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 환자 진료에 특화된 센터…연간 8회 이상 재난 대응 훈련 

최악의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는 픽션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는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왔다. 원전 밀집도 세계 1위인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 지진 이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불안감도 한몫했다. 영화에서 원전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규모 6.1의 지진이었다. 영화 <판도라>처럼 원전 사고가 현실에서 발생한다면 의료적인 대응체계는 갖춰져 있을까. 청년의사는 의료인에게도 생소한 피폭 환자 치료와 방사선 재난 시 의료대응체계를 알아봤다.

지난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소개 과정에 있던 지역 주민 60명이 사망했다. 피폭 때문이 아니었다. 버스 안에서 24시간 이상 대기하면서 저체온, 기저질환 악화, 탈수 등으로 사망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원전 사고로 의료대응체계가 붕괴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원전 주변에 대도시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영화 <판도라>에서 가장 현실적인 장면으로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돼 버린 주민 소개 과정을 꼽는다.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방사선 재난 시 의료대응 컨트롤타워(방사선 비상 의료지원본부)는 한국원자력의학원 산하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다.

서울시 노원구 원자력의학원 내 위치한 방사선비상진료센터가 맡은 업무는 ▲방사선비상진료체계 구축 ▲방사선비상진료 분야 규제 ▲방사선영향클리닉 ▲사고피폭선량평가 ▲연구개발(R&D) ▲교육훈련 등이다. 방사선 재난 시에만 운영되는 비상기구가 아니라는 의미다. 센터는 지난 2002년 설립됐다.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피폭 환자 진료에 특화된 센터

센터는 방사선에 노출된 환자들을 진료하는 데 특화돼 있다. 센터 1층에 위치한 방사선비상진료실이다. 노란색 간판의 별도 출입구가 있는 이곳은 피폭 환자들을 위한 응급실처럼 운영된다. 방사선에 노출된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서면 피폭선량을 평가해 중증도에 따라 분류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치료한다.

방사선에 오염된 환자를 제염하는 공간에는 오염수가 바닥에 흡수되거나 다른 곳에 튀지 않도록 습지가 깔려 있다. 스스로 샤워가 가능한 경증 환자를 위한 제염실도 있다. 이곳에서 나온 물과 의복 등은 별도 처리된다.

수술실과 대기 병상도 마련돼 있다. 피폭 환자 중 응급 수술이 필요한 경우 이곳에서 빠르게 처치할 수 있지만 외상이 심한 중증 환자는 원자력병원 수술실로 이송해 치료한다. 응급실처럼 마련된 대기병상이 있는 공간에는 분진 등을 걸러내는 장비도 구축해 놨다.

센터 3층에는 내부 오염이 심한 환자를 위한 음압격리병실이 있다. 1인실인 음압격리병상은 13개로 차폐 기능을 하는 벽이 출입구와 침상 사이에 있으며 공기는 물론 이곳에서 나오는 폐수 등도 별도 처리를 한 뒤 방사선 평가를 거쳐 내보낸다.

국내 유일 방사선 상해 클리닉 운영

영화 <판도라>와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센터가 그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엑스레이, CT 촬영으로 인한 방사선 노출이 건강에 미칠 영향 등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방사선영향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이 클리닉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방사선 오염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방사선영향클리닉에서는 ▲방사선으로 인한 암, 백혈병 등 각종 유전적 영향이 궁금한 사람 ▲일본 장기 체류나 위험지역 방문으로 방사능 오염이 걱정되는 사람 ▲직업적인 방사선 노출로 정기 건강진단이 필요한 사람 등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방사선 오염 여부를 검사하는 각종 장비들도 갖추고 있다. 몸 안으로 흡수된 감마선 방출핵종을 측정하는 전신계수기는 물론 소변시료를 통해 알파·베타·감마 방출 핵종을 측정하는 최신 장비들도 있다. 급성 피폭 선량과 장기간 누적된 선량을 분석하는 염색체 이상 검사도 실시하고 있다.

방사선비상진료 네트워크(자료제공 :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방사선 재난 대비 훈련에 비상진료요원 양성까지

방사선 재난 의료대응 컨트롤타워인 방사선비상진료센터가 맡은 주된 업무 중 하나가 대응체계 구축이다. 센터는 지자체 등과 함께 연간 8회 이상 실전에 버금가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방사선 재난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협력이 중요하다. 피폭 환자는 센터가 추축이 돼 구성한 방사선비상의료지원단(K_REMAT)이,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환자들은 재난의료지원팀(DMAT)이 맡는다. 피폭 환자라고 하더라도 제염한 후에는 재난의료지원팀으로 보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원전 사고 등에 대비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방사선비상진료기관을 지정하고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도 하고 있다. 이들 기관에는 원전 사고 등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 받은 비상진료요원 630여명이 포진해 있다(2016년 10월 기준). 비상진료요원들을 교육시키고 양성하는 업무도 방사선비상진료센터가 맡고 있다.

방사선비상의료지원단(K_REMAT)용 장비

방사선비상진료센터 진영우 센터장은 “방사선 재난 현장에 요원을 파견할 때는 선량 평가를 해서 되도록 안전한 곳으로 보낸다. 요원들을 사지로 보낼 수는 없지 않나”라며 “피폭 환자는 다학제 진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장에 모든 진료과 의사들이 갈 필요는 없다. 현장에서 환자들을 분류해 병원으로 보내면 된다”고 말했다.

진 센터장은 “우리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수준에 맞춘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원전 사고가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아 실전 경험이 없을 뿐 그에 버금가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며 “원전 사고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방사선 치료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있는데 환자를 살리기 위해 중요한 건 일반적인 진료이다. 이런 부분도 교육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방사선진료 분야에서 세계적인 표준을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정부 지원이 더 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방사선비상진료센터 조민수 비상진료팀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우리나라도 방사선 재난 대응 관련 예산이 많이 증액되긴 했지만 아직 부족하다”며 “비상진료기관으로 지정된 의료기관들도 사명감을 강조하고 있을 뿐 이득이 되는 건 없다. 지원이 늘면 대응 시스템을 빨리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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