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필자의 ‘주치의제도의 대가는 무엇인가?’(청년의사 지난 6월 19일자 오피니언)에 대한 고병수 원장님의 반론(주치의제도의 대가는 안정된 진료와 환자들의 만족이다, 청년의사 지난 6월 22일자 오피니언)을 꼼꼼히 읽었다.

고병수 원장님은 2010년 외국 여러 나라의 주치의제도를 소개한 '온국민 주치의제도’라는 책을 출간했다. 개원의로서 주치의제도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의료정책 학자가 출간한 연구서도 거의 없는 현실에서 귀중한 책을 낸 것에 깊이 감사드린다.

어쩌면 고병수 원장님은 주치의제도에 대한 애정이 너무 깊어 약간 거리를 두고 제도의 장단점을 논의하기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치의제도가 제대로 실현되기를 바란다면 오히려 관련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한 철저한 고민이 필요하다.

환자들은 약을 복용하면 원하는 효과만 나타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약은 원하는 효과(약효)와 동시에 원하지 않는 부작용을 야기한다. 약의 효과가 좋아도 부작용이 크면 약을 쓸 수 없다. 그래서 약의 효과 뿐 아니라 부작용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의사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약의 부작용에 대해 언급했더니 약의 효과만 잔뜩 나열하며 좋은 약이라고 주장한다면 생산적인 토론은 불가능하다. 약의 ‘효과’는 효과대로 약의 ‘부작용’은 부작용대로 구별하여 논의해야 한다.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정책에는 원하는 효과가 있지만 치러야 할 부작용(대가)이 있다.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효과도 고려해야 하지만 당연히 부작용(대가)도 고려해야 한다. 정책의 효과가 좋아도 부작용이 크면 추진해서는 안 되는 정책이다.

필자는 ‘주치의제도의 대가는 무엇인가?’에서 주치의제도의 효과가 아닌 부작용(대가)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고병수 원장님은 주치의제도의 대가라며 주치의제도의 환상적인 효과를 나열하고 있다. 정책의 ‘효과’는 효과대로 정책의 ‘부작용’은 부작용대로 구별하여 논의해야 한다.

한편, 의사는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한 후 동의를 얻어 치료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의사는 치료의 효과 뿐 아니라 부작용에 대하여도 설명해야 한다. 그러한 설명을 듣고 환자가 치료를 받겠다고 결정할 때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보호됐다고 표현한다. 만일 의사가 치료의 효과만 설명했는데 부작용이 발생했다면 의사에게는 상당한 책임이 따를 수 있다.

정책이라고 다르게 생각해선 안 된다. ‘내가 주장하는 것이 선이다’라는 태도보다는 국민에게 정책의 장점과 단점, 효과와 대가를 잘 알려 주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후 정책을 선택할 수 있을 때 국민의 자기결정권이 보호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을 실현하는 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주치의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분들은 환상적인 효과만을 말한다. 부작용을 분석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더 나아가 부작용에 대한 논의는커녕 도대체 도입하고자 하는 주치의제도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주치의제도의 구체적 내용은 나라마다 매우 다르다. 나라마다 의료환경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주치의제도를 도입한다면 우리나라 의료환경에 맞게 조정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주치의제도의 도입을 주장한다면 우리나라 의료환경에 맞는 주치의제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안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합리적 정책추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주치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환상적인 효과만을 나열한다. 그래서 내용도 모호한 주치의제도에 대하여 그냥 찬성하는 사람이 있고 그냥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정책의 장단점에 대한 합리적 논의의 장은 사라지고 이념의 전쟁터를 만들어 버린다.

합리적 논의의 첫걸음은 주치의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분들이 도대체 어떤 주치의제도를 도입하자고 하는 것인지 그 내용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작용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말하는 것이다. 환자의 선택권은 어떻게 어느 정도로 제한해야 하는 것인지, 거기서 생기는 문제점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문지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의사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수 있는지, 신규의사들의 보호 대책은 무엇인지 등. 궁금한 것이 많다. 고병수 원장님의 반론이 의미 있는 토론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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