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 원장, 박형욱 교수의 ‘주치의제도의 대가는 무엇인가?’를 읽고

지난 6월 19일자 청년의사 칼럼에 실린 박형욱 교수님의 글 ‘주치의제도의 대가는 무엇인가’를 접한 건 잘 아는 동네의원 의사를 통해서다. 평소에 일차의료나 주치의제도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박 교수님의 글을 읽고 SNS로 내게 보내와서 알게 됐었다. 글을 보내줄 때 그 친구는 마치 난리가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길래 도대체 어떤 내용이지 하고 우려를 하면서 들여다봤다. 주치의제도에 대한 무지한 비판을 적었을까봐서이다.

탑동365일의원 고병수 원장

글을 읽고 나서 보니, 그 글을 소개해준 친구가 지나치게 걱정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박 교수님이 주치의제도에서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는 잘 짚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점은 주치의제도에서 우려스럽거나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 것 세 가지를 소개했는데, 사실 그에 대한 해결 방도도 박 교수님 자신이 알고 있으실 텐데 애써 그런 점은 뒤로 하고 부정적인 것들만 부각시켰을까 하는 안타까움이다.

주치의제도는 원래 주치의등록제도의 약자이다. 말 그대로 등록을 통해 일정한 의사로 하여금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을 돌봐주는, 일차의료의 강화된 형태를 말한다.

그 반대의 의료 이용 행태는 우리가 흔히 겪는 의료 쇼핑, 또는 닥터 쇼핑이다. 의사로서 일하다보면 어떤 건강상의 문제를 가지고 여기저기 의료기관을 돌아다니거나, 치료 중 다른 데로 가버려서 치료가 중단되는 일을 많이 본다. 그에 대한 문제점들은 치료 중단으로 인한 병의 악화도 있지만, 감염병의 경우 퍼지기 쉽다는 점, 중복 진료로 인한 의료비 상승의 문제 등이 있다.

2015년 이맘 때 전국을 휩쓸며 우리를 공포로 몰아갔던 메르스 사태는 지역에서 주치의를 통한 진료가 안 되고 닥터 쇼핑을 하면서 급속도로 전파된 측면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는 메르스 환자가 자신을 잘 알고 여러 가지 문진을 하는 주치의 진료를 받으면서 초기에 메르스가 차단된 바 있다.

주치의제도가 반드시 ‘선(善)’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일차의료를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많은 보건의료 연구자들은 등록을 통한 주치의제도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에 한국에서처럼 일차의료가 정립이 안 되어있고, 보건의료체계 전반이 혼란스럽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주치의제도는 우리 현실에 안 맞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가야 할 길을 애써 피해야 할 것인가?

한국의 일차의료 현장에 만족하는 의사들이 얼마나 있을까? 2~3분 진료, 맘에 안 들면 다른 데로 가버리는 환자들, 낮은 수가로 저녁이나 공휴일까지 진료해야 하는 현실…. 과로와 보람을 잃고 있는 4평도 안 되는 진료실에서 우리 동네의원 의사들의 미래는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가, 박 교수님을 비롯해서 반대론자분들에게 묻고 싶다.

박 교수님이 지적한 주치의제도의 문제점 세 가지를 보면 첫째로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문제는 오래 전의 모습들이다. 오늘날 일차의료 환경은 많이 바뀌고 있어서 환자들의 선택권을 넓히려는 쪽으로 흘러간다. 예를 들면 영국 NHS 아래에서 주치의 등록도 주거지 주변 의원에다 하고 자기가 다니는 회사 근처에서도 할 수 있다. 등록 기간을 1년으로 한정하지만 필요하면 다른 의사에게 등록하는 것도 많이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주민들은 한번 정한 주치의를 거의 바꾸지 않는 것으로 통계가 나오는데 그 이유는 자기와 가족들을 잘 아는 의사를 바꾸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러한 경로를 벗어나서 마음대로 대학병원을 이용하는 한국은 전문 진료에 매진해야 할 대학병원 의사들이 동네의원에서 해결해야 할 환자들을 보느라고 소중한 시간을 뺏기고 있고, 환자들은 오랜 시간 기다려서 겨우 몇 마디 듣고 돌아서야 하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외래 환자를 두고 협력해야 할 동네의원과 대형병원의 치열한 경쟁은 여기에서 논하지 않겠다.

박 교수님이 두 번째로 지적한 공정거래의 원칙을 어겼다는 것은 너무 억지인 듯하다. 그러한 제도가 만들어지면 법률로서 정하게 되고, 그로 인해 공정거래의 문제가 생겼다는 예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긍이 가는 지적은 신규 의사들의 개원 진입 문제인데, 자기가 개원하고자 하는 동네에 이미 있는 의사들이 등록 주민 명부(patient list)를 가지고 있으면 새로 들어가려는 신규 의사들은 자리가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일면 올바른 지적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국이나 일본처럼 의료를 자유시장 체제에 맡겨놓은 곳에서나 생기는 고민이다. 개원 자리가 없어서 의사들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독일의 경우에 대도시의 경우에는 다소 경쟁을 감수하고 개원을 하는 경향도 있기는 하지만 대게의 경우는 지역마다 균등하게 의사들이 분포하게 하려는 정부나 지자체, 의사단체의 노력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동네의원끼리 경쟁은 그다지 심하지도 않고 안정되게 진료 업무에 충실할 수 있게 된다.

세 번째로 지적한 임의비급여에 대한 비판도 공정거래법 얘기와 마찬가지로 주치의제도의 정당한 문제 제기로는 다소 생뚱맞다. 물론 임의비급여 중에서도 의학적으로나 효용성으로 볼 때 필요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제한하는 것은 현대 의료의 특징인 근거중심 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지 무조건 묶어버리고 환자들의 선택권을 축소시키자는 의도는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지 않는가?

주치의제도도 문제점은 있다. 더욱이 한국처럼 질서가 흐트러진 의료 환경이 오래도록 고착화 된 곳에서는 도입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과거처럼 억지로, 급격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현실을 잘 보면서 긴 안목으로 제도를 변화시켜 나간다면 우리에게도 안정된 일차의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자신한다. 그것은 힘들게 지역에서 일차의료를 지켜나가는 일선 의사들에게도 안정감을 줄 것이고, 지역 주민들도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체계가 될 것이다.

박형욱 교수님의 글 첫 부분에 쓴 ‘주치의제도의 대가는 무엇인가? 이를 논하려면 우선 주치의제도의 실내용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라는 말은 두 손 들고 찬성한다. 이제 의사들도 국민들을 위해 좋은 의료제도를 선물할 자신감이 있어야 하고, 국민들도 왜곡된 의료 현실과 제대로 된 수가에 대해서 인정하면서 안정된 의료체계를 갖추도록 모두가 기초에서부터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주치의제도를 처음 논의한 지 30여 년 동안 우리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는 반성에서부터 시작하자고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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