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건미포럼 박종훈 상임대표
"인력구조 변한 대학병원이 가장 먼저 붕괴"

의료체계가 무너지면서 “동네의원보다 대학병원이 먼저 붕괴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의료체계가 무너지면서 “동네의원보다 대학병원이 먼저 붕괴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한국의료, 지금 막장이다.”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붕괴 직전에 놓였다는 경고가 흘러나온다. 의료전달체계 부재로 인한 의료생태계 붕괴가 그 원인이다. 경증과 중증 너나 할 것 없이 몰려 온 환자들로 몸집을 불려온 대학병원들은 낮은 수가를 극복하기 위해 박리다매 구조로 버텨왔고, 지금도 간신히 버텨 내고 있다. 이처럼 인력을 갈아 넣어 완성한 ‘K-의료’가 벼랑 끝에 다다랐다는 지적이다.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가 처한 상황을 두고 “막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동네의원보다 대학병원이 먼저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급여 시장 확대로 인한 필수의료 붕괴, 인력 부족과 구조의 변화, 지방 의료체계 몰락 등 의료전달체계 부재로 인한 수많은 문제들이 대학병원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료 현장 곳곳에서 ‘코드 블루’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뾰족한 방안도 없는 상황이다. 정부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땜질식 처방일 뿐 제대로 된 청사진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 교수가 심각한 의료 왜곡 상황 속에서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미래 의료’를 고민하게 된 이유다. 이에 박 교수는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과 규합해 지난 9월 ‘건강한 미래와 지속 가능한 의료 환경을 위한 포럼’(건미포럼)을 공식 출범했다. 초대 대표는 박 교수가 맡았다.

의료 전문가들도 함께 손을 잡았다. 차의과대학 지영건 교수와 순천향의대 이은혜 교수, 강대식 전 부산시의사회장, 담헌 장성환 대표변호사 등이 건미포럼에 합류했다. 박 교수는 건미포럼이 보건의료정책 대안을 만드는 ‘싱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함께 이끌어 나가겠다고 했다. 박 교수에게 벼랑 끝에 선 우리나라 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건미포럼의 향후 계획에 대해 들었다.

‘건강한 미래와 지속 가능한 의료 환경을 위한 포럼’(건미포럼) 초대 상임대표를 맡은 고대안암병원 박종훈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한국 의료가 '막장'에 처했다고 개탄했다(ⓒ청년의사).
‘건강한 미래와 지속 가능한 의료 환경을 위한 포럼’(건미포럼) 초대 상임대표를 맡은 고대안암병원 박종훈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한국 의료가 '막장'에 처했다고 개탄했다(ⓒ청년의사).

- 건미포럼을 출범한 배경이 궁금하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시스템이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겠다는 인식이 있었다. 조만간 큰일 날 것 같다는 위기가 느껴지는데 정무는 무관심하고,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중 포럼이라도 하나 만들어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의견을 내보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건강복지정책연구원을 필두로 포럼을 구성했다. 보건의료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체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9월 국회에서 ‘과잉진료’를 화두로 토론회를 개최하며 건미포럼을 출범했다.

-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 의료가 망할 거라는 시그널은 어디에서 가장 강력하게 감지했나.

최근 1~2년 사이 우리나라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의료 관련 이슈들이 몇 가지가 있다. 필수의료 분야 기피 현상이다. 모든 이공계 인재들이 의과대학으로 쏠리고, 그 인재들이 향하는 곳은 모두 피부·미용 분야다. 한편에서는 응급실을 뺑뺑이 돌다 사망하는 환자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발생한다.

대학병원 안에서는 의료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간호사, 의사 인력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고 그렇다보니 특정 분야 인력 인건비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서울은 그나마 낫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대학병원들은 힘든 여건이다. 결국 이 현상은 가속화되면 인력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급여가 가파르게 상승할 수밖에 없다.

-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급여를 올려도 당장 의사가 없는 경우도 있지 않나. 병원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전공의들이 커버하던 영역을 이제 촉탁의들이 들어와 메우기 시작했다. 촉탁의 고용을 위해서는 전공의 급여의 적어도 4~5배는 줘야 한다. 하지만 촉탁의 급여가 폭등하면서 임상교수들을 안 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교수 안 하고 병원을 나가겠다고 한다. 이미 병원 밖 의료시장의 급여 조건이 너무 좋아졌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이 지금까지 버텨나갈 수 있는 이유는 값싼 노동력에 저수가를 극복할 수 있는 과잉진료로 때문이었는데 인건비 폭등에 이를 만회하겠다고 과잉진료를 거듭하며 벼랑 끝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촉탁의가 빠져나간다? 그럼 붕괴하는 거다.

- 대학병원 인력 구조가 자체에 변화가 큰 것 같다.

우리병원 마취과만 보더라도 전공의와 전임 교수밖에 없다. 임상 교수가 별로 없다. 촉탁의가 한 축을 버텨주고 있다. 갈수록 촉탁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촉탁의가 전임 교수들보다 급여 조건이 더 좋다. 이를 보고 교수를 안 하겠다는 이들도 있다. 전공의하고 임상 교수 때도 소위 ‘갈아 넣어’ 일을 했는데, 교수가 됐는데도 또 당직을 서야 하고 연구도 해야 한다. 전공의도 전임의도 없는 상황에 교수직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급여 조건은 촉탁의보다 좋지 않다. 과거에는 명예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조직이 붕괴되는 건 한순간이다.

- 대학병원부터 붕괴할 거라고 경고한 이유도 궁금하다.

인력 구하기가 힘들지만 지방과 수도권은 또 다르다. 지방은 ‘씨가 말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수도권 대학병원에서는 돈을 많이 준다고 하면 데려올 인력들은 있다. 감당은 안 되도 당장 숨은 쉬어야 하니까. 그러나 지방은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사람이 없다. 결국 병원을 돌릴 수 없으면 의사가 없는 곳부터 서서히 붕괴될 수밖에 없다. 수도권도 머지않았다.

경고음이 계속해서 들리지만 대학병원들은 멈추지 않고 있다. 대학병원 마진율이 높지 않다. 그동안 건물도 외형을 키우는데 집중하면서 맛있는 음식이든 맛이 없는 음식이든, 중증과 경증을 가릴 것 없이 계속 먹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대학병원들은 24시간 과잉으로 먹어야만 되는 구조가 됐다. 의료 인력은 없고 유지는 해야겠고 고가로 영입해야 하는 구조로는 영업이익이 엄청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 대학병원의 과잉진료, 즉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수요자 대표다. 의료 수요를 분석해 의료 필요도에 따라 공급자들과 협상을 해야 하는 게 공단의 역할이다. 정부가 공단으로 하여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미션을 줘야 했지만 그런 권한은 정부가 다 가져갔다. 대부분 단일보험 체제에서는 공급 컨트롤을 한다. 예산 범위 내 공급자들을 컨트롤해 의료를 제공하도록 유도하는데 우리나라는 단일보험 체제임에도 공급 컨트롤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몸집이 마구 커져나갈 수밖에 없다. 공단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줘야 한다. 의료 서비스 시장을 앞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정책 집단이 돼야 한다.

- 정부도 문제 해결을 위해 개선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정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정부는 5년 뒤, 10년 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청사진을 한 번도 제시한 적 없다. 그러니 이에 대해서도 평가를 내놓을 수도 없다. 예를 들어 비급여 과잉진료 시장을 규제하겠다고 선언만 있을 뿐 방향 제시는 없다. 뭘 지향하는지 알 길이 없으니 이 방향이 옳다고 할 수도,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답답하다.

- 건미포럼의 역할은 무엇인가.

의료생태계 복원을 위해 노력할 거다. 의료계 내 우리의 권위를 세우겠다는 게 아니다. 의료생태계 복원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 지속 가능한 의료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정책 제안을 지속적으로 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문을 넓히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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