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D종합병원, 개원 3개월여 만에 코호트 격리
메르스 여파로 환자 급감하면서 극심한 자금난
의료기기업체에 자금 빌리면서 경영권도 넘어가
대법원 “업체가 병원 지배·관리 주체” 사무장병원 의심

대전 지역에 D종합병원을 개원한 A원장은 메르스 사태 이후 극심한 자금난을 겪으면서 한 의료기기업체로부터 돈을 빌렸다. 그리고 그 이후 경영권까지 넘어가는 상황을 겪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대전 지역에 D종합병원을 개원한 A원장은 메르스 사태 이후 극심한 자금난을 겪으면서 한 의료기기업체로부터 돈을 빌렸다. 그리고 그 이후 경영권까지 넘어가는 상황을 겪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거래하던 의료기기업체에서 병원 운영 자금을 빌렸다가 병원 경영권까지 내놓아야 했던 한 원장이 ‘구사일생’으로 그 자리를 지키게 됐다.

A원장은 지난 2015년 3월 대전 지역에 200병상 규모인 D종합병원을 개원했다. 하지만 개원한 지 3개월 만에 ‘메르스(MERS)’ 환자 발생으로 병원 전체가 ‘코호트 격리’됐다. 그리고 29일 만에 일반 진료를 재개하고 정상화를 꾀했다.

하지만 메르스로 인한 위기는 격리 해제 이후 찾아왔다. 메르스 여파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급감했고 정부 지원금도 끊기자 자금난이 심각해졌다.

A원장은 병원 운영 자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A원장은 지난 2016년 평소 거래하던 의료기기업체 H사로부터 30억원을 빌렸다. 그 과정에서 H사가 지정한 사람에게 병원 부지와 건물, 일체 시설, 운영권 등을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양도는 H사가 지정하거나 설립하는 의료법인에 A원장이 출연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후 의대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의사 B씨가 등장한다. B씨는 H사 대표이사의 조카로 지난 2016년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두달간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그만둔 상태였다. A원장은 지난 2016년 11월 H사가 지정한 의사 B씨에게 의료장비 등 병원 시설 일체를 11억원에 양도하고 일정 기간 후 병원 개설자를 B씨로 변경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자산양수도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그해 D종합병원에는 H사 대표이사의 지인이 기획실장으로 근무하며 행정 업무처리하고 있었다.

A원장 측은 “570억원으로 평가된 D종합병원 부동산을 410억원에 매입하면서 A원장의 채무와 대위변제했다”며 “나중에 D종합병원을 의료법인으로 전환할 때 정확하게 정산하자는 H사 대표이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고 주장했다.

의사 B씨는 이듬해인 2017년 6월경 자산양수도계약에 따라 A원장에게 병원 개설자를 자신으로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다. A원장이 이를 거절하자 그해 7월 B씨는 공동 개설자로 이름을 올렸다.

뒤늦게 계약 등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A원장은 지난 2018년 5월 대전지방검찰청에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검찰은 무혐의라고 했다. 이에 A원장은 지난 2019년 1월 H사 대표이사 등을 의료인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제33조 2항을 위반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도 D종합병원의 사무장병원 의혹에 대해서는 무혐의로 봤다.

그러자 이번엔 B씨가 A원장을 대상으로 병원 개설자 변경 의무를 이행하라며 지난 2019년 5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의 핵심도 사무장병원 여부였다. 1심과 2심은 모두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의사인 B씨가 자산양수도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이며 H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의료법 제33조 2항 위반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의사인 B씨는 명의인에 가깝고 D종합병원을 운영하는 실질적인 주체는 비의료인인 H사 대표이사로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D종합병원이 현재 사무장병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4월 14일 이같은 이유로 원심 판단을 수긍하기 어렵다며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B씨가 일시적으로 병원 개설자 지위를 가질 의도로 자산양수도계약 등을 체결했다는 사정을 들어 병원 운영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려는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비의료인이 형식적으로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을 가장하기 위해 내세우는 명의인에 가까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계약 당사자가 누구인지에 관한 의사표시 해석을 통해 양도대금 11억원의 자산양수도계약 등의 당사자는 B씨로 봐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병원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려는 주체가 원고라고 볼 수도 없다”며 “오히려 병원의 핵심 자산인 부지와 건물을 A원장으로부터 410억원에 매수해 그 관계 회사가 소유권을 취득하도록 하고 병원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주요 직책인 기획실장 자리에 사람을 보낸 H사나 그 대표이사가 병원 운영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는 주체라고 볼 여지가 크다”고 했다.

대법원은 “H사 대표이사들과 B씨의 관계, 의료인으로서 B씨의 경력 등을 고려할 때 B씨가 H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을 가장하기 위한 의료인 고용이나 명의대여와 달리 평가할 것도 아니다”라고도 했다.

대법원은 “병원 시설과 인력 충원·관리를 실제 누가 주도적으로 처리하는지, B씨가 자산양수도계약의 양도대금을 마련한 방법을 비롯해 누가 병원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지와 그 운영 성과는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등까지 충분히 심리했어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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