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의사 출신 경제학자 홍콩과기대 김현철 교수
"의료취약지·필수의료 문제, 의사 늘린다고 능사 아냐"

의사 출신 경제학자인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김현철 교수가 최근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이란 저서를 발표했다.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피부로 느끼는 경제 정책을 수많은 연구와 통계를 근반으로 해부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경제학자가 바라 본 의료 취약지의 의사 부족 문제, 건강보험 보장성 문제, 공공의대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 등도 짚었다.

최근 청년의사와 만난 김현철 교수는 “의료인이 근거를 기반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처럼 경제학에서는 어떻게 근거 기반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을지 소개하고 싶었다”고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한국의 보건의료 문제를 의사 출신 경제학자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들었다.

김현철 교수는 연세의대를 졸업한 후 의사로 활동하다 연세대 경제학부,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코넬대 정책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의사 출신 경제학자인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김현철 교수는 최근 신간을 냈다.

- 졸업한 후 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경제학자로 진로를 바꾼 계기가 있나.

우선 의학은 자연과학이지만 경제학은 사회과학이다. 이 사회과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유방암클리닉에서 실습생으로 근무하던 시절 시골에서 온 한 40대 중반의 여성 환자를 진찰했는데 이미 말기암이었다. 어떻게 알려야 할지 망설이는데 환자가 암이 맞냐고 매우 두려워하며 물어보더라. 그 모습을 보며 정기 검진을 받으면 손톱보다 작은 암도 발견하는 현실에서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에 속상함을 느꼈다. 자리를 피해 환자 몰래 눈물을 흘리면서 경제학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사람을 도우려면 의료도 중요하지만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경제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나쁜 경제 정책으로 많은 이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반대로 좋은 경제 정책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 의사 출신이라는 배경이 경제학을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됐나.

의사들이 ‘근거 중심의 의학’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듯이 경제학을 연구하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경제학을 시작하면서 그런 마인드를 갖추고 시작한 게 많은 도움이 됐다. 주로 연구하는 영역이 보건 경제학인데, 많은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는 분야이기에 의학적 배경지식이 많은 도움이 된다. 병원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환자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등 지식이 부족하면 보건 분야 경제학을 하기 어렵다. 의사 생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의 출간 된 계기는.

경제학을 공부한 지 20년이 됐는데 그동안 많은 분야에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경제학 연구 성과가 나왔다. 해당 연구들을 소개하고 어떻게 정책으로 바꿀 수 있을지 보여주고 싶었다. 의료에서는 항상 근거가 중심이 된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탄탄한 근거를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의료에서 근거를 기반으로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만들 듯이 경제학에서도 근거에 기반해 사람을 살리는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조사하고 의학적 근거에 따라 치료하듯 정부도 그런 정책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 책에서 의사들이 의료 취약지에서 근무하려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의사들이 보람을 찾고 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있도록 돕는 비금전적인 인센티브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의료 취약 지역에서 자기 인생의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의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194P)

최근 의료 취약지 의사를 충원하는 방안으로 공공의대 신설이 떠오르고 있는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공공의대 신설의 요지는 의대 진학 비용을 지원하고 해당 의사가 취약지에서 일정 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복무한다는 것인데 좋은 제도인지 의문이 든다.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가도록 해야 의료 취약지에서도 성취를 이루는 의사들이 나올 것이다. 군대 가듯이 끌려가면 긴 복무 기간이 의사와 국민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취약지에 가도록 하는 기반을 만들자는 거다. 보상뿐 아니라 사회가 주는 존경 등 비금전적인 인센티브까지 고려해야 한다. 의사가 취약지에서도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의사를 성직으로 여기는 것은 넌센스다. 그들도 사회인일 뿐이다. 성자와 같은 의사들은 이미 아프리카나 오지에서 의료 봉사 중이다. 평범한 의사들이 의료 취약지에 갈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책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상태다. 어떻게 보나.

이제 필수의료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응급하지 않은 질환을 치료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이 작고 교통이 발달했기에 가까운 도시에서 치료 가능한 일반적인 중증 질환에 대한 지나친 투자는 불필요하다.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 특수 영역에는 투자해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분만이나 응급한 상황에 먼 거리를 이동하다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모든 진료과가 필수의료가 될 수는 없으며 자원이 제한된 만큼 모든 의료 수요에 대해 투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다.

- 최근 수험생들의 의대 지원이 늘어나며 이공계 인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매우 우려가 크다. 최고의 인재들이 의료 분야에 진출하는 것이 맞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분야가 의료 분야인지 의문이 든다. 의료 분야가 나라 하나를 먹여 살리는 예도 있긴 하다. 다이어트 약 위고비(Wegovy)로 대박을 터뜨린 노보노디스크는 덴마크의 ‘삼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의과학자가 아니라 대형병원 의사나 개원의를 꿈꾸며 의대에 지원한다.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모두 이공계에 인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노동시장에서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이공계로 진출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 잘 사는 정도가 아니라 의사 이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본보기가 나와야 한다. 미국에서도 많은 인재들이 의료계로 진출하지만 엘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같은 거물들도 나온다. 그런 이들이 배출되도록 이공계 분야를 육성해야 한다. 더불어 정부가 의사의 수입을 일정 수준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 의대 정원 확대 발표에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다.

장기적으로 의사 수가 늘어날 필요는 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의료 수요가 늘어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 수 증원이 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라는 건 어림도 없는 소리다. 필수의료 대책을 따로 마련하지 않으면 결국 피부 미용하는 의사들만 1,000명 더 늘어날 것이다.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와 필수의료 부족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정책이 한 분야, 혹은 개인에게까지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책에서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부모를 잘못 만난 불운, 살아가며 맞닥뜨린 이런저런 불운을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죠. 골고루 나누어지지 못한 운을 좀 더 골고루 나누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역할입니다.'(37p)

인생에서 이루는 성취의 8할은 운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태어나면서 첫 번째로 만나는 운은 ‘어디서 태어났는지’다. 태어난 국가의 1인당 GDP와 불평등 지수로 내 월급의 절반 정도는 설명되기 때문이다. 또 부모가 누구인지, 어떤 DNA를 받았는지도 등도 영향을 끼친다.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에도 운이 많은 작용을 한다. 그러나 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불운이 증폭되는 반면 부유한 이들은 불행을 최소화하는 힘이 있다는 점이다. 이에 국가의 역할은 불운을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운이 나빠 좋은 환경을 갖지 못한 사람이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국가의 역할이다.

- 앞으로 계획은.

학문적 성과를 통해 좋은 정책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었으면 한다.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의료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경제 정책도 많은 이들의 삶을 좌우한다는 사실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책에 보건의료와 관련된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다. 많은 의사들이 책을 통해 의료계 현안을 경제학적인 마인드로 이해하는 방법을 얻어 갔으면 한다. 임상 현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의료 정책의 효과를 이해하는 통찰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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