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주최 그랜드포럼서 '지역사회 중심 일차의료체계 개선' 방향으로 제시
일차의료 인력양성에 정부 지원 필요…일차의료 기관-병원 수가체계 분리 제안

“한국에는 만성질환에 대처할 일차의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대한 요구가 계속되는 가운데 청년의사가 지난 13일 개최한 창간 25주년 기념 그랜드포럼 ‘한국의료체계, 새 판을 짜자’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고령화로 인해 급증할 만성질환을 관리하기 위해선 지역사회 중심의 일차의료체계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지역사회 일차의료 강화를 위해선 인센티브 등 관련 수가 체계 마련과 시범사업, 의사 대상 보수교육 등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이날 ‘새로운 공급체계 뒷받침할 의사양성 방안’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조희숙 교수는 “새로운 공급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의사 양성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조희숙 교수는 “기존 병원 중심체제에서 일차의료는 말 그대로 의료전달체계의 일차일뿐이었다”며 “이제 급성기가 아닌 만성질환에서의 일차의료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치료’ 뿐 아니라 ‘돌봄’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라고 했다.

현재 의대 교육 시스템은 임상적인 교육에만 치우쳐 있어 일차의료에 필요한 인구집단에 대한 이해 및 예방, 환자 상담 등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강원대 조희숙 교수

또한 일차의료에 요구되는 역량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의대에서는 일차의료에 대한 교육 의지가 되레 약해지고 있다고도 했다.

조 교수가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6년에는 40개 대학 중 28개 대학(68%)이 학습목표에서 일차의료를 우선순위로 뒀지만, 같은 대학을 대상으로 한 2017년 조사에선 16개 대학(39%)만이 학습목표에서 일차의료를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이는 일차의료를 더 가벼운 의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에도 일차의료가 간단한 질병을 다루는 곳이고 대학병원보다 실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일차의료 의사들이 만성질환 예방과 재활을 담당할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같은 교육을 유도하기 위해선 만성질환에서의 일차의료에 대한 인센티브 정책이 함께 해야 한다고 했다.

조 교수는 “외국에선 일차의료 양성이 복합만성질환자에 맞춰서 이뤄지고 있다. 일본은 2년간 이같은 임상훈련 후 개업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고 스웨덴도 의과대 졸업 후 21개월간 임상 훈련 이후 일반진료 자격을 부여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간 일차의료 기관의 역할이 (급성기 치료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지역사회 일차의료 강화를 위한 역량에는 무심했고 제한적 일차의료만 제공됐다. 대부분이 일차의료기관을 개업한 이후에 일차진료 역량을 배워나간다”며 “인센티브 정책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만큼 의대를 탓할 일은 아니다. 수가와 교육 부분에 대해서 정부의 강력한 재정적 지원,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 의료체계, 시범사업부터 해보자”

1·2·3차를 통합한 의료체계 개편을 위해 시범사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선임연구위원

통합한 의료체계에서 일차의료는 케어 코디네이터(care coordinator) 기능을 수행하면서 환자에게 의료서비스 제공과 함께 스스로 질병을 케어할 수 있는 훈련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선임연구위원은 '의료공급체계 새판을 어떻게 짤 것인가?' 주제발표에서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하는 시범사업 모형을 제안했다.

신영석 연구위원은 일반인들이 주도적·자발적으로 건강관리를 하는 소비자 중심의료를 만들기 위해 미국의 책임의료조직(Accountable Care Organization, ACO) 형태를 참고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ACO는 의료서비스 공급자와 지역사회구성원 및 이해관계자 간 파트너십에 의해 운영되는 지역사회 기반 조직체를 뜻한다.

네트워크 내 일차 의원들이 가입자들의 모바일 데이터를 통해 생활습관, 식이, 만성질환 등을 관리하도록 함으로써 예방 관점에서 국민건강을 증진시키자는 것이다.

신 연구위원은 "이제 대부분의 국민이 스마트기기 사용에 제약이 없다. 일상생활에서 오는 건강정보가 (일차의료 기관에서) 상시 관리될 수 있다면 효과적인 의료가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이를 통해 단일보험시스템으로 인한 독점구조에서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복수의 ACO에서 경쟁이 유발될 거라는 분석이다.

신 연구위원은 "네트워크에 가입한 가입자들이 (서비스가) 형편없어 옮기려고 하면 해당 네트워크는 존재를 할 수 없게 된다"며 "시급히 시범사업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ACO의 다음 단계로 단일보험자 체제를 다보험자 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주의대 전기홍 교수는 "최종적으로는 단일보험자를 3~4개의 다보험자로 바꿔야 한다. 반대하는 입장에선 의료가 공공재여서 안 된다는 논리가 있겠지만, 의료는 개인의 편익이 개인의 이익으로 오기 때문에 국방 등과 같은 공공재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전 교수는 “개인 편익을 누릴 경제가 부족한 사람들은 복지에서 담당할 부분이다. 다보험자로 전환이 어렵다면 단일보험자의 관리 하에 지역의 3~4개 ACO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를 겨냥한 쓴소리도 나왔다. 비급여의 급여화를 강조한 문재인 케어와 함께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서도 적극적 행보가 있어야 한다는 견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이주호 정책연구원장은 “새정부 들어 문재인 케어가 발표되면서 정부에서 먼저 의료체계의 새판을 짜자고 나올 줄 알았는데 잠잠한 것 같다”며 “비급여에 관한 논의도 필요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의료체계 개선 없이는 힘든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연구원장은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됐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환자들은 그 상황에 합리적으로 적응해서 의료를 이용하고 있다”며 “이런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선 이해당사자간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이해당사자들간 내부 합의를 통해 더 합리적인 안을 내밀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 등 유관단체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일차의료를 수행해야 할 의사들이 대부분 전문의 교육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일차의료 의사양성 방안에 이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신성식 기자는 “동네의원은 항암제를 처방하고 대학병원에선 많은 경증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일차의료가 없다는 말도 나왔지만) 의원과 상급종합병원이 모두 감기환자를 본다는 면에선 다 일차의료를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일차의료 없이는 초고령화 사회를 감당하지 못한다. 일차의료 의사를 어떻게 양성할지 그 방안에 대해 의학회나 의사협회가 시급히 나서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차의료를 수행하는 기관과 병원에 대한 수가체계를 따로 마련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전문과목별로 상대가치를 산정하는 현재 방식에서는 동네의원과 병원이 경쟁하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한림의대 조정진 교수는 “일차의료와 병원의 무한경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차의료+건강증진 VS 병원’으로 재정분리가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무분별한 경쟁관계를 해소할 수 없고 3차 병원에 일차의료가 종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ACO 도입에 앞서 국내 현실을 고려한 일차의료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조 교수는 “일차의료 의사 몇명을 양성한다고 일차의료 체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복합만성질환에 돌봄이 필요하다면 이 돌봄의 기능을 다시 만들어야만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방병원 등 일부 역할을 하고 있는) 기존 조직을 잘 연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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