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의 모노태스킹

치과의사에게도 프락셀 레이저 시술을 허용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판결의 핵심 이유는 “교과서에 있다”와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다”이다. 보톡스 시술 관련 판결과 같은 맥락이다.


나는 평소 대법원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소위 ‘지도층’에 속하는 집단 중에서 그래도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곳이라 생각해 왔다.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기대치를 충분히 충족시키지도 못했지만, 대법원 판결은 대체로 수긍할 수 있었다. 하급심의 거지같은 판결을 대법원이 바로잡아주는 경우가 흔했고, 여론이 나뉘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이상과 현실을 적절히 조율하는 현명함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았다.

법학자 레오 카츠가 <법은 왜 부조리한가>에서 지적했듯이, “법률을 제정할 때는 실용적 이득을 내주고 공정성을 확보하거나, 그 반대로 공정성을 조금 포기하고 실용적 이득을 취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대법원의 판결은 때로는 공정성에 조금 더 치중하고 때로는 실용적 이득에 조금 더 치중하면서 사회 발전과 갈등의 조정에 기여해 왔다.

하지만 이번 프락셀 판결은 매우 실망스럽다. 이건 공정성에 치중한 판결로 보이지도 않고 실용적 이득에 치중한 판결로 읽히지도 않는다. 치과의사에게 의사와 같은 권한을 주는 것은 면허 제도의 근본 취지를 고려할 때 ‘공정함’과 거리가 멀다.

전문가를 인정하는 것은 전문가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비전문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미 미용 및 성형 분야에 너무 많은 의사들이 뛰어드는 것이 문제인 우리 사회에서, 피부 미용 서비스의 공급을 더 늘림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실용적 이득’도 별로 없어 보인다. 돈 되는 분야로 진출하고자 하는 일부 치과의사들과 관련 기기 회사를 제외하고 누가 이득을 보는가.

판결 이유를 다시 보자. 우선 “교과서에 있다”는 것은 타당한 이유로 보기 어렵다. 법학 교과서에 모든 내용이 다 있는데 왜 법조인은 특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만 할 수 있는가. 간호학 교과서나 한의학 교과서 개정판에 레이저 관련 내용을 넣기만 하면 간호사나 한의사도 이를 사용할 수 있는가. 영어 교과서를 그렇게 많이 보았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영어를 못하는가. 거의 주술적 행위를 하는 일부 한의사들이 “동의보감이나 황제내경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었을 때만큼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두 번째 이유는 “부작용이 적다”는 것인데, 이 또한 타당한 이유가 못 된다. 부작용이 많고 적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인간이 개발해 놓은 것이 현재의 규제 시스템이다. 식약처에서 “레이저 시술은 꼭 피부과 전문의에게 받으라”고 권고했던 것은 대법관들보다 멍청해서 그리했던 것이 아니다. 치과의사 중에도 열심히 공부하여 피부과 전문의 못지않은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고, 피부과 전문의 중에도 수준 이하의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예외를 일반화시켜 버리면 면허 제도는 의미가 없어진다. 레이저 시술은 비급여 영역이니 문제가 덜할지 모르지만, 이런 영역 파괴가 건강보험 영역에서까지 일어날 경우의 역작용은 상상이나 해 보았나.

의사들은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서 이런 메시지를 환청처럼 듣는다. “이 나라는 의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터이니, 알아서 생존의 길을 모색하라. 전문 과목에 연연하지 말고 다들 프락셀 기계나 들여놓아라.”

판결 요지 중에서 그나마 눈여겨 볼 부분은 “치과의사의 안면부 시술이 전면 허용된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부분이다.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말처럼 들리는 이 말의 행간에 숨은 의미가 “법률을 정비하라”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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