에 접근 중. 눈길이 닿는 곳마다 스키 슬로프가 널려 있다.

점심을 마친 1시반 경 동유럽의 알프스라는 타트라산맥 아래 휴양도시로 정한 숙소를 향하여 출발했다. 타트라산맥(Tatras)은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의 국경에 걸쳐 동서로 누워있는 산맥이다. 785평방킬로미터의 면적 가운데 77.7%인 610평방킬로미터는 슬로바키아에 속하며 22.3%인 175평방킬로미터는 폴란드의 영토이다. 최고봉은 2,655m 높이의 게를라호프스키(Gerlachovsky)로 슬로바키아의 포프라드(Poprad) 북쪽에 있고, 폴란드 쪽의 최고봉인 2,499m의 리시(Rysy)는 자코펜(Zakopane) 남쪽에 있다. 대부분의 국토가 평원인 폴란드에서 산지로는 유일하기 때문에 타트라산맥은 많은 전설을 품고 있다. 타트라가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999년으로 체코의 보레스라우스 2세(Boleslaus II) 공작이 임종할 때, 공작령이 트라이트리 몬테(Tritri Monte)에 이르렀다고 적은 것이다. 1683년에는 타트라에서의 모험과 소풍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책이 유럽사회에서 인기를 끌어 타트라 관광에 기여하였는데, 익명의 저자는 뒤에 브로츠와프(Wrocław)에서 태어난 다니엘 스피어(Daniel Speer)로 밝혀졌다.

타트라에서 인기 있는 겨울스포츠 도시로는 1999년에 리조트를 설립한 슬로바키아의 포프라드(Poprad)와 비소케 타트리(Vysoké Tatry)가 있고, 폴란드 쪽에는 폴란드의 겨울수도라고도 하는 자코파네(Zakopane)가 있다. 우리가 묵는 숙소는 포프라드이지만, 타트라산맥을 넘어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자코파네가 아니었을까 싶다. 폴란드의 남쪽 끝 타트라산맥의 기슭에 자리한 자코파네는 27,424명(2016년 기준)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로 타트라산맥이 이어지는 장엄한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다. 자코파네지역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250만이나 된다고 한다.(6)

숙소가 있는 도시 어디서나 타트라산맥이 보인다.(좌)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데 해가 타트라산을 넘어간다(우)

크라쿠프에서 우리가 묵을 호텔 사텔 포프라드(Hotel Satel Poprad)가 있는 작은 도시까지는 3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이다. 버스가 한 시간여를 달렸을까? 창밖 풍경이 바뀌었다. 멀리 제법 높이가 있어 보이는 산들이 이어지고, 그 위로 떠있는 구름이 한가로워 보인다. 타트라에 가까워지면서 숲 사이로 파란 잔디가 덮인 스키장이 이어진다. 심지어는 도로변에서 리프트를 탈 수 있는 곳도 있다. 당연히 스키장을 중심으로 예쁜 집들이 모여 있다. 식당이 있는 숙소들이다. 스키철에는 동구권은 물론 러시아에서도 스키를 즐기러 몰려온다는데 러시아에서는 우랄산맥보다 가깝기 때문에 인기란다. 인구 5만의 타트라시가를 지나서 5시반경에 변두리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방을 정하고 나서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근처에 있는 쇼핑몰에 쇼핑을 나갔다. 쇼핑몰에 슈퍼마켓이 있어서 과일 등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쇼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보니 거리는 벌써 인적이 뜸해졌다.

참고자료:

(1) 스타투어 블로그. 소금광산(비엘리치카 : Wieliczka).

(2) Wikipedia. Wawel castle.

(3) Expedia Korea. Dragons Den.

(4) Wikipedia. Jagiellonian University.

(5) 존 버거 지음.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81-105쪽, 열화당 2006년

(6) Wikipedia. Tatra Mount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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