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스트라제네카 잉그리드 메이어 글로벌 임상 전략 책임
"한국 임상시험 능력 우수, 아스트라제네카 임상 중추 국가"
"韓연구진이 주도한 신약, 정작 한국 환자들은 못쓰는 현실"
"잦은 급여 지연…임상시험으로 신약 접해야 하는 상황 안타까워"

"한국은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잘 이뤄지는 국가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신약에 대한 급여 지연이 잦은 한국만의 특징이 있다. 그 중에는 임상시험으로 신약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려는 것도 있지 않나 생각된다."

아스트라제네카에서 유방암 및 부인암 글로벌 임상 전략 책임을 맡고 있는 잉그리드 메이어(Ingrid A. Mayer) 부사장은 최근 기자와의 만남에서 한국의 임상시험 역량을 평가하며 이 같이 지적했다.

아스트라제네카 유방암 및 부인암 글로벌 임상 전략 책임 잉그리드 메이어(Ingrid A. Mayer) 부사장
아스트라제네카 유방암 및 부인암 글로벌 임상 전략 책임 잉그리드 메이어(Ingrid A. Mayer) 부사장

메이어 부사장은 지난달 말 아스트라제네카의 주요 임상연구에 기여하고 있는 국내 연구진과의 미팅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2030년까지 전체 유방암 환자 3명 중 1명은 자사 치료제를 통해 암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언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세부 전략 중 하나로 '모든 유방암 환자를 위해 적합한 임상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메이어 부사장은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의 주요 연구진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주역이 될 젊은 연구진을 만나 인적 교류를 활성화하고 추가적으로 지원할 부분이 있을지 짚어보고자 한 것이다.

현재 아스트라제네카는 모든 유방암 아형에서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기전에 대한 치료제를 연구 및 개발 중인데, 항암 파이프라인에서 유방암 관련 치료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30~40%에 달한다.

메이어 부사장은 "현재 8가지 유방암 치료제에 대해 연구 및 개발이 진행 중"이라며 "아스트라제네카의 전체 연구 개발(R&D) 현황을 보면, 180여 개의 임상연구가 진행 중인데, 이 중 21건이 유방암 관련 임상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유방암 신약 대표로 '엔허투·Dato-DXd·카미제스트란트' 꼽아

메이어 부사장은 회사가 주력하고 있는 대표적인 유방암 신약으로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 '다토포타맙 데룩스테칸(Dato-DXd)', '카미제스트란트(Camizestrant)'를 꼽았다.

메이어 부사장은 "엔허투는 유방암 환자의 약 20%를 차지하는 HER2 양성 유방암에 적응증을 허가 받았으며, 글로벌에서는 더 큰 아형이라고 볼 수 있는 호르몬 양성 HER2 저발현 유방암에서도 적응증을 허가 받아 현재는 유방암 환자의 약 60%에서 사용이 가능하다"라며 "앞으로 진행할 임상연구를 통해 HER2 초저발현(Ultra-low) 유방암까지 적응증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이 경우 호르몬 양성 유방암 환자의 85%는 엔허투를 통해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공격적인 삼중음성 유방암에서 '다토포타맙 데룩스테칸'이 자사의 면역항암제 '임핀지(성분명 더발루맙)'와 병용해 유망한 데이터를 보여주고 있어 향후 의미있는 치료법을 제공할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메이어 부사장은 "2상 임상 연구를 통해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에서 다토포타맙 데룩스테칸과 임핀지 병용으로 1차 치료를 받았을 때 80% 이상의 반응률을 확인했다"며 "삼중음성 유방암은 다른 아형과 비교해 흔하게 발생하는 암은 아니지만 공격적인 성향 때문에 치료에 있어 미충족 수요가 컸던 분야다. 다토포타맙 데룩스테칸과 임핀지 병용이 보여준 효과는 매우 고무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또한 메이어 부사장은 '카미제스트란트'가 호르몬 양성 유방암 치료에 현 내분비요법(endocrine therapy, ET)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백본(Backbone) 약제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메이어 부사장은 "카미제스트란트는 차세대 경구용 SERD(Selective Estrogen Receptor Degrader) 제제로, 지금까지 발표된 임상 연구에 따르면 현존하는 호르몬요법 대비 에스트로겐 신호를 훨씬 더 큰 폭으로 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호르몬 양성 환자 중 ESR1 변이가 있는 환자에서 효과적인 치료제로, 추후 개발에 성공하면 조기와 후기 유방암 환자에서 호르몬요법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은 아스트라제네카 임상 연구의 중추 역할 국가, 하지만"

메이어 부사장은 이 세 가지 치료제 개발에 한국 연구진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이 단순히 참여 국가 중 하나가 아닌 임상연구를 총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

메이어 부사장은 "엔허투와 다토포타맙 데룩스테칸 임상은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연희 교수와 서울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석아 교수가 총괄 책임자(Principal Investigator, PI)로 활약하고 있다. 두 연구자는 카미제스트란트 임상시험(CAMBRIA-1, CAMBRIA-2)에도 각각 총괄 책임자로 활동 중"이라며 "카미제스트란트 임상시험은 피험자 수만 해도 약 1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임상 프로그램으로, 실제 두 연구자는 집행위원회(Executive Committee)에도 참여하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아주 긴밀하게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이어 부사장은 아스트라제네카의 유방암 임상 연구에 한국이 주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로 한국의 유방암 발병 특징을 들었다.

앞서 언급된 연구들을 포함해 유방암 관련 연구들은 공격적이거나 환자수가 많은 호르몬 양성 유방암을 주 대상으로 하는데, 현재 한국의 유방암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환자들이 대체로 젊은 나이대에 속하고, 이들의 상당수가 호르몬 양성 유방암이라는 것이다.

또 "현재 아스트라제네카가 관심을 두고 있는 연구 분야는 DAN 손상 회복(DNA damage repair)과 PARP억제제"라며 "이 치료제는 유방암 환자 중에서도 BRCA 변이가 있는 환자에서 효과적이다. 다른 국가에서는 BRCA 변이 암이 비교적 희귀한 암에 해당해 환자수가 적은 반면 한국은 유방암 환자 중 BRCA 변이 유병률이 높은 편이라 환자 모집 등에서 임상 연구를 진행하기에 필요한 요건이 잘 갖춰져 있는 국가"라고 말했다.

이어 "때문에 우리가 진행 중인 임상 연구들은 한국에도 중요한 연구들이며, 아스트라제네카와 한국 연구진 모두 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게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메이어 부사장은 한국의 임상시험 관련 인프라에 대해서도 극찬했다. 그는 "임상 연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몇 가지 인프라 요건들이 있는데, 한국의 경우 환자의 조직 샘플 채취와 배송, 조직 샘플에 대한 여러 가지 변이 또는 기타 분자학적인 특성 프로파일링 역량 등이 매우 우수하다"며 "기본적으로 진단 검사와 관련한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한국에는 우수한 암 임상 연구 센터로서 갖춰야 할 요건들을 충족하는 기관이 많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임상 연구에 대한 기여도가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는 국가"라고 말했다.

또 "한국 연구진은 과학에 대한 이해도나 여러 가지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기전, 해당 기전이 어떤 환자에게 효과적일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환자가 겪을 수 있는 이상반응이나 독성 관리에 상당히 능하고, 새로운 이상반응이 나타나더라도 이에 대한 대처 능력 또한 뛰어나다"며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 새로운 신약에 대해 대응하는 방식 등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모든 점을 미루어 볼 때 한국은 임상 연구 측면에서 굉장히 많은 장점을 갖춘 국가"라고 강조했다.

메이어 부사장은 단일 지불자 구조인 한국 의료 시스템이 가진 특징 역시 임상 연구를 잘 수행하는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의료 시스템 자체가 단일 지불자 구조이고, 환자들이 병원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다 보니 암 환자들이 많이 모인 병원에는 전문 암센터가 설립돼 있다"며 "한국의 한 암센터에서는 환자의 약 30%가 임상 연구에 참여하고 있을 정도로 임상 연구 참여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단일 지불자 구조이다 보니 신약에 대한 급여가 지연되는 경우가 잦고, 같은 이유로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임상시험'이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엔허투 혁신 약가 인정, 한국 제약바이오산업 성장 디딤돌 될 것"

메이어 부사장은 특히 한국에서 '엔허투'와 '린파자(성분명 올라파립)' 등이 급여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엔허투의 경우 이미 글로벌에서는 HER2 저발현 환자에서 쓰이고 있는데, 한국은 HER2 양성 환자에서조차 급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임상 연구와 진료 현장 간의 간극이 큼을 지적한 것이다.

또 한국의 유방암 환자들이 BRCA 변이 유병률이 높아 각종 관련 임상 시험이 진행 중이지만, 정작 한국에서 진행된 임상 연구들을 결과로 허가 받은 치료제를 한국 환자들은 급여로 쓰기 힘들다는 점도 "아이러니칼(ironical)하다"고 꼬집었다.

잉그리드 메이어 부사장
잉그리드 메이어 부사장

메이어 부사장은 "이번 방한을 통해 연구진뿐만 아니라 한국의 규제당국 관계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라며 "최근 전세계적으로 출시되고 있는 신약들은 암 환자의 생명 연장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고, 효과적인 신약들이 많이 개발됨에 따라 신약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따라 국가의 재정 부담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환자가 효과적인 신약을 통해 더 오래 생존하기 때문에 치료제를 이전보다 오랜 기간 사용해야 하고, 해당 치료제가 급여가 되면 늘어난 환자의 생존 기간만큼 정부가 재원을 부담해야 하는 기간 또한 늘어난다는 것.

메이어 부사장은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엔허투를 예시로 들며 규제당국의 이해를 구했다.

메이어 부사장은 "엔허투는 기존 치료제보다 생존기간을 혁신적으로 연장한 항체약물접합체(ADC)로,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매우 높다"며 "이러한 혁신 약물은 제조와 생산에 있어 많은 시간과 자본, 노력이 투여되기 때문에 한정된 엔허투의 공급량을 국가별로 적절하게 배분하는 과정에 대한 고민이 내부적으로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업은 엔허투 제조 및 생산에 필요한 비용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엔허투의 혁신 약가를 인정하는 국가에 공급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국가별 재정 상황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으나, 마찬가지로 힘든 과정을 겪는 제약사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메이어 부사장은 "제약사에서 고가의 비용을 투자해 기존 치료제보다 4배 이상 길어진 생존기간을 입증한 혁신적인 치료제를 개발한 것처럼, 이러한 혁신적인 약물을 위한 노력이 혁신 약가로서 각 국가에서 인정될 경우 제약사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국은 혁신이 빠른 국가이기 때문에 곧 한국 제약사에서도 ADC를 자체 개발해 제조 및 생산을 해낼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ADC라는 계열의 약물이 혁신성을 반영한 가격으로 설정된다면 한국 제약사들도 분명 이 부분에서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하나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엔허투를 통해 많은 여성 유방암 환자들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이들은 각 가정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누군가의 '엄마'이자 또 누군가의 '딸'"이라며 "엔허투는 이처럼 가족의 핵심이 되는 여성분들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혁신적인 치료제라는 점을 고려해 주시고, 또 제약사도 한정된 생산량을 국가별 배분하는 과정에 있어 한국 환자에게 최대한 많은 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한국 정부의 결정이 중요하게 기여한다는 점, 더불어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발전을 위해 ADC 가격의 설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주시기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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