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의 모노태스킹

최근 대만에서는 부모를 방치한 자녀의 유산 상속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싱가포르는 부모 자식 사이에 부양 관련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해 주는 부모부양재판소와 부모부양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다. 인도, 프랑스, 독일, 중국 등도 자녀의 부모 부양 의무를 법에 명시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법적 의무는 없다.


네덜란드 웨스프에는 호그웨이(Hogewey)라는 치매마을이 있다. 20여 채의 집에 6~8명씩 150여 명의 치매 환자들이 모여 산다. 환자들도 가사를 일부 분담하고, 이들을 돕는 직원들이 상주한다. 식당, 술집, 극장도 있으며, 이런 시설은 인근 주민들도 함께 이용한다. 미국 보스턴에는 비컨힐빌리지(Beacon Hill Village)라는 은퇴마을이 있다. 고령 거주자와 자원봉사자들이 이웃에 살면서 서로 돕는 공동체로, 소수의 유급 직원들만 근무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실버타운에 비해 저렴하다. 우리는 아직 이런 식의 주거 실험은 없다.

영국, 미국, 싱가포르 등은 병원 입원 감소를 위해 가정을 돌봄의 중심으로 놓고 클리닉, 병원, 종합병원, 요양병원, 응급실 등을 연계하여 ‘돌봄 연속체’를 조직하려 애쓰고 있다. 고도의 급성기 의료를 포함하여 최대한 많은 의료를 집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왕진 자체가 불법이다.

하와이에서는 주 정부와 모든 의료기관 및 보험회사가 협력하여, 모든 주민들에게 ‘사전 치료계획’ 수립을 위한 교육을 동영상을 활용하여 실시하고, 환자 본인의 의향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EMR에 올리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에게 말기 상황이 도래했을 때 최대한의 치료, 제한적인 치료, 완화의료라는 세 가지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미리 결정할 수 있고, 자신의 뜻을 주변 사람들이나 의료진에게 확실히 전달할 수 있다. 이로써 원하지 않는 연명치료를 줄이면서 의료비도 절감할 수 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꼭 해야 하는 이야기들” 참조.) 호스피스 확충 등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을 돕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도 많은 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선언적’ 수준의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을 앞두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HMO와 같이 보험자인 동시에 공급자인 기관들은 노인 의료비 급등을 막기 위해 질병의 예방이나 조기 진단을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스마트폰, 웨어러블, 로봇 등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정부의 역할이 큰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원격의료 논란만 수년째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 세계 1위다. 앞으로 10년 후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된다. 이미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데, 지금보다 노인 인구가 50%나 늘어난다는 의미다. 65세 이상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수를 보자. 세계적으론, 1950년에 12명이었는데 지금은 8명이고, 2050년에는 4명이다. 우리나라는, 2018년이면 5명이 되고, 저출산 기조가 지속되면 머지않아 2~3명이 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지금도 심각한 세대갈등이 더욱 격화될 수 있다.

고령화의 심각성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고령화에 대비하는 정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심각성을 몰라서라기보다는, 너무 문제가 거대하여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서다. 고령화는 아무래도 미래의 문제라서, 당장의 현안들을 수습하느라 여력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대책이 없어도 너무 없다.

고령화에 완벽하게 대비할 수 있는 정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택, 식량, 금융, 교통, 교육, 의료 등등 사실상 모든 분야가 그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대응이 필요한 분야가 의료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터다. 한국의료는 지금까지 놀라운 성과를 거뒀지만, 앞으로는 어렵다. 행위별수가제와 공급자 쥐어짜기로는 더 못 버틴다. 뭐라도 좀 시도해 보자. 파격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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