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심각한 환자는 일반적 응급치료부터…내부오염치료제 등 복용

최악의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는 픽션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는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왔다. 원전 밀집도 세계 1위인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 지진 이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불안감도 한몫했다. 영화에서 원전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규모 6.1의 지진이었다. 영화 <판도라>처럼 원전 사고가 현실에서 발생한다면 의료적인 대응체계는 갖춰져 있을까. 청년의사는 의료인에게도 생소한 피폭 환자 치료와 방사능 재난 시 의료대응체계를 알아봤다.

규모 6.1의 지진으로 노후 원자력발전소인 ‘한별 1호기’에서 원자력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원전은 한순간 방사능 재난 지역이 됐다. 방사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원전 직원들과 구급대원들은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고, 인근에 마련된 임시 진료소로 이송됐다.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환자, 온 몸에 화상을 입고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로 진료소는 아비규환이다.

영화 <판도라>에 나온 피폭 환자의 모습이다. 현실에서 피폭 환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의학 자문을 해준 한국원자력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조민수 비상진료팀장과 강진규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피폭손상치료연구팀)는 피폭량과 유형에 따라 다르지만 방사선 흡수선량이 1Gy(그레이) 미만이면 임상적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1Gy는 1,000mSv(밀리시버트)로, 일반인의 법적 연간 선량한도가 1mSv다.

영화처럼 원전사고로 한 순간에 1Gy 이상 많은 양의 방사선에 피폭됐을 때 나타나는 증상은 멀미와 구토, 불안, 체온 증가 등을 동반하는 급성방사선증후군(ARS, Acute Radiation Syndrome)이다. 방사선으로 손상된 장기에 따라 조혈계증후군, 위장관계증후군, 신경혈관계 증후군으로 나뉘며 질환에 따라 집락자극인자(CSF, Colony Stimulating Factor) 등을 투여해 치료한다.

신체 일부가 집중적으로 피폭돼 피부나 뼈, 근육 등이 손상되는 국소방사선손상(LRI, Local Radiation Injury)도 발생할 수 있다. 국소방사선손상은 암으로 특정 부위 방사선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국소방사선손상으로 습성피부탈락이 생겼다면 드레싱을 하고 항생제를 투여한다. 괴사가 심각하다면 피부 이식 등 수술적인 치료도 한다.

그러나 피폭 환자라고 해도 외상이 심하면 방사선 치료보다는 외상에 대한 응급처치가 우선이다.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조민수 비상진료팀장은 “피폭 환자 진료가 일반 진료와 다른 점은 방사선으로 인한 영향을 예측하고 평가한다는 것”이라며 “피폭으로 인한 임상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데까지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외상 등을 1차적으로 치료한다”고 말했다.

피폭손상치료연구팀 강진규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는 “피폭 환자 치료법으로 정립된 게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법이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직은 적다. 그만큼 치료가 어렵다”며 “후유증 없이 완치한다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강 전문의는 “피폭 선량에 따라 조혈계증후군은 골수 기능이 회복되면 큰 문제없을 수 있지만 위장관계증후군이나 신경혈관계증후군은 회복된다고 해도 장 기능이 사고 이전만큼 회복되지 않는다든지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고 했다.

방사선 물질을 공기로 흡입하거나 방사선에 오염된 음식물을 섭취해 신체 내부가 방사선에 오염됐을 때는 착화제로 배설을 촉진하고 감청제로 소화관 흡수를 막는다. 방사성요오드가 갑상선에 축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예방적으로 요오드화칼륨을 복용하도록 한다. 내부오염 치료제와 갑상선 방호약품은 20~200mSv 이상 피폭됐을 경우 적용된다.

방사선에 오염된 사람이 생기면 이를 씻어내는 제염 과정도 중요하다. 영화 <판도라>에서 진료소로 이송된 피폭 환자들의 의복을 벗기고 샤워를 하듯 씻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바로 제염 과정이다. 제염 방식은 습식과 건식법으로 나눠져 있다. 의복을 제거하고 샤워를 하면 95% 이상 제염된다.

원전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에서 피폭 환자들을 진료해야 하는 의료진의 안전도 중요하다. 의료진이 파견되는 현장은 선량을 평가해 유효선량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곳이다.

방사선에 오염된 환자를 진료할 때는 C~D등급 방호복을 착용하고 고글과 N95마스크를 착용한다. 환자를 치료하다 분진을 흡입할 가능성 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이 방호복 자체가 피폭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조민수 팀장은 “방호복이나 마스크는 방사성 물질이 몸에 묻거나 호흡기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 차제가 차폐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며 “현장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다보면 체력 소모가 크다. 그런 상황에서 납가운까지 착용하고 진료하는 건 오히려 대응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차폐복을 입지 않더라도 시간을 줄이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조 팀장은 “정당성이 확보되고 방사성 방호의 최적화와 선량 한도 내에서 이뤄진다면 의료진이 오염 환자를 보지 못할 정도로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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