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들, 논문 위한 논문 그만 쓰자’라는 김철중 기자 칼럼에 대한 반론

아래 글은 2016년 5월 3일자 청년의사에 김철중 기자가 기고한 ‘의대 교수들, 논문 위한 논문 그만 쓰자’라는 칼럼에 대해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신의철 교수가 보낸 글입니다.<편집자주>

대학에서 의대 임상전공 교수들은 다른 학과의 교수들에 비해 조금은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일반적인 교수들은 학자나 교육자로서의 역할만 있지만 의대 임상전공 교수들은 이에 더해 의료인으로서의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의료인으로서의 모습이 더 익숙할지 모르겠으나 의대 임상전공 교수들도 기본적으로는 학자이다.

신의철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


학자는 연구를 통해 학문을 발전시키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연구는 실험이나 자료 분석을 통해 가설을 증명하여 새로운 사실과 지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회나 논문을 통해 발표함으로써 남에게 자신의 연구결과를 논리적으로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도 연구 활동의 일환이다.

얼마 전에 청년의사에 실린 김철중 기자의 ‘의대 교수들, 논문 위한 논문 그만 쓰자’라는 칼럼을 읽었다. 의사들이 생명공학 산업에 직접 나서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했지만, ‘논문 위한 논문 그만 쓰자’라는 결론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논문을 위한 논문’ 또는 ‘연구를 위한 연구’란 무엇일까? 논문이 아무리 새롭고 훌륭한 발견을 보고한다 하더라도 질병의 진단이나 치료에 이용되지 못하면 ‘논문 위한 논문’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고, 그리 새로운 발견을 한 것도 아닌데 단지 논문 편수를 늘리기 위해 써진다면 ‘논문 위한 논문’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학자는 ‘논문 위한 논문’이라도 써야 한다. 당장 질병의 진단이나 치료에 도움이 안 된다고 ‘논문 위한 논문’이라고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과학이나 의학의 역사가 이야기해 주고 있다. 응용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였던 기초 학문의 결과가 예측 불가능한 발전을 거치며 결국은 실용적인 기술로 이용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렇다면 새로운 발견이 그다지 없어도 작성되는 ‘논문 위한 논문’들은 어떨까? 이런 경우라도 쓰는 것이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 위대한 연구결과를 내고 훌륭한 논문을 쓴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생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아무도 안 읽을 것 같은 사소한 논문을 발표하더라도 연구와 논문 쓰기는 기존 지식을 파악하고 실험을 익혀 수행하고 논리적인 사고로 무장을 해야 하는 활동이고, 부단한 연습과 경험을 해야 가능한 과정이다. 필생의 역작만을 노리고 논문 위한 논문이라도 안 써 본다면, 노벨상 급의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이를 연구를 통해 입증하고 논문으로 발표하여 인정받기 힘들 것이다. 의대 교수들이 ‘논문 위한 논문 쓰기’를 한다고 해서 적어도 사기를 꺾지는 말아야 하는 이유다.

김철중 기자는 칼럼에서, 최근 의대에서 ‘논문 위한 논문 쓰기’가 늘어난 이유로 교수 승급에 필요한 논문 건수와 점수가 최근 계속 오른 사실을 지목했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서두에서 학자와 의료인의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는 의대 임상전공 교수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과거 한국의 상황에서는 임상전공 교수들의 의료인의 역할에 비해 학자의 역할이 간과되어 왔고, 최근의 논문 요구는 이러한 과거 상황을 정상화하려는 노력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논문실적 평가 방식이 투박하다보니 생기는 부작용이 있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의학계의 현실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논문을 요구하다보면 초기에는 ‘논문 위한 논문’이 많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대 교수들의 학문적 욕심도 커지고 연구에 매진하는 계기도 되어 논문들의 질이 향상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그 중에 노벨상도 나오고 한국을 먹여 살릴 기술도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철중 기자의 문제제기로 돌아가, 의사들이 생명공학 산업에 직접 나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대 교수들에게 ‘논문 위한 논문 쓰기’를 그만 하라고 하는 것은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의대생이나 의대 교수를 포함한) 의사들에게 기초과학이나 공학을 만나고 대화하고 융합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벤처 창업을 하고 이노베이터가 되라고 개인들에게 말로만 격려하지 말고, 이를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사회 제도와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추가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요즘에는 벤처 창업의 기반이 되는 기술을 개발했을 때, 이 기술을 우수 저널에 논문으로 게재하여 학문적으로 인정받을수록 투자도 받기 쉽고 사업의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다. ‘논문 위한 논문’ 또는 ‘연구 위한 연구’를 통해서라도 좋으니 의사들이 연구와 논문 쓰기를 연습하고 경험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다음과 같은 말로 글을 맺는다.

“논문 위한 논문이라도 써야 한다. 데이터만 진실하다면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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