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감별진단

대학병원 외래에 가면 이게 누구를 위한 의약분업인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 수천 명에서 만명에 이른 환자들이 진료가 끝나면 처방약을 받기 위해 대학병원 주변 약국으로 향한다. 현행 의약분업 제도에서는 병원에 약사가 있어도 병원 밖에서 외래 약을 타야 하기 때문이다.

외래 환자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이들을 위해 병원이 문전 약국으로 가는 차량을 제공해도 안 된다. 셔틀 차량은 지하철역까지만 용납된다.

서울아산병원은 인근 약국으로 걸어가려면 15분 걸린다. 세브란스병원도 5~10분 걸어야 문전 약국에 닿는다. 이 때문에 서울아산병원에는 약국에서 고용한 호객꾼들이 차량을 줄줄이 대기시켜 놓고 있다가 '약국 환자'를 불러 모으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환자들이 진료를 받고 집에 가서 처방약을 택배로 받을 수도 없다. 약사와 환자 대면 복약지도가 없기에 불법이다. 그렇다면 일정 기간 이뤄지는 반복 처방은 복약지도를 면제하거나, 전화로 대신해도 될 텐데 그런 예외가 없다.

대학병원과 동네약국 간의 처방약 인프라도 공유되어 있지도 않다. 일본은 환자들이 비용 부담을 다소 더하는 방식으로 병원 약국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몸이 불편하건, 고령으로 낙상의 우려가 있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죄다 문전 약국으로 가게 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 만큼은 병원 약국서 약을 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대학병원에서 퇴원한 암 환자나 뇌졸중 환자의 경우 대학병원 소속 간호사가 환자 집을 찾아가 돌보는 가정 간호를 받을 수 있다. 건강보험 적용이 적용되어 간호가 이뤄진다. 하지만 의사가 환자 집을 방문해 진료해도 일반 외래 진료비만 받을 수 있다. 왕복 교통비 실비만 비급여로 환자에게 청구할 수 있다. 그러니 의사들이 가정 방문 진료를 할 동기가 없다.

노인 환자는 소통의 문제로 진료 시간이 두세배 더 길어지는데, 이에 대한 보상도 없다. 노인 환자를 찾아가거나 보거나 할수록 손해인 구조다.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의 3.5% 정도가 뇌졸중 등 뇌혈관 질환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그 후유증으로 다양한 거동 장애를 앓고 있다. 아무리 거동이 불편해도 노인 환자들은 병의원을 찾아가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노인 환자가 많은 일본은 의사 왕진을 건강보험에서 충분히 지원하여 재택 의료를 활성화하고 있다.

우리보다 고령화가 빠른 스페인을 가보면 고령 사회에서 공공의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시립병원 소속 노인의학 전문의들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들 집으로 방문하는 가정 진료를 한다. 전문의 한 명과 노인 의학을 배우고 싶어하는 전공의 한 명, 2인 1조다. 병원은 이런 의료진을 4~5팀 운영한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간격으로 노인 환자의 집을 찾는다. 노인의학 의료진은 하루에 약 10곳의 환자 집을 순회하며 약물 복용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보행속도나 보폭이 나아졌는지를 관리한다.
공립병원은 낙상의학과를 개설하고 우리의 보건소에 해당하는 헬스커뮤니티센터와 함께 낙상 치료 예방 통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우리나라는 낙상으로 인한 골절 환자가 한해 15만명에 이르는데 그런 것 하나 없다.
고령사회가 코앞이고, 노인 환자가 급증하는데도, 의료 환경은 고령화와 거리가 멀다. 노인을 고생시키는 의료 제도이고 진료환경이다. 노인 환자를 기피해야 병원이 돌아가는 구조다.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도 없다. 소모적인 노인 의료로 건강보험이 휘청대기 전에 공공과 민간 의료기관이 역할분담을 하여 효율적인 노인의료 제도를 서둘러 만들어 가야 한다. 노인을 보는 의료에서 노인을 위한 의료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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