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응고제 분야 세계적 석학 마이클 에제코위츠 박사&김성순 명예교수

최근 와파린 독주시대가 마감하는 모습이다. 와파린 대비 효과는 비열등하면서 안전성은 대폭 개선시킨 새로운 항응고제들이 잇달아 출시된 것.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프라닥사(성분명 다비가트란)’, 바이엘헬스케어코리아의 ‘자렐토(성분명 리바록사반)’ 등 새로운 항응고제들의 등장을 놓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항응고 치료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까지 평가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이 제제들에 대한 장기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새로운 항응고제들 또한 와파린보다 안전함을 입증했어도 출혈의 우려를 완전히 종식시키지는 못한 만큼 이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 또는 관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출혈의 위험을 상기시키는 안전성보고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항응고제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이 분야 대가들인 미국 랑케나우 의학연구소 마이클 에제코위츠 박사와 국군수도병원 순환기내과 김성순 교수(연세의대 명예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이클 에제코위츠 박사는 새로운 항응고제의 와파린 대비 효과를 입증한 대표적인 대규모 글로벌 임상시험인 ‘RE-LY(Randomized Evaluation of Long term anticoagulant therapY)’ 연구 주책임 연구자로, 김성순 교수는 이 연구에서 한국 환자 340여명이 포함된 국내 임상 책임자로 참여했다.

[청년의사 신문 박기택]

- RE-LY 연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에제코위츠 박사 : RE-LY 연구는 잘 조절된 와파린군 보다 프라닥사 150mg이 효능과 안전성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최초의 임상연구로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연구 결과, 프라닥사는 와파린군보다 ▲뇌졸중 및 전신색전증 발생 위험 ▲혈관질환 관련 사망률 ▲주요 출혈 건(major bleeding events) ▲두개 내 출혈 등을 유의하게 감소시켰다. 특히 주목할 점은 프라닥사가 새로운 경구용 항응고제 중 와파린 대비 허혈성 뇌졸중 위험을 줄이는 효과를 입증했다는 점이다.

김성순 교수 : 와파린은 특히 한국 환자들에게 사용하기 까다로운 약제였다. 청국장, 두부를 즐겨 먹는 환자들의 경우 치명적인 부작용이 나타나고, 한약이나 침이 어떤 작용을 할 지 매우 조심스럽게 살펴봐야 했다. 여기에 와파린은 복용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혈액 모니터링도 필요하다. 하지만 프라닥사의 경우 이럴 필요가 없음이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환자들도 약제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져 의료진 입장에서도 새로운 항응고제는 반가운 약제다.

- RE-LY 연구에서 아시아권 환자들의 결과는?


에제코위츠 박사 : 현재 RE-LY 연구에 대한 하위 분석이 진행 중이다. 이 중 홍콩, 싱가폴, 대만, 한국, 중국, 말레이시아 등 6개 아·태지역을 살펴본 결과가 있는데, 유효성과 안전성 측면 모두 RE-LY 전체 연구결과와 큰 차이가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아태지역 환자들의 출혈 위험이 더 적은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연구자들이 그 요인에 대해 세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하위 연구 분석에서는 여러 종류의 심방세동 환자들이 차드(CHADS) 스코어로 정의된 모든 단계에서 뇌졸중 위험을 유의미하게 줄여주는 효과를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2009년 발표된 RE-LY 임상 결과의 신뢰성을 더욱 확고히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 한국인들만의 연구결과도 마찬가지였는지?

김성순 교수 : 한국 환자들의 결과와 RE-LY 전체 연구결과 간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340명의 연구 결과와 1만8,000여 명의 전체 연구결과를 그대로 비교할 수 없는 만큼 일본과 중국 등을 포함해 아시아지역의 결과에 대해 분석이 진행 중인데, RE-LY 전체 연구결과와 같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여러 종류의 새로운 항응고제가 출시됐거나 출시를 앞두고 있다. 각각의 약제 간 장단점은 무엇인가?

에제코위츠 박사 : 각각의 약제를 직접 비교한 임상연구가 없어 명확하게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이 중 프라닥사는 새로운 항응고제 가운데 최초로 출시된 약물로 연구 데이터와 실제 처방한 임상 결과가 풍부하다. 또 허혈성뇌졸중 발생률을 감소시키는 유일한 약제라는 점을 입증한 것도 큰 이점이다. 반면 다른 약제들은 막 출시를 했기 때문에 데이터나 임상 경험이 부족한 상황이다.

리바록사반의 경우만 해도 현재 미국에서 승인된 지 3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처방 경험이 많지 않다. 조금 더 두고 봐야 상대적인 장단점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해당 항응고제에 대한 용량과 용법에 대해 잘 알고 처방해야 한다는 점이다. 리바록사반의 최적 용량에 대해선 현재 추가적인 연구가 진행 중이다.


김성순 교수 : 항응고제는 양날의 칼이다. 치료를 하되 너무 깊이 들어가면 출혈이라는 부작용이 생긴다. 반면 너무 적게 쓰면 효과가 없다. 그래서 치료의 적정범위가 매우 중요하다.

와파린과 프라닥사는 응고지수가 내려가면 트롬빈이 생겨 정상상태가 되는 기전을 갖고 있는데, 다른 약제의 경우 다른 메커니즘을 갖고 있어서 약제의 적용 결과도 다르다. 와파린과 신약의 비교는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뤄져 왔지만, 신약 간의 비교는 앞으로 계속 연구될 과제다.

에제코위츠 박사 : 약제들 간 기전 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 유형의 환자에게 어떤 약이 적절할지는 좀 더 연구돼야 할 분야다. 현재 심방세동 환자에서 뇌졸중 예방으로 허가 받은 항응고제는 프라닥사와 리바록사반 이 두 가지뿐이다. 때문에 당분간 이 두 약제에 대한 비교가 많이 이루어질 것 같다.

- 프라닥사는 현재 110mg, 150mg 두 가지 용량이 출시됐다. 이 중 110mg은 약제의 효능을 극대화시키지 못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에제코위츠 박사 : 연구자들이 프라닥사 150mg을 주 용량으로 선택한 이유는 2상 임상시험에서 프라닥사 150mg이 가장 좋은 결과를 냈기 때문이다. 이후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하면서 110mg을 추가해 살펴봤지만 프라닥사 150mg을 사용한 군에서 가장 낮은 뇌졸중 발생률을 확인할 수 있었다. RE-LY 연구는 항응고제 분야 연구 중 두 개의 각기 다른 용량이 사용된 유일한 연구라는 점은 환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준다는 측면에서 상당한 강점이다. 하지만 어떤 환자에게 프라닥사 150mg을 써야 가장 좋고 어떤 환자에게 110mg을 써야 가장 좋은지, 그래서 가장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처방을 해야 하는지는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 처방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에제코위츠 박사 : 한국의 경우, 크레아틴 청소율이 50mL/min 이하인 환자에게는 더 낮은 용량을 쓰도록 허가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뉴질랜드에서는 두 가지 용량 모두를 승인하면서 구체적인 처방 지침은 없었다. 때문에 혼란을 초래했다. 미국은 FDA가 150mg에 대한 결과에 너무나 만족해 150mg만을 승인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임상 데이터가 없는 75mg도 승인했다. 규제기관에 따라 같은 데이터를 갖고 이해와 해석이 조금씩 다르다.

- 앞서 프라닥사가 아시아인에서 출혈이 적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한국 등 아시아권에서는 위 장애가 많아, 위장관 출혈 위험이 높지 않을까 생각된다.

에제코위츠 박사 : RE-LY 연구 결과 위장관 출혈은 150mg 1일 2회 투여군에서 연 1.6%, 와파린과 110mg 1일 2회 투여군에서는 각각 연 1.1%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분은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약 1,000명의 환자들에게 1년간 치료를 진행했을 때 위장관 출혈이 발생하는 환자가 약 5명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위장관 출혈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환자치료 과정에 대한 임상적인 모니터링이 철저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혈 등의 문제가 발생해 환자가 병원에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만 오히려 부각되는 것이다. 위장관 출혈 발생 증가는 리바록사반의 경우에서도 비슷하게 보고되고 있다.

김성순 교수 : 두개 내 출혈은 매우 치명적이다. 위장관 출혈의 경우 수술을 통해 잡아낼 수 있지만, 두개 내 출혈은 사망 혹은 치명적 손상이 남는다. (프라닥사가) 뇌출혈 위험을 낮춘다는 것은 굉장한 이점이다.

- 프라닥사를 처방한 환자에게 출혈 문제 발생 시 용량을 줄이는 것이 좋은가?

에제코위츠 박사 : 뉴질랜드에서 보고된 바에 따르면, (프라닥사) 150mg과 110mg 군 모두에서 출혈이 발생했는데, 이는 용량 문제라기보다 신기능 손상 환자가 대규모 포함됐다는 상황적 원인이 더 컸기 때문이다. 즉, 어떤 항응고제를 사용하더라도 출혈에는 다른 원인이 있는 경우가 많아, 다른 직접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산발적으로 출혈에 대한 보고가 나오고 있는데, 이 데이터들을 분석하기 어려운 이유는 전체 대상이 얼마인지 비교할 만한 분모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환자 70여만명에게 프라닥사가 처방됐다. 보고된 출혈 건수를 비교해 보면, 연구 참여 환자에서 나타난 출혈 건수보다 실제 처방 환자에게서 나타난 출혈 건수가 더 적었다.

출혈이 보고됐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처방 환자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고려도 없이 확대되는 것에 대해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 와파린을 잘 복용하고 있던 환자에게 새로운 항응고제를 적용해야 하는 문제도 고민일 것 같다.

에제코위츠 박사 : 프라닥사는 이전에 항응고제 치료를 받지 않았던 환자들에게 사용 가능하고, 뇌졸중이나 기타 위험이 있는 환자들에게도 당연히 사용할 수 있다. 이 점은 하위 분석을 통해서도 입증됐다. 다만, 와파린을 투여 중이고 수치 조절이 잘 되고 있는 환자들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환자들과 의논 후 결정한다. 환자가 시도해 보고 싶은지에 대한 의지가 먼저다. 의사는 새로운 항응고제의 장단점을 잘 설명하고, 최종 결정은 환자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 와파린의 경우 가격이 워낙 낮아 환자들의 부담이 적었지만, 새로운 항응고제를 사용할 경우 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에제코위츠 박사 :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프라닥사의 비용대비 효과성에 대한 분석이 이뤄졌다. 그 결과 프라닥사를 복용한 환자가 와파린 환자보다 뇌졸중, 입원율 등이 낮아 비용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60년이나 된, 다른 약제와 비교해도 너무나 싼 와파린보다 신약이 고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비용효과를 따져보면 휠씬 이점이 많음은 확실하다.

김성순 교수 : 동의한다. 새로운 항응고제들이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이점이 많은 만큼 많은 환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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