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청년의사 신문 박형욱]

의료계를 떠나 사법연수원을 거치고 변호사로 일할 때 의료계와 법조계의 여러 차이점을 이해하게 됐다. 그 중 한 가지는 다른 나라의 관련 정보에 대한 민감성과 수용성이다.

특수 영역의 전문 변호사를 제외하면 변호사는 다른 나라 법률 추이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 대부분 국내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의사는 의료선진국에서 개발된 신약이나 신의료기술 정보에 매우 민감하다.

의사가 변호사보다 지적 욕구가 뛰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근본 이유는 의학지식에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의료선진국에서 개발된 신약이나 신의료기술 정보를 먼저 아는 것이 환자 진료와 의료기관 운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료계는 첨단정보를 갈구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전문집단이다. 그러나 원격의료를 포함해 의료정보의 전자적 유통과 확산 경향에 대한 의료계의 정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그동안 정부가 의료기관에서 생산되는 정보를 규제와 불이익 부과의 관점에서만 다루었기 때문이다.

의료법에 따라 의사는 각종 신고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기본적인 개설 신고 이외에도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신고, 특수의료장비의 등록, 변사체 신고 등 다양한 신고의무가 부과되어 있다.

신고의무는 의료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의사 혹은 의료기관의 장에게는 제1군 감염병부터 제5군 감염병, 그리고 지정감염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감염성 질환에 대한 신고의무가 부과되어 있다. 이외에도 혈액관리법, 검역법, 지역보건법 등 많은 보건의료법령에 각종 신고의무가 규정돼 있다.

일종의 경찰업무를 부과하는 신고의무도 많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 제2항에 따라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장은 아동학대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여기서 아동은 18세 미만을 말한다. 또한 의료인은 노인복지법 제39조의 6에 따라 직무상 노인학대를 알게 된 때에는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성범죄나 성폭력에 대한 신고의무도 있다. 의료기관 종사자나 의료기관의 장은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34조와 성폭력 방지 및 피해방지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9조에 따라 성범죄나 성폭력 사실을 신고해야 한다.

가정폭력에 대한 신고의무도 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2항에 따라 의료인 및 의료기관의 장은 직무를 수행하면서 아동, 60세 이상의 노인, 그 밖에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결여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가정폭력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의료인이 직면해 있는 것은 신고 의무만이 아니다. 의료법 제3조의 4, 제3조의 5에 따른 상급종합병원 평가 및 전문병원 평가, 의료법 제58조의 의료기관 인증,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에 따른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17조의 응급의료기관 평가, 건강검진기본법 제15조의 검진기관 평가, 암관리법 제25조의 완화의료기관전문기관평가 등 수많은 평가가 존재한다.

이처럼 정부는 의료인 혹은 의료기관에게 각종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평가제도를 운영하면서 정보제공을 요구해 왔다. 그것은 해가 갈수록 많아진다. 그러나 정보생산 관련 비용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신고하지 않거나 평가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위협만 있을 뿐이다. 정보의 공유도 없다. 요양기관이 제출한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일방적인 수가협상의 칼로 휘두를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의료정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 의료계는 거의 본능적으로 규제와 불이익 부과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지경까지 왔다. “정보를 다오, 괴롭혀 줄게.”

의료정보의 전자적 유통과 확산은 전세계적인 경향이며 의료의 미래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와 의료계의 불신 때문에 미래를 향해 한걸음 내딛기가 너무 힘들다. 늦으면 모두 패자가 될 수 있다. 의료기관에서 생산되는 정보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 근본적인 성찰과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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