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표적항암제로써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가 국내에서 4기 환자의 1차 치료에 허가를 받은 게 2018년 12월이다. 타그리소를 보유하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는 허가 직후인 2019년 1월부터 환자지원프로그램(EAP)을 운영해 1차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약제비 지원을 지속해 왔다. 연간 최소 500~600명의 환자들이 1차 치료에 타그리소 약제비 지원을 받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리고 타그리소 약제비 지원은 2023년 현재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그 사이 타그리소는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에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았다. OECD 국가 대부분에서 타그리소 1차 치료를 급여로 인정 하고 있으며, 한국은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튀르키예 등과 함께 급여가 되지 않는 소수 국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칠전팔기(七顚八起) 끝에 올 3월 급여 첫 관문인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하고, 현재 심사는 경제성평가소위원회 단계를 지나고 있지만, 정부의 끊임없는 추가 자료 요구에 여전히 타그리소 1차 치료 급여 시기는 베일에 싸인 상태다.

타그리소의 한 달 약값은 600만원을 상회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1차 치료에 타그리소 약제비 지원을 받는 환자들은 매월 400만원이 넘는 비용을 자비로 충당하고 있다. 누군가는 급여를 기다리다 못해 치료를 중단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삶의 보금자리인 집을 팔아 치료비를 감내하고 있다. 실제 얼마 전 건강보험재정 개편 방안을 논의하는 한 토론회 자리에 발제자로 나선 환우 보호자는 타그리소 4년 치료에 결국 자가를 팔고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암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국가의 도움이란 없었다.

현재는 국산 신약인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가 1차 치료에 가세하며, 새로 진단 받은 4기 폐암 환자들의 치료 환경은 호전된 상황이다. 렉라자를 보유하고 있는 유한양행이 보험급여 전까지 렉라자 약제비 전액을 무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즉, 지금부터 4기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을 진단 받는 환자들은 2가지 3세대 표적항암제를 선택할 수 있으며, 그 중 렉라자를 선택할 경우에는 약제비 전액을 지원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사실은 지난 4년 반 동안 타그리소 약제비 지원을 통해 1차 치료를 받아 온 환자들은 여전히 매월 400만원이 넘은 돈을 자비로 충당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들이 정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고 있다는 것이다.

타그리소 급여 지연에 정부가 간과하고 있는 또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바로 후속 치료제 개발에 한국이 배제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는 표적항암제를 기반으로 이뤄지며, 여기에 쓰이는 EGFR TKI는 반드시 내성을 유발한다. 지금도 타그리소 치료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4세대 약제가 전세계적으로 개발 중이다. 이들 모두 이전 치료에 타그리소를 사용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유일한 글로벌 스탠다드가 타그리소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임상 현장에서 타그리소 이 외의 3세대 EGFR TKI를 사용하는 국가는 한국과 중국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서양인을 위주로 한 글로벌 제약사들의 4세대 약제 개발은 타그리소 치료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을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 대부분의 국가가 타그리소 1차 치료를 급여 적용하고 있다면, 임상 현장에 괴리가 있는 한국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진행하는 4세대 약제 개발에 참여할 가능성이 더욱 낮아진다. 또한 이 같은 임상연구 참여 배제는 결국 이후 개발될 4세대 약제들의 허가 지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뿐인가? 타그리소의 급여 지연은 4세대 약제를 개발 중인 국내 기업들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글로벌 신약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국의 임상 환경이 글로벌과 다르다면, 그 괴리는 개발비의 상승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타그리소의 급여 지연은 비단 현재 약제비 지원을 받고 있는 일부 환자들의 고충으로 끝나지 않으며, 향후 국내 폐암 치료 환경과 국내 제약산업의 이해관계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힘든 암 치료 여정을 정부의 지원 없이 온전히 환자와 가족들이 짊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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