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호스피탈리스트 시범사업 10개월, 성공을 위한 해법은②
명확한 역할 설정 및 신분 안정화, 수가 가산 등 활성화 방안 필요

전공의특별법 시행에 따른 전공의들의 근무시간 단축 및 수련환경 개선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호스피탈리스트(입원전담전문의)제도. 불안정한 계약직 신분이라는 점 때문에 시범사업이 시행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의 입원 일수 감소 및 의료인력 부족에 따른 공백 최소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면서 호스피탈리스트 도입 필요성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그렇다면 호스피탈리스트제도가 하루 빨리 정착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서울대병원 호스피탈리스트 이현정 전문의는 호스피탈리스트의 업무 자율성을 보장한 ‘병원의 비전제시’를 꼽았다.

이 전문의는 “서울대병원에서 운영 중인 호스피탈리스트의 장점은 업무의 자율성이 보장된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환자가 입원하면 타과 펠로우의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분과처럼 우리가 환자 케어를 책임진다”고 설명했다.

입원환자에게 문제가 생겨 협진이 필요할 경우 동등한 입장에서 분과전문의에게 협진 의뢰를 하고 있다는 것.

이 전문의는 “호스피탈리스트가 전공의특별법 시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력 부족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부정적인 시선이 있는데 서울대병원은 업무의 자율성 보장이라는 비전을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문제를 해소했다”면서 “병원 내에서의 충분한 사전 준비와 논의가 이러한 시스템을 가능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조금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제도 활성화를 위해선 호스피탈리스트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의사로서 소신 진료를 보장하는 등의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아무리 높은 연봉을 주더라도 전공의 업무를 대체하는 수준의 비전이라면 지원자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분당서울대병원 A교수는 “호스피탈리스트 활성화를 위해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라며 “동기부여가 된 사람들이 모여서 좋은 팀워크를 이루고 서로 협조하고 배려하면서 근무하는 분위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교수는 “새로운 시스템을 적용하고 문제점을 검토·개선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를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병원도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장성인 교수는 호스피탈리스트 활성화를 위해 추가 수가 지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호스피탈리스트 활성화를 위해 인력풀이 많아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전제 외에도 지불제도나 전달체계 문제 등이 해결돼야 한다”면서 “지방의 경우 수도권보다 급여가 높은 상황임에도 지원자가 없는데 그렇게 되면 급여수준을 높여 지원자를 모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병원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그러나 “이러한 비용을 병원이 모두 부담하게 해선 안 된다”며 “미국의 경우 지역 평균 인건비를 반영해 수가를 책정하고 있다. 우리도 지역에 수가를 가산하는 방안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들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주문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현재 호스피탈리스트 준비를 병원 자율에 맡겨놓다 보니 병원들은 물론 병원 내에서도 차이가 생길 수 있는 것”이라면서 “단순히 모집 공고를 내는 과가 있는 반면 과장이나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호스피탈리스트를 설명하고 지원자를 알아보는 과도 있다. 호스피탈리스트를 담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일하냐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우리 의료현실에 맞는 시스템 구축을 위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대한내과학회 유철규 이사장은 “미국에서 호스피탈리스트제도가 시행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병원마다 시스템 차이를 보이고 있다”며 “우리도 호스피탈리스트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문제점을 개선하고 발전방향을 논의하는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우리 현실에 맞는 시스템을 개발한다면 호스피탈리스트 활성화는 물론 안정화도 더 빨라질 것”이라 말했다.

계약직인 신분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제도 활성화를 꾀하는 병원도 있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호스피탈리스트를 정년트랙으로 인정해 신분 안정성을 확보했으며, 충북대병원도 호스피탈리스트 중 일부를 정규직화 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호스피탈리스트 활성화에 나선 내과학회…TF, 상설위원회로 전환

내과학회도 호스피탈리스트 활성화 방안 모색에 한창이다.

내과학회는 지난 24일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제1회 대한 입원전담전문의 워크샵’을 개최하고 학회 차원의 활성화 방안을 공개했다.

내과학회 강현재 총무이사는 “입원전담전문의 협의체를 통해 복지부와 시범사업 활성화 및 정규제도화를 논의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현재 TF로 돼 있는 입원전담전문의 위원회를 확대해 상설화하고, 내과 입원전담전문의 대표를 뽑아 위원회에 참여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입원전담전문의들의 질 관리를 위한 워크샵 및 연수 강좌 등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할 방침이며, 호스피탈리스트 community 지원에도 힘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학회 차원에서 입원전담전문의 교육 인증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입원전담전문의가 입원환자 진료의 전문가로서 필요한 시스템과 팀의 구축, 최신의 의학지식 및 연구 역량 등을 교육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입원전문전담의가 독립된 전문분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겠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내과학회는 ▲호스피탈리스트 대국민 홍보활동 ▲전공의 교육프로그램 운영 ▲호스피탈리스트 등록·관리 지원 등에 나설 방침이다.

한편 이날 내과 호스피탈리스트 대표로 선출된 서울아산병원 안수종 전문의는 호스피탈리스트 모임을 활성화해 제도 개선에 힘을 보태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안 전문의는 “계약직으로 운영되는 호스피탈리스트가 롱(long) 펠로우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실제 근무하고 있는 호스피탈리스트들이 모여 제도 개선 및 발전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제도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말했다.

안 전문의는 또 “현재 (호스피탈리스트와 관련한)수가가 입원 수가 밖에 없는데 초음파를 비롯 다양한 수가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수가가 많아져야 병원 입장에서도 호스피탈리스트를 더 늘리게 되고 그래야 제도가 안착할 수 있다. 학회와 함께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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