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이오산업, 현장에서 듣다⑥ 젬백스앤카엘 바이오 송형곤 사장

젬백스앤카엘은 신약을 개발한 국내 대표적인 바이오기업 중 하나다.

수년간 기대를 모은 신약 후보물질 'GV1001'이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3상 다국적 임상시험(2013년)에서 생존율이 통계적 유의성을 보이지 못하는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이후 췌장암 환자 중 이오탁신 수치가 높은 환자에 대한 효과가 입증, 시장에 ‘리아백스(21호 신약)’를 내놓으며 저력을 드러냈다.

하지만 당초 목적과 달리 신약의 시장성이 축소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듯 신약 개발 과정에서 다소 쓴 맛을 보기도 한 이 젬백스앤카엘이 최근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 최전선에 선 인물이 바로 송형곤 사장. 지난 2015년 말부터 업무적응 기간을 거쳐 지난해 7월 사장으로 부임했다.

송 사장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삼성서울병원,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등 민간·공공병원에서 근무하며 국내 의료 시스템의 적나라한 민낯을 경험했고,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와 대변인 등을 통해 의료 정책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젬백스앤카엘에서도 눈속임 없이 좋은 약을 만들기 위한 '원칙'을 지켜나가겠다는 송 사장을 만나봤다.



-그간 다양한 경험을 했다. 사업 운영에 도움이 되고 있나.


물론이다. 삼성이라는 조직과 공공의료원은 일이 돌아가는 방식부터 굉장히 다르다. 대한의사협회에선 대변인을 거치면서 의료정책과 언론 등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됐다. 개인병원에만 있어선 알기 힘든 부분이다. 임상시험 등과 관련해 의사들을 만나면 (같은) 의과대학 교수 출신이라는 점 등으로 솔직한 소통이 가능한 면도 있다.

바이오산업은 간호사, 약사나 생물학, 유전학 등의 전공자들이 들어와야 할 곳이다. 특히 의사이기 때문에 유리한 점도 많다. 누가 뭐라고 해도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의사로서의 가치만큼은 끝까지 가져가려고 한다. 의사는 환자에 득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 약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공정한 과정을 통해 약을 만들고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한편 회사에 적정한 이윤을 남기고 싶다. 이를 위해선 원칙대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당장 힘들어지는 한이 있어도 결국에는 원칙대로 가는 게 가장 좋은 길이다. 자본력 등과 관련해 벤처로서 한계에 부딪히더라도 원칙대로 가보기로 했다.

-회사 바이오사업이 일부의 기대보다 성과가 적었다.
맞다. 바이오기업으로서 시장의 신뢰성 회복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제부터 믿어달라고 하면 믿어주겠나. 하나씩 하나씩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주가와 관련해선 올해 1월부터 시작해 12월까지를 보자는 얘기를 최근 나눴다. 중간에 주가가 오르내리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해도 시점과 종점을 1년으로 놓고 봤을 때는 기울기가 몇도가 됐든 주가가 꾸준하게 올라가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계획을 밝히고 실제로 그것을 해나갈 때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바이오 부문 투자가 전망이 좋지만 동시에 과열됐다는 시각도 있다.
장기적인 투자라면 아직 더 투자가 돼야 될 부분들이 있다. 장기적인 투자라 함은 최소 2년 이상을 말한다. 물론 일부 자본은 투자처를 잘못 찾아가는 면도 있다. 개인적으로 바이오 parasite(기생충)이라고 표현하는데, 뭔가 이슈만 가지고 주가를 올려놓는 업체들도 있다. 전문성이 높은 분야라는 점을 이용하는 것인데, 이런 부분들이 과열을 부추기는 요인이라 볼 수 있다. 제대로 된 바이오업체 구분은 펀더맨털(기초체력)을 튼튼하게 하고 가느냐를 보고 판단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 상황은.
GV1001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먼저 전립선비대증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2상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데, 지난해 10월 마지막 환자가 (투약이) 끝났다. 오는 2~3월경 최종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정확한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는 지난해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2상 임상시험을 승인받은 상태다.

-GV1001은 항암제로 허가 받은 약물이다. 적응증 확대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항암제는 독하다는 인식으로 주주나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적응증 확대는 회사 김상재 대표가 한양의대 이규용 교수(신경과장)에게 신경독성을 알아봐달라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런데 독성이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손상된 신경세포가 치유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알츠하이머 질환에 관여하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합성을 억제하고 타우단백질을 줄였으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산화 스트레스와 염증이 개선됐다. 항암제로 썼을 때와 다르게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전립선비대증의 경우엔 2013년까지 영국에서 진행된 췌장암 3상 임상시험의 이상반응 보고를 통해 남성들이 화장실을 간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가능성을 봤다. 전임상 등을 통해 약물과 전립선비대증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항암제로서 연구도 계속될 예정이다. 특히 유방암이나 전립선암 쪽으로 적응증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임상시험 성공 시 기대하는 시장규모는.
3개 시장(췌장암, 알츠하이머, 전립선비대증) 중 단일종목으로 (타깃) 시장규모를 가장 크게 보고 있는 것은 알츠하이머다. 분석해봤더니 2023년도 기준 글로벌 시장이 13조가 넘어갔다.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화두인 동시에 시장규모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특히 그중 미국 시장이 60~70%다. 미국시장으로 가야한다는 얘기다. 라이센싱 아웃을 전제로 하면 FDA(미국 식품의약국)에 임상시험 2상 허가 정도는 있어야 한다. 목표는 2017년말에서 2018년초 정도다.

알츠하이머와 관련해 이미 밝혀진 사실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베타아밀로이드 축척 양을 줄인다고 해도 증상호전이 없다는 부분이다. 결국 베타아밀로이드가 알츠하이머 질환의 기전을 100% 설명하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GV1001은 베타아밀로이드만 줄여주거나 타우단백질만 없애주거나 하는 게 아니고 염증억제 등까지 3~4개 기전이 복합돼있는 메커니즘이다. 알츠하이머 중기나 말기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반면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도네피질 같은 경우는 효과가 초기 알츠하이머에서 증상의 발현을 조금 늦춰준다는 것 정도다. 전립선비대증은 50세 이상의 40% 이상이 전립선비대증이라는 보고가 있을 만큼 워낙 환자가 많다. 때문에 이 역시 시장성이 크다고 본다.

-임상시험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CRO(임상시험수탁기관, Clinical Research Organization)와도 협상을 잘 하려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값으로 같은 효율을 낼 때는 최소비용으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결국 만나서 협상해야 하는 부분이다. 발로 뛸 수밖에 없다. (제시된) 견적을 검토만 하고 사인하는 식으로는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에누리 없는 게임이 있겠나. 더군다나 돈이 많지 않은 바이오벤처다. 돈을 쓰는 부분들에서도 틀을 잡아가려고 한다.

-국내에서 연구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회사는 펩타이드(peptide) 신약개발업체다. 우리 몸에 있는 펩타이드 구조를 따서 약을 만들면 (효과성을 떠나) 적어도 부작용만큼은 굉장히 적다. 관련 후보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다. 다만 이같은 연구를 수행할 전문가가 (국내에) 많지 않다는 것은 장애요소다. 더 많은 전문가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부도 바이오전문가 양성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많은 부처나 협회에서 인력양성에 관련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임상시험에 관련한 규제 등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만든 만큼 (임상연구 부문을) 가장 많이 안다. 따라서 식약처가 중심을 잡고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정부가 세제지원 등의 방침을 발표했는데 이보다 중요한 게 인력이다. 개별 단체에 맡길 일이 아니라고 본다.

-정부 R&D 등 투자 부문에 대한 견해는.
바른 바이오에 대한 시각에서 올바른 지원책이 나온다. 그런 부분에서 경직된 면이 있다. 바이오는 산업특성상 실패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R&D 프로젝트 10개가 가동됐다면 그중 1개만 성공해도 나머지에 대한 투입비용을 커버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그럼에도 신약개발 등을 위해 펀드나 연구를 지원할 때에 모두 성공해야 한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산업화에 있어 투자대비 비용효과를 산업 전체적으로 봐야지 개별적으로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병원 해외진출 사업도 마찬가지다. 삼성도 두바이에 클리닉을 오픈했다가 2년 만에 접고 나왔다. 성공한 케이스가 사실상 없다. 이는 성공이 어려운 부분이다. 왜 성공이 어려운지는 실제로 진료를 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의료에 있어 의사와 환자 관계 중 가장 중요한 게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런데 언어가 다르다. 이는 심지어 국내에서도 그렇다. 진료봉사로 충청도나 제주도에 가도 소통이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무릎이 아프다는 것을 ‘고쟁이가 절절하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더라. CT나 MRI만 갖다 대선 모두 다 알 수 없다. 의사가 이해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고찰 없이 한국 의사가 우수하니 나가면 성공한다는 단순논리로는 곤란하다.

-한국의료산업 수출에 있어 부가가치는 어떻게 창출할 수 있을까.
상급종합병원에서 스텝으로 있으면 대게 1년 정도는 미국에 보내준다. 원하는 나라에서 공부할 수 있게 지원해준다는 뜻이다. 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자신이 전공하는 과목에서 대가를 만나 1년 정도 관계를 맺고 나면 평생 사제지간으로 남는다. 스승이 하는 (술기를) 제자가 그대로 할 수 있고 나중에는 연구도 함께 진행하게 될 수 있다. 네트워크 형성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중국 의사들을 우리나라로 부르면 어떨까. 중국에서 미국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 비해 비자도 나오기 힘들고 지리적으로도 멀다. 비용도 많이 든다. 그런데 (정부가) 투자개념으로 펀드 등을 만들어 연수를 오고 싶은 중국 의사들을 일정 부분 보조해준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소화기내과의 대가인 삼성서울병원 A교수 밑에서 3명이 배우고 중국으로 돌아갔다면, 기기는 어떤 기기를 쓰겠나. A교수가 쓰던 기기를 가져간다. 약 처방도 마찬가지다. A교수가 처방하는 대로 처방한다. 그래서 ‘교육’이라는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료산업은 의사가 상당부분을 좌우한다. 의료 소비자가 특정 기기나 약을 요구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의사가 선택하는 대로 의료소비자가 따라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즉, 의료 산업화에 대한 시각자체를 바꿔야 한다.

-앞서 경험한 곳들보다 더 치열한 자리로 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수가협상’이 뭔지도 모르고 처음 의협 대변인으로 들어갔을 때처럼 많은 공부를 했고 하고 있다. 아직 100%는 아니지만 보인다. 의협에서 의협의 노력만으로 힘든 ‘수가 현실화’ 등을 얘기할 때보다 지금이 더 재밌다. 지방 의료원에서도 (응급의료센터장으로서) 처음 몇 개월은 편했지만 이후 좀이 쑤셨다. 편할 나이는 아니지 않나(웃음).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환자들부터가 큰 수술은 큰 병원에서만 받으려고 한다. 반면 이곳에선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연구개발 파트는 창의적으로 나머지 파트는 친화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동시에 사장으로서 권위의식을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직원들에게도 만약 처음의 모습을 잃은 것으로 보이면 언제든 얘기해달라고 했다. 조직 전체적으로는 원칙을 지키는 틀 안에서 힘들더라도 제대로 산을 넘어 가겠다. 물론 단기간 결판낼 수 없는 사업이다. 아직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조직이 그렇듯 밖에서 들어온 사람에게 문제점이 보이기 마련이다. 고쳐나가고 있고 나아지고 있다. 제약사 사장으로서 회사가 커진다고 해도 좋은 약을 만들겠다는 의사로서의 가치 만큼은 끝까지 가져가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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