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젠 필립 타가리 부회장, 제약바이오기업 발굴 위해 방한
"韓 바이오테크, 다른 국가 등에 뒤지지 않아…바스젠바이오 인상적" 
"파트너사로서 피칭 위해서는 의학계나 업계 요구 제대로 파악해야"

"한국 기업들의 과학 퀄리티(quality)는 다른 국가에 뒤지지 앞는다. 다만, 의학계나 바이오테크놀로지 업계가 필요로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이해도는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다."

이달 4일 개최된 '제2회 KHIDI-AMGEN 사이언스 아카데미: 바이오데이(이하 바이오데이)' 참석 차 방한한 암젠 글로벌 연구개발부 필립 타가리(Philip Tagari) 부회장은 한국 바이오테크 기업들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암젠코리아는 혁신 기술 및 역량을 갖춘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의 발굴 및 협력을 목적으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KHIDI-AMGEN 사이언스 아카데미: 피칭데이'(이하 피칭데이), '바이오데이'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암젠은 글로벌 제약기업 중에서도 특히 연구개발(R&D)과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 활발한 기업으로 꼽히는데, 타가리 부회장은 이러한 암젠의 연구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책임자다.

이에 타가리 회장에게 오픈이노베이션 파트너로서 국내 바이오테크 기업의 가능성과 암젠의 연구개발 현황 및 계획에 대해 들었다.

암젠 글로벌 연구개발부 필립 타가리(Philip Tagari) 부회장
암젠 글로벌 연구개발부 필립 타가리(Philip Tagari) 부회장

-방한 목적은.

'바이오데이'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했다. 바이오데이는 한국 과학계 및 의료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현재 암젠이 진행 중인 기초 과학 연구 등을 소개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자, 한국의 혁신적인 바이오 벤처 기업들을 만나 오픈이노베이션 기회를 모색하고 네트워킹을 통해 서로 간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행사다. 또 지난 9월에 진행한 '피칭데이'에서 선발된 한국 기업 3곳을 만나, 바이오테크놀로지 관련 혁신을 지원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암젠의 R&D 책임자로서 협력 파트너를 선택할 때 고려하는 기준이 있나.

잠재적인 협업 대상자, 파트너와의 투자 기회를 모색할 때 가장 크게 신경 쓰는 것은 그 회사가 가지고 있는 '과학 수준(Quality of Science)'이다. 아시다시피 암젠은 생명과학에 기반한 회사이기에, 신약을 연구 개발하는 접근 방법에서도 '생명과학을 최우선(Biology First)'하는 전략을 중심에 두고 있다. 이에 기반해 회사의 기초 과학적인 토대가 얼마나 탄탄한지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잣대를 갖고 평가 분석하는 편이다.

그 다음으로는 종양학, 심혈관질환, 염증성질환 등 암젠이 현재 주력하고 있는 치료 분야와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 살펴보고, 현재가 아니더라도 특정 시점에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와 잘 맞는지도 고려한다. 또는 그들이 보유한 기술 및 연구가 지난 몇 년간 얼마나, 어떠한 방식으로 발전을 해왔는지를 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경영진이 얼마나 탄탄하고 업무에 열의를 가지고 있는지도 살펴본다.

-지난 9월 '피칭데이'를 통해 국내 바이오벤처사를 선발하기도 했다. 심사를 직접 했다고 들었는데, 한국 스타트업들의 수준과 역량을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서 진행한 '피칭데이'와 비슷한 행사를 전세계에서 진행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벤쿠버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메사추세츠의 캠브릿지, 그리고 대만, 싱가폴 등에서도 진행한 바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피칭데이'를 통해 만난 한국 기업들의 과학 퀄리티는 앞서 언급한 국가와 도시들에서 만난 회사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다만, 의학계나 바이오테크놀로지 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이해도는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아마 한국 바이오벤처들이 의학계 혹은 업계의 바이오파마 회사들과의 교류 및 노출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유망한 제약바이오회사들이 바이오데이, 피칭데이와 같은 행사를 기회로 삼아 글로벌 제약사와 다양한 교류를 하면서 '의학계나 업계가 어떤 니즈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기대하는 혁신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좀 더 많이 알아보길 권한다.

이번에 피칭데이를 진행하면서 본선에 오른 기업들을 대상으로 사전에 멘토링을 진행했는데, 바로 이런 부분에서 다른 국가들과 차이를 보였다. 한국 기업 종사자들은 상당히 격식을 갖추고 있었고, 과학보다는 비즈니스에 좀 더 초점을 많이 맞추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멘토링을 통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양질의 과학 기술과 함께, 의학계나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내용에 초점을 둔 자료로 피칭데이를 진행할 수 있도록 코칭했다. 참고로, 외국 기업과의 협업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이런 내용들이다.

- 혹 '피칭데이'를 진행하며 기억에 남는 한국 업체가 있었다면,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는지 궁금하다.

흥미로운 기술을 소개했던 회사가 있다. '바스젠바이오'라는 회사인데, 최첨단 유전학 데이터 및 한국의 전자의무기록(Electronic Medical Record, EMR) 데이터 분석을 하는 회사로, 앞서 언급한 과학의 퀄리티와 분석 기술이 상당히 탄탄해 피칭데이 우승자 중 한 팀이 됐다.

바스젠바이오를 만나면서 암젠 유전학 연구의 수장이면서 현존하는 최고의 유전학자 중 한 명인 카우리 스테판슨(Kári Stefánsson) 박사가 떠올랐다. 카우리 스테판슨 박사는 암젠의 자회사인 디코드 제네틱스(deCODE Genetics)의 창립자로, 디코드 제네틱스 또한 유전학을 기반으로 질병의 표적을 파악하고 검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피칭데이를 통해 한국 바이오벤처들의 기술 또한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인간 유전학 관련 바이오 벤처회사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정도가 된다고 느꼈다.

-암젠의 성공적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를 소개한다면.

'이베니티(성분명 로모소주맙)'를 들 수 있다. 이베니티는 남아공에 거주하던 의사와 영국에 있는 작은 바이오 테크놀로지 회사였던 브리티쉬 바이오텍(British Biotech), 그리고 암젠의 협력을 통해 탄생했다.

당시 남아공 의사가 지역 사회에서 특정 질환이 계속 발생하는 상황을 인지하고 이에 대해 영국의 브리티쉬 바이오텍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질환 발병 이유가 '스클레로스틴(Sclerostin)'이라는 단백질의 변이 때문임을 찾게 됐다. 이를 치료하기 위한 약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스클레로스틴 단백질을 만들어야 했는데, 이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회사는 당시 암젠이 유일했다. 결국 암젠은 해당 단백질을 만들어냈고, 오늘날 '이베니티'라는 치료제로 제품했다. 오늘날 골다공증 치료에 있어 상당한 혁신을 가져온 '이베니티'는 이렇게 탄생했다.

-암젠 R&D 부서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본인이 개발에 가장 깊게 관여한 치료제는 무엇이었나.

암젠 글로벌 연구개발부 필립 타가리 부회장
암젠 글로벌 연구개발부 필립 타가리 부회장

올해 한국에서도 허가받은 '루마크라스(성분명 소토라십)'다. 루마크라스는 암젠의 R&D 부서에서 여러 동료들과 함께 10여 년에 걸쳐 연구를 진행한 물질이다. 어떻게 보면 암젠에서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빠르게 연구 개발이 추진된 제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개발 초기에 후보물질을 발견하고 연구하다가 '이 물질은 정말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선 순간, 연구진 모두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환자들에게 치료제로 선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후 임상을 통해 비소세포폐암에서 혁신적인 데이터를 보이면서, 우리의 확신이 맞았음을 확인했던 순간의 기쁨을 잊을 수 없다.

지난주 뉴욕에서 루마크라스가 2022년도 최고 의약품으로 선정돼 '프리갈리엥 상(Prix Galien Award)'을 수상하했다. 프리갈리엥 상은 제약계에 있어 노벨상에 비견할 만하기에 매우 뜻깊었다.

-향후 가장 기대하고 있는 파이프라인 혹은 후보물질은.

가장 유망하게 생각하는 파이프라인 중 하나는 비만 관련 약물이다. 향후 암젠에서 비만 및 심혈관계 질환 관련한 다양한 치료제가 나올 것을 기대해도 좋다.

또 다른 하나는, 암젠의 'BiTE(Bispecific T Cell Engager)'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항암치료제다. BiTE 기술을 통해 폐암이나 전립선암을 표적하는 고형암 치료제를 개발 중인데, 현재까지 놀라울 정도의 유효성과 매우 높은 안전성 프로파일을 보이는 물질들이 있어 기대가 크다.

암젠은 염증 분야에서도 상당히 혁신적인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있는데, 자가면역 체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개발 중인 치료제들이 있다. 단순하게 환자들이 겪는 증상만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의 흐트러진 면역 체계 질서를 바르게 잡아주는 작용을 하는 약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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