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일반 국민에게 주치의가 있으면 좋겠냐고 물어보자. 별도의 비용 부담도 없다면 거의 모든 국민이 좋다고 할 것이다. 주치의란 용어는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재벌 회장이나 대통령에게는 주치의가 있다. 보통 사람인 내게도 주치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용어’는 종종 오해를 야기한다. 대표적인 예가 존엄사다. 존엄하게 죽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존엄사라는 용어는 여러 오해를 야기한다. 그래서 법원은 소위 김할머니 판결에서도 존엄사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대신 법원은 연명치료라는 객관적 용어를 사용했다. 연명치료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존재한다.

주치의란 용어는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치의제도는 좋은 효과만 만들어 내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모든 정책에는 대가가 있다. 주치의제도의 대가는 무엇인가? 이를 논하려면 우선 주치의제도의 실내용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나라마다 주치의제도의 실내용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응급상황이 아닌 한 자기 주치의의 결정이 없으면 다른 곳에 개업한 일차 진료의 혹은 상급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제도를 말한다. 소위 게이트키퍼(gatekeeper) 기능을 우선하는 주치의제도다. 영국 NHS의 주치의제도가 이와 유사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주치의제도를 도입한다면 국민은 크게 세 가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중 첫 두 가지는 영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문제다. 그러나 마지막 한 가지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다.

첫째, 주치의제도는 공적 의료체계 내에서 환자의 선택권을 매우 제한한다. 현재 우리나라 환자들은 원하는 일차 진료의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원하는 대학병원에서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진료의뢰서가 없어도 비용 부담이 늘 뿐이다.

그러나 주치의제도를 도입하면 응급환자가 아닌 이상 환자는 더 이상 이런 선택권을 향유할 수 없다. 주치의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 개업한 주치의는 물론 대학병원에도 마음대로 갈 수도 없다. 주치의의 판단은 절대적 권한을 갖는다.

이는 후속되는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주치의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고 대학병원에 가기를 원하는 환자들은 어떤 이의제기 절차를 거쳐야 하나? 응급환자가 아님에도 그런 이의제기를 허용할 것인가? 누가 판단할 것인가? 주치의가 불만을 회피하기 위해 원하는 환자를 모두 대학병원으로 의뢰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치의가 환자의뢰를 하지 않았는데 환자의 상태가 나빠진다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것인가 등등.

둘째, 주치의 제도는 공정거래법 제19조의 부당공동행위(답합)의 한 유형에 해당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금지되는 부당공동행위의 유형에는 시장분할행위가 있다. 예를 들어, 토건업체들이 우리나라 전역을 나눠 전라도는 A사, 경상도는 B사, 이런 식으로 지역을 분할해서 지배하는 행위를 말한다. 시장분할행위는 신규업체들의 진입을 억제한다.

주치의제도는 개개의 국민을 개개의 일차 진료의와 강력하게 묶는 제도다. 개개의 국민은 함부로 자기 주치의를 떠날 수 없다. 신규의사 입장에서는 기존의사들이 의료시장을 나누어 지배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따라서 주치의제도를 도입할 때는 신규의사들의 생존과 권리를 어떻게 보장해 줄 수 있는가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셋째, 주치의제도는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 외의 진료를 받을 권리를 극단적으로 차단하게 된다. 영국은 NHS 제도 아래에서 모든 국민에게 의료이용을 하려면 줄을 설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줄 서기 싫은 국민은 자기 돈으로 사적 진료(private care)를 이용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이를 허용하지 않으면 환자들의 욕구는 폭발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사적 진료를 영국 NHS의 안전밸브(safety valve)라고 표현하는 학자도 있다.

반면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모든 국민과 모든 요양기관을 국민건강보험 체계로 강제로 끌어들였다. 더 나아가 비급여진료와 관련하여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인정한 법정비급여 외에는 ‘임의비급여’라며 불법화하고 있다. 법원은 백혈병 임의비급여 판결에서 소위 의학적 임의비급여를 허용했지만 그 요건은 매우 엄격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주치의제도를 도입하면 영국보다 훨씬 더 극단적으로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게 된다.

주치의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의료인이나 학자들은 그 장점과 함께 단점도 국민에게 잘 알려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