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기반 병상 배정 시스템으로 17시간→10분
모바일 플랫폼 G-MICS로 의료진·환자 편의 증진
이종준 실장 "모든 병원 구성원이 환자에 집중할 수 있게"

가천대 길병원이 의료진과 환자 편의를 도모하는 새로운 기술들을 도입 적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도입한 신기술들이 자체 개발한 '원내 혁신' 사례라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

길병원은 입원 환자의 병상 배정 업무에선 AP(Auto-Processing) 기반의 ‘병상 자동 배정 시스템’을 도입해 하루에 최대 17시간 걸리던 시간을 10분으로 줄였다. 입원 이후에는 환자가 병상에서 의료진의 모바일 기기로 간단한 검사 결과를 확인하면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모바일 플랫폼 'G-MICS(Gachon Mobile Information & Communication System)’를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바로 병원의 구성원이 개선을 요청하던 사항을 원내 전산정보실이 해결코자 나섰다는 점이다. 이를 주도한 담당자는 바로 전산정보실장을 맡고 있는 소화기내과 이종준 교수다. 이 교수는 지난 2016년부터 병원의 전산 관련 일을 시작해 2017년부터는 병원의 전산 관련 업무를 전업으로 삼고 있다.

이 교수는 두 사례를 추진하면서 가장 중요한 게 '소통'이었다고 했다. 모두의 편의를 위해서 모두가 조금씩은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 조율하기 위해 교직원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와 만나 길병원의 원내 혁신 사례의 자세한 이야기와 이 과정에서 전산정보실이 맡았던 역할, 그리고 길병원이 지향하는 '혁신'에 대해 들었다.

가천대 길병원 전산정보실장을 맡고 있는 소화기내과 이종준 교수는 그동안 이룬 혁신사례에 대해 설명했다(ⓒ청년의사).
가천대 길병원 전산정보실장을 맡고 있는 소화기내과 이종준 교수는 그동안 이룬 혁신사례에 대해 설명했다(ⓒ청년의사).

"병원 전산정보실, 전산 흐름 관리하고 부서 간 조율 담당"

이 교수는 전산정보실이 ‘데이터와 전산에 대한 모든 것을 관리하는 곳’이자 ‘소통하는 곳’이라고 했다. 소통의 대상은 의사뿐 아니라 원무, 심사, 간호 등 모든 부서로, 전산의 흐름에서 관여하는 모든 과와 조율해야 한다고.

전산 시스템의 흐름은 환자가 내원했을 때 거치는 과정을 따라가기에 순서에 따라 사람이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시스템에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단다. 그리고 그 일이 문제 없이 진행되도록 서로 간에 조율하는 게 바로 전산정보실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모든 부서와 소통하는 일”이라며 “병원의 전산시스템은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 예를 들어 환자가 내원하면 원무과에서 접수하는 것을 시작으로 검사실, 영상의학과, 진료과 등 각각의 순서대로 흘러간다. 순서에 따라 사람이 검사 결과, 오더 등을 전산에 입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프로그램을 세팅하면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며 "특히 한 쪽의 편의만을 봐주면 다른 부서에 전산 관련 업무가 더 가중되기 때문에 각 부서의 일을 조율하는 게 전산정보실의 진짜 업무”라고 했다.

17시간 걸리던 병상 배정을 10분으로…우선순위 정해놓고 배정

전산정보실의 ‘소통’ 능력이 빛을 발한 프로젝트가 바로 최근 공개된 AP(Auto-Processing) 기반의 ‘병상 자동 배정 시스템’이다.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QI 경진대회에서 원무과 직원들이 이와 관련된 개선 아이디어를 제시하면서다. 기존에는 직원들이 입원하는 환자의 병상을 전산으로 알아보지만 실제로는 빈 병상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고. 이에 원무 담당자들이 퇴원 예정 병상을 비롯한 입원 가능 병상 현황을 일일이 확인한 후 입원 당일 환자의 필요조건 등을 고려해 수동 방식으로 병상을 배정했단다.

이 교수는 “전산상으로는 비어 있지만 실제로는 빈자리가 아닌 병상이 많다. 전원 예정인 환자가 병상에서 머무르거나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가 해당 병실로 옮기기로 예정된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 내용들이 모두 전산상에 없는 것이다. 이에 원무과 직원이 일일이 병동에 전화해서 알아봐야 했다”고 말했다.

상황을 파악한 이 교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병동, 진료과, 원무과 등 교직원들을 불러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이었다. 그리고 성별, 감염병, 교수의 회진 동선 등 입원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예를 들어 정형외과 병동에 환자가 입원한 경우 연령, 성별, 감염병, 심지어 교수의 회진 동선까지 고려했을 때 입원할 수 있는 1지망 병상이 있지만 만약 자리가 찼거나 다른 조건이 맞지 않을 경우 2지망 병상으로 바로 배정되는 시스템이다.

또한 각 단계에서 필요한 정보를 전산에 추가하는 과정이 필수적인 만큼 의료진과 이를 조율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교수는 “이 시스템의 핵심은 교직원들이 병상이나 환자와 관련된 상황을 제 때 입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어느 정도 양보하도록 조율하는 자리도 필요했다”며 “그래서 더욱 소통에 집중했다”고 했다.

현재 대부분의 환자가 시스템을 통해 바로 배정된다. 특이한 몇몇 사례는 매칭에 실패하지만, 그 수는 하루 10건 내외에 불과하다. 이미 다른 병원에서 시스템에 대해 묻는 전화가 매일 오고 있다.

이 교수는 “향후 환자들이 병실을 예약할 때 굳이 원무과에 들리지 않더라도 카톡으로 입원하게 될 병상으로 안내해 주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싶다. 이를 통해 환자가 겪는 프로세스를 줄일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바일 기기로 검사 결과 보여주며 설명…'G-MICS' 호평

가천대 길병원 의료진이 'G-MICS'를 활용해 환자에게 의료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 가천대 길병원).
가천대 길병원 의료진이 'G-MICS'를 활용해 환자에게 의료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 가천대 길병원).

자동 병상 배정 시스템이 행정 직원의 고충을 덜었다면 의료진의 편의를 강화한 사례도 있다. 바로 모바일 진료 플랫폼 ‘G-MICS’다. 모바일 기기를 통해 병리 검사 결과, CT·MRI 등 의료 영상 판독 결과를 어디서든지 확인할 수 있다.

길병원이 G-MICS 개발에 착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코로나19였다. 병실에서 나올 수 없는 환자들에게 검사 결과 등을 쉽게 보여줄 방법을 고민하다 자체 플랫폼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예전부터 의료진이 개선을 요구해 왔다. 환자들이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하면 엑스레이나 CT를 보러 가기도 어렵다. 그래서 말로 잠깐 설명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간단하게라도 보여주면 의료진도 설명하기 쉬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코로나19가 개발의 기폭제가 됐다. 환자들이 아예 병실에서 못 나왔기 때문”이라며 “상용화된 모바일 플랫폼이 있었지만 쓸모없는 부가기능이 많아 의료진의 니즈(needs)에 맞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자체 제작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제작 과정에서는 주로 응급의학과와 외상외과 의사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의료진이 환자 곁에 붙어 있어야 하는 응급상황에서 G-MICS가 유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모든 진료과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 교수는 “현재는 응급실뿐 아니라 중환자실을 포함해 거의 모든 진료과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의료진도 벽에 디스플레이를 달아서 설명할 수 있게 해달라거나 키오스크를 만들어 달라고 새로운 의견을 개진하고 있어 적극 반영하려고 한다”며 “앞으로는 단순 검사 결과뿐 아니라 환자에 대한 오더 등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도록 확장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인턴들의 의견을 반영해 지난 2월에 자체 제작한 ‘할일 목록(To-do list)’도 개발했다. 인턴이 수행해야 하는 업무들이 중구난방방으로 정리되지 못한다는 의견이 나오자 이를 전산화해 정리했다. 시스템을 통해 일의 중요도와 난이도를 고려한 우선순위를 정리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겨울 동안 인턴들에게 테스트를 부탁했다. 인턴 업무가 보통 2월에 끝나는데 그 이후에 적용될 것을 왜 자기가 도와줘야 하느냐면서도 열심히 피드백해줘서 고마웠다”며 웃음지었다.

"교직원들 편한 환경에서 환자 돌봄에 집중하도록"

이 교수는 전산정보실장으로서 앞으로 길병원에서 추구할 혁신의 방향은 한 파트만 편해지는 게 아니라 모든 교직원이 편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는 혁신 방안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안전을 위해 하는 여러번 하는 작업 외에는 최대한으로 중복을 줄여 교직원들이 조금 더 편안한 환경에서 환자를 돌볼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다.

이 교수는 “앞으로의 목표는 어느 한 부서가 아닌 모든 임직원이 좀 더 환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안전하고 편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며 “전산화를 통해 중복적인 일을 최대한 줄이고 실수를 줄여 교직원들의 노동 부하도 줄이면 환자 안전도 강화될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이 편하면 환자에게 더 많이 신경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는 2027년 개원을 목표로 하는 서울길병원의 경우 이제까지 시행착오를 거치며 개발했던 시스템을 처음부터 선보일 수 있는 스마트병원으로 조성하고 싶다고도 했다. 더 나아가 이송용 로봇 운영까지 염두에 두고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나중에 서울길병원이 문을 열면 병원에 적용하던 시스템들을 한 번에 적용해서 환자들에게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이를 위해 이제 막 시작한 혁신 사례의 고도화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계속 고쳐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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