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한국형 호스피탈리스트 시범사업, 성공을 위한 해법은①
10개월간 참여기관 42%에 불과…처우‧비전 문제 여전히 발목

호스피탈리스트(입원전담전문의)제도가 시범사업에 들어간 지 10개월이 되고 있지만 지원자 부족으로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입원환자에게 안전한 병원 환경과 수준 높은 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공의들의 근무시간 단축 및 수련환경 개선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전문의들의 외면으로 제도 정착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오는 연말부터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가 법제화되는 만큼 진료공백을 호스피탈리스트를 채용해 메우려던 병원들의 계획에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는 호스피탈리스트 시범사업에 참여할 30개 기관을 지정하고, 같은 해 9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호스피탈리스트 병동 운영 현황(보건복지부 제공)

복지부는 올 2월 6개 기관을 (내과계 27개, 외과계 16개, 내과계·외과계 동시 참여 7개 기관)을 추가로 선정했지만 지난 4월 현재 36개 기관 중 42%에 불과한 14개 기관(내과계·외과계 동시 운영 4개 기관)만이 가까스로 호스피탈리스트 병동을 운영 중이다.

시범사업이 저조한 원인은 지원자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1억5,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제시하고 있지만 전문의들이 매력을 느끼기에는 부족했다.

1년 내지 2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하는 신분의 불안정성과 호스피탈리스트라는 직군이 어떻게 발전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전문의들의 지원을 막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A전문의는 “현재 제한된 인력으로 여러 가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근무 강도가 높은 데 비해 급여를 비롯한 보상은 불만족스러운 상황”이라며 “업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지원자는 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도 자체가 지속될 수 없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아산병원 B전문의는 “호스피탈리스트들이 임상조교수들보다 나은 급여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임상조교수는 어느 정도 미래가 보장돼 있는 것에 비해 호스피탈리스트는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계약직에 불과하다”며 “이 문제로 호스피탈리스트 지원을 꺼리는 전문의가 생각보다 많다”고 전했다.

B전문의는 이어 “인프라가 갖춰진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것을 희망해 호스피탈리스트로 근무하고 있지만 신분에 대한 불안감이 없을 수는 없다”며 “빨리 호스피탈리스트제도가 안착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C 교수는 “우리 병원도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원자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같은 계약직인 펠로우는 차후 분과전문의가 된다는 희망이 있어 지원자가 넘치지만 호스피탈리스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명확성이 커 지원이 저조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지원 편중 문제, 그 원인은?

더욱이 호스피탈리스트 병동을 운영 중인 14개 기관 중 9곳이 서울과 인천, 경기도 등 수도권에 몰려 있을 정도로 호스피탈리스트의 수도권 집중현상도 문제다.

전공의특별법 시행에 따라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이 본격화될 경우 호스피탈리스트로 인력공백을 메워나가야 하지만 지방에서 근무하기를 꺼리는 데다, 지방일 수록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호스피탈리스트들의 업무강도가 강할 것이라는 점 때문에 채용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D전문의는 “평균 이상의 연봉이나 확실한 신분 보장 등의 처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아무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내려가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 E 교수는 “호스피탈리스트는 팀이 만들어져야 제대로 된 로테이션을 운영할 수 있는데 지방은 지원자가 없거나 많아야 한두 명 수준이라 팀을 만드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라며 "그러다보니 지방병원은 병동운영이 자꾸 늦어질 수밖에 없고, 인력이 모자라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다보니 있던 지원자도 그만두기 일쑤다”라고 토로했다.

처우도 문제지만 정부와 병원이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는 “전문의들 입장에서도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1~2년 근무하는 것은 스펙이 될 수도 있지만 지방에서의 근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는 정부와 병원들이 호스피탈리스트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병원 내 타 직군 의사들과의 불편한 관계도 지원을 주저하게 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F 전문의는 “호스피탈리스트에 대한 간호팀과 환자의 만족도는 매우 높지만 기존 펠로우들과 관계에서는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면서 “호스피탈리스트가 늘어나면 그만큼 펠로우 자리가 줄어든다. 이 부분에 대해 서로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병원이 우리에게 임상조교수 지위를 주면서 기존에 임상 트랙에 있던 의사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겼다”면서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으로 그 사람들이 편해진 것도 있지만 급여 차이가 커 불만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호스피탈리스트를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만 않은데 이러한 문제도 전문의들이 지원을 주저하는 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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