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의 직언직설


[청년의사 신문 김승환]

지난 11월 28일 이른바 음주 시술로 모 대학병원 성형외과 전공의가 파면되는 일이 있었다. 성형외과 전공의 1년차였던 해당 전공의는 음주 상태였으나 당직 전공의 2년차를 대신해서 봉합을 하였고, 전공의 상태를 이상하게 본 보호자의 신고에 의해 사건이 밝혀졌다. 이유를 불문하고 환자의 진료를 하는, 그것도 침습적인 시술을 하는 의사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상태에서 진료에 임했다는 사실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에서 항상 심신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진료를 하는 전공의는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전공의들의 주당 근무 시간은 100시간을 넘어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른 직종에서 휴일을 뜻하는 오프는 퇴근이 가능한 날을 의미하며, 이 오프조차 1주일에 고작 1~2번 받는데 그치는 경우가 상당수다.

최근 전공의 수련에 대한 규정이 생기면서 근무 시간이나 당직에 대한 제한이 생겼지만, 실제로는 서류상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장의 이야기가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에 오르곤 한다. 이미 음주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전공의들은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전공의에 대한 병원의 인식에 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 입시를 통과하여 6~8년의 고등 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이지만, 임금을 적게 주고 남들의 2~3배 업무량을 소화시킬 수 있는 단순 노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병원들은 피교육자의 입장이라 저임금이나 근무 시간의 연장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일부 대학병원들의 사례를 보면, ‘정말 제대로 전공의 교육을 하고 있는가’란 생각마저 든다.

사실 이는 과거부터 있어왔던 해묵은 문젯거리긴 하다. 문제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전공의 인건비’에 대한 언급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전공의들 한 명의 업무를 대신하기 위해서는 몇 명의 대체 인력이 필요할까. 24시간 돌아가는 병원의 특성과 단순 근무 시간 비교만 해도 3명 이상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3~4년만 일하는 계약직 전공의와 달리 대체 인력들은 정규직을 보장하지 않으면 채용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정규직으로 채용하게 되면 근무 연차가 늘수록 연봉이 더 늘어나야 한다. 통상의 대체 인력들은 전문의 혹은 간호사들이므로 이들 3명의 인건비를 생각해보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한민국 병원 모두가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사실상 이런 인건비 지출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전공의가 미달인 지방 병원들이 아우성인 것 아니겠나.

이처럼 전공의가 처한 현실은 ‘시궁창’인 셈인데 이번에 논란이 된 ‘음주 시술’ 사건이 있자 바로 규제 안이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찬열 의원이 발의한 음주 후 의료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의료법 개정안이다. 여러 법리적인 문제들은 따로 놓고 생각하더라도, 현실이 어떤지에 대해 크게 보지 않고 눈앞의 이슈에 편승해 시선을 끌기 위한 쇼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처벌하면 해결된다는 단순한 발상이다. 이런 법률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에는 시스템은 문제가 없는데 일부 의사의 일탈이 문제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음주를 하고도 근무를 한 건 분명 부도덕하고 일탈 행위지만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드는 환경과, 그에 앞서 과로와 수면 부족으로 더 위험할 수 있는 의료 환경에 대한 성찰은 찾아 볼 수 없다.

대표적으로 법으로 음주 후 금지하는 행위는 바로 운전이다. 그러나 음주뿐 아니라 과로 상태에서의 운전 역시도 금하고 있다. 물론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과로라는 기준 때문에 이 조항으로 처벌 받았다는 말은 듣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런 조항이 들어간 것은 그만큼 과로 역시 음주만큼이나 정상적인 심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병원 진료 현장은 이런 과로로 인한 문제의 예외 지역이 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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