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순 기자의 '꽉찬생각'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둔 우리나라 상황을 반영하듯 사회 각계에서 ‘간병국가책임제’에 대한 요구와 목소리가 크고 높다.

최근 간병 현장에서 잇따라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로 ‘간병살인’, ‘간병학대’라는 말이 등장하며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 역시 커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간병국가책임제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꽉찬생각
꽉찬생각

지금은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맞붙은 지난 대선에서도 간병문제 해결은 주요 이슈 중 하나였다.

윤석열 후보는 ▲간병보험제도 제도화 및 표준 간병비와 본인부담금의 정책적 관리 ▲전문적 간병사 교육제도의 정착과 질 또는 정도 관리 ▲공적 간병보험과 민간보험사의 간병비 보험 활성화 ▲국민건강보험공단 간병보험 컨트롤 타워 설치 등을, 이재명 후보는 ▲간병인력 양성제도 수립 및 간호 간병인력 처우 개선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었다.

국민 상당수가 간병 관련 직간접 경험을 하면서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정치권에서도 간병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도 나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간병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국적과 나이, 근무형태, 업무범위 등에 대한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했고 현재 조사 내용을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이 요구하고, 정치권이 관심을 보이고, 정부가 차근차근 계획을 수립하는 현 상황은 바람직한 정책 추진 과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간병문제 해결과 관련해 우려되는 점이 있다. 22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내년 초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4년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총선의 계절이 되면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들을 위한다며 갖가지 공약을 내걸고 표를 구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한다. 약속들 중 일부는 현실이 되고 일부는 없던 일이 된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간병문제와 관련해 ‘곧’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하거나, 총선용 ‘설익은’ 정책을 내놓는 후보들이 있다면, 이는 사회에 ‘간병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잘못된 신호는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특히 간병문제는 단순히 간병인 고용 형태, 교육체계, 비용문제 등을 개선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간병 수요가 가장 큰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간 기능정립, 요양병원의 사회적 입원문제 등도 같이 해결돼야 효과를 볼 수 있는 제도다.

만약 이런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국민들이 당장 체감할 수 있는 간병급여화 도입 등 급격한 변화가 온다면, 불필요한 입원 증가 등 사회적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

초고령화사회를 앞둔 우리나라에서 간병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지금도 늦었고 서둘러야 한다는 것도 맞다. 그렇지만 ‘바늘을 허리에 꿰서’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현황 파악 등 정책 수립을 위한 준비부터 차근히 해야 한다.

부끄럽지만 우리사회는 아직 ‘간병인’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너무 모른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어디에서, 어떤 일을, 얼마를 받으면서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지금 복지부가 하고 있는 작업이 바로 간병인을 정확히 알기 위한 작업이다.

‘왜 아직도 이정도 밖에 하지 못했나’라고 복지부를 질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혹시라도 내년 총선에 맞춰 서둘러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요구는 없었으면 한다.

향후 수십년 간 의료 현장과 국민 생활을 바꿀 수 있는 간병정책은 '빨리'가 아닌 '제대로'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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