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H 2023서 만난 국내 혈액질환 전문가 4인 대담②
"정부, 고가약 급여로 생색...삭감으로 병원과 의사에 책임 전가"
"제네릭 약가 인하 등 건보 재정 확대 및 효율화 방안 찾아야"

최근 혈액 질환에 생존율을 대폭 개선한 세포‧유전자 치료 등 새롭고 혁신적인 치료법이 속속 개발‧도입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지난해 12월 말 전세계 혈액학 전문의들의 최대 학술행사인 미국혈액학회 연례학술대회(ASH 2023)에서도 여실히 확인됐다. 하지만 국내 의료진은 이러한 최신 치료법들의 국내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환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나 다름 없는 소식이란 뜻. 이에 ASH 2023 현장에서 국내 혈액질환 전문가 4인(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석진 교수, 건국대병원 종양혈액내과 김성용 교수,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조병식 교수,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윤덕현 교수)을 만나 국내 혈액질환 치료 환경에 대해 들어보고, 최근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혁신 치료법의 임상 적용 방안 및 개선점 등을 2회에 걸쳐 살펴봤다.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조병식 교수,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석진 교수,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윤덕현 교수, 건국대병원 종양혈액내과 김성용 교수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조병식 교수,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석진 교수,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윤덕현 교수, 건국대병원 종양혈액내과 김성용 교수

지난해 미국혈액학회 연례학술대회(ASH 2023)에서는 골수종, 림프종, 백혈병, 양성혈액질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최신의 치료법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혁신 치료제들이 소개됐지만, 그 가운데서도 유독 사람들의 이목을 끈 건 단연 겸상적혈구질환(Sickle Cell Disease) 최초 세포유전자 치료제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학회 발표 직전 미국식품의약국(FDA)로부터 허가 받은 해당 치료제의 가격은 무려 약 40억원.

이날 발표를 지켜본 국내 전문가들은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완치가 불가능한 질환에 대한 해법을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믿기 힘든 가격에 대한 우려와 씁쓸함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 수억원을 넘어 수십억원에 달하는 초고가 치료제들의 등장이 드문 일은 아니다. 혈액질환 분야에 출사표를 던진 세포유전자 치료제, 이중특이항체, 항체약물접합체 등은 치료 성적이 놀랍게 향상됐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범국가적인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바로 ‘의료 비용 상승’에 대한 우려다. 특히 단일의료보험제도를 가진 한국에서 이 같은 고가 약제들로 인한 의료비 증가는 시스템 자체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킴리아는 시작에 불과…다가올 고가 약 위협 준비해야”

이날 네 명의 전문가들은 기하급수적인 약가 상승이 가까운 시일 내 국내 의료 체계에 막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2022년 4월부터 국내에 급여 적용된 최초의 CAR-T 세포 치료제 ‘킴리아(성분명 티사젠렉류셀)’를 시작으로, 혈액질환 분야에서 속속 개발되고 있는 세포유전자치료제, 이중특이항체, 항체약물접합체 등 고가의 약제를 급여권에 담기 위해서는 현행 급여 시스템에 대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윤덕현 교수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윤덕현 교수

윤덕현 교수는 “킴리아를 시작으로 최근 골수종에 CAR-T 치료제가 허가를 받았고, 림프종 치료에서도 ‘타파시타맙(상품명 민쥬비)’, 모수네투주맙(상품명 룬수미오), ‘글로피타맙(상품명 컬럼비)’ 등 이중특이항체 치료제들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며 “특히 이중특이항체 치료제는 지금은 모든 치료에 실패한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되지만, 조혈모세포이식 후 유지요법 등 1차 치료에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어 향후 (1차 치료에서 사용 시) 들어가는 의료비가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칠 만큼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고 피력했다.

이어 “한국은 이런 비싼 치료제들을 급여로 사용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며 “그 동안 해오던 방식이 아닌 혁신적이 보험 체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또 킴리아 급여 이후 임상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불합리한 삭감 사례 등을 예로 들며 “정부가 고가의 약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반 환경을 마련하지 못하면, 재정을 쓰면서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생한 킴리아 삭감 사례는 총 4건. 킴리아의 치료비가 약 4억원에 달하고, 사전심사 없이 CAR-T 치료가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삭감 이슈는 병원 및 의료진에게 막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에 윤 교수는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고가의 약제를 임의적 해석이 가능한 기준을 만들어 급여를 적용해 놓고, 그 책임을 의사와 병원에 모두 전가하고 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윤 교수는 “환자를 가장 잘 알고 치료를 결정하는 사람은 담당 의사인데, 환자를 잘 알지도 못하는 제3자가 담당의사가 대면으로 소명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삭감을 결정하는 현행 제도는 결국 환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결국 급여기준에 애매한 환자들은 CAR-T 치료를 받을 수 없고, 의사는 환자의 상태가 (급여기준에 맞게) 좀 더 확실하게 나빠진 후에야 치료를 진행할 테니 치료 효과는 기대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는 CAR-T 치료가 제한된 몇 개 기관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이후 도입될 CAR-T 치료제의 경우 ‘인체세포 등 관리업’에 따른 제한 조건이 사라질 가능성이 커 더 많은 기관에서 사용하게 될 것이라며 “킴리아 삭감 이슈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윤 교수는 “많은 의료기관들이 고가약 삭감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이중특이항체 치료제들 역시 CAR-T 치료에 버금가거나 사용 기간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삭감의 문제는 당장은 일부 킴리아 치료 센터에 국한될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국내 전체 의료기관이 직면할 아주 심각한 잠재적 위험”이라고 말했다.

“4억을 급여해놓고 100만원 아끼자고…코메디가 따로 없어”

이날 전문가들은 ‘토실리주맙’ 등 CAR-T 치료에 수반될 수밖에 없는 전후 처치 약제들의 불합리한 사용 환경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김석진 교수는 “CAR-T 치료와 같은 면역요법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사이토카인방출증후군(cytokine release syndrome, CRS)이 있는데,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약물이 토실리주맙”이라며 “현재로서는 CRS 2등급에만 토실리주맙을 급여 적용하고 있어, 부작용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임상에서 CRS를 적절하게 관리하려면 CRS 2등급이 아닌 1등급 환자에서부터 토실리주맙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환자들이 1회당 100만원이나 되는 약값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석진 교수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석진 교수

김 교수는 “4억원대 CAR-T 치료를 급여로 적용해 주고 고작 100만원 아끼려고 토실리주맙을 늦게 주면, 결국 환자들은 중환자실로 가게 된다”며 “이후 누군가는 사망하고, 누군가는 호전된다고 해도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국가 재정을 이중, 삼중으로 쓰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고 피력했다.

이에 더해 CAR-T 치료의 또 다른 부작용인 면역세포연관 신경독성증후군(immune effector cell-associated neurotoxicity syndrome, ICANS) 관리에 필요한 ‘아나킨라’의 경우에는 국내에서 환자 부담으로라도 사용할 길이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아나킨라’는 과거 관절염 치료제로 사용되다가 국내 시장에서 철수한 IL-1억제제다. 최근 CAR-T 치료 후 발생하는 ICANS 관리에 아나킨라가 유용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면서 국내 환자들에게도 필수적인 약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급여는커녕 사용 자체가 어려운 상황.

김 교수는 “ICANS이 발생하면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약은 스테로이드와 아나킨라뿐”이라며 “본인부담으로라도 써보려고 갖은 방법을 다 써봤지만,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없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식 수입은 끊겼고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일부 병원이 수입해 사용할 수는 있지만, 과거 관절염 치료에 처방 코드가 잡혀 있어 약을 쓰면 무조건 임의비급여(불법으로 간주)가 돼 버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혈액학회가 나서 식약처에 ICANS 적응증에 대한 아나킨라의 사용 허가를 요청했지만, 식약처는 제약사가 요청하지도 않은 허가신청을 검토할 방법은 없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덕현 교수도 CAR-T 치료 확대를 앞둔 상황에서 아나킨라의 사용 제한이 굉장히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조만간 국내에 도입될 것으로 보이는 '예스카타(성분명 악시캅타진 실로류셀)'의 경우 독성이 킴리아보다 많아 독성 관리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이처럼 독성 관리에 사용되는 약들은 상대적으로 CAR-T 치료에 비해 고가가 아니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약이다. 제도적인 한계점이 있으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같이 고민해야 하는데, 정부는 그저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니 임상의로서 너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런 이야기를 해외에 있는 의사들에게 하면 ‘너희 나라 진짜 코미디다’라는 반응이 나온다”며 “국격에도 맞지 않지 않고, 어디 이야기하기도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기하급수적인 약가 인상과 한정된 재원, 해결 방안은?

건국대병원 종양혈액내과 김성용 교수
건국대병원 종양혈액내과 김성용 교수

김성용 교수는 정부가 한정된 재원으로 환자의 치료 접근성과 재정 건전성을 동시에 꾀하다 보니, 이처럼 불합리한 급여 규제가 남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약가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데, 한정된 재원으로 이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규제를 자꾸 내놓게 되는 것”이라며 “고가의 약제를 일단 급여는 해주고 이런저런 제한을 걸어 이를 핑계로 사용량을 조절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덕현 교수는 “정부가 급여 적용으로 일단 생색은 내놓고, 이후 내키는 대로 심사해 삭감시키겠다는 것은 횡포에 가깝다”라며 “한정된 재원이 문제라면 이젠 정부가 재원 확대 및 효율화를 위한 더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재원의 효율적 사용을 위한 방안으로 암 산정특례 개정 및 제네릭 약가 인하 등을 예로 들었다.

암 치료 비용의 95%를 국가가 부담하는 현행 제도에 대해 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상향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또는 입원 환자의 식비에까지 적용되는 산정 특례 혜택을 축소하는 등 암 산정특례 제도의 효율화가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윤덕현 교수는 건보재정 효율화뿐 아니라 현재 혈액암 치료 분야에 미해결 급여 과제를 풀 수 있는 방안으로 제네릭 약가 인하를 들었다.

윤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제네릭도 오리지널 약의 70%까지 약값을 보장해 주는데, 이 제도의 취지는 국내 제약업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하지만 이제 국내 제약업계가 신약 개발해서 라이선스 아웃을 하는 등 예전과 달라진 만큼, 제네릭 약가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네릭 가격이 해외처럼 낮았다면, 레날리도마이드 유지요법 급여에 정부가 그토록 오랫동안 고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며 “우리가 앞서 언급한 소라페닙 유지요법을 포함해 제네릭 가격만 정상화하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급여 문제가 많다”고 강조했다.

김성용 교수는 역시 “제네릭 약가를 70%까지 보전해 주는 게 국내 제약산업을 살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반대로 신약 개발에 대한 의지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며 “쉽게 말해 별 노력 안 해도 70% 받을 수 있는데, 굳이 노력과 돈을 들여 신약을 개발할 이유가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라고 덧붙였다.

때문에 정부가 국내 제약사들의 제네릭 약가 보전을 통해 개발 자금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임상시험에 대한 규제 완화 및 연구비 지원 등 신약 개발을 할 수 있는 환경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윤덕현 교수는 “국가신약개발사업 범부처 과제 등은 정부가 무척 잘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현재는 주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더 나아가 국내 회사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간다면, 궁극적으로는 그에 대한 열매 역시 우리 국민들과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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