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반발 기류 여전…충북대교수회 “삭발이라도 해야 하나”
충북대병원, ‘카이스트 청주 캠퍼스 검토 의견’ 내며 적극 대응

포항공대(POSTECH, 포스텍)보다 먼저 의사과학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의과대학 설립 신호탄을 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카이스트)이 여전히 지역 학계와 대립하고 있다.

충북대 교수회에서는 ‘삭발이라도 해야 하나’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으며 충북대병원은 ‘카이스트 청주 캠퍼스 타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며 카이스트 청주 캠퍼스 설립 부당성을 적극 알리고 있다.

특히 이들은 의대가 없는 경상북도에 포스텍이 의대를 설립하는 것과 이미 국립의대가 있는 청주에 카이스트가 의대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같은 의대 설립 추진이라도 본질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오송첨단복합단지.
오송첨단복합단지.

충북도와 카이스트, 청주시는 지난 3월 22일 ‘KAIST 오송 바이오메디컬 캠퍼스타운 조성’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카이스트 오송캠퍼스는 오송 제3생명과학 국가산업단지 내 약 1.1㎢ 부지(약 33만평 규모)에 바이오메디컬 분야를 특화한 대학(원)과 병원, 연구소, 창업시설과 상업시설 및 공원 등이 연계한 캠퍼스타운을 조성하는 것이 골자다.

부지는 충북도와 청주시가 LH로부터 매입해 KAIST에 ‘무상’ 양여하고 건축은 국가 정책 반영을 통한 국비 확보와 복합 개발 등을 통해 조달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치료기술 개발과 의료서비스를 위해 첨단 바이오 메디컬 전문인력 육성 ▲오창 방사광가속기와 연계한 방사선의학 육성 ▲국제적 의학연구센터 유치 ▲KAIST와 연계한 300병상 규모 글로벌 연구병원과 800병상 규모 중부권난치병임상병원 유치 등이다.

특히 충북도, 카이스트, 청주시는 협약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추진을 위해 가장 먼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당시 충북 공약인 오송 글로벌 바이오 밸리 조성과 연계한 국정과제 반영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계획에 충북도에 위치한 국립의대인 충북의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지역 학계가 집단반발했다. 충북권에 이미 충북의대가 있고 충북대병원도 있는 상황에서 카이스트 의대와 병원 설립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충북의대 한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계획이 발표된 후 지역 학계에서는 계속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지난 3월 이후 카이스트가 별다른 계획을 발표하지 않아) 좀 애매한 상황이지만 지역에서 (카이스트 의대와 병원 설립 필요성을 알리는) 언론플레이가 계속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회 내에서는 (현 상황을 더 알리기 위해) 삭발이라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며 “지역에 이미 국립의대와 병원이 있는 상황에서 카이스트라는 ‘간판’을 달고 새 의대와 병원이 생기는 것은 지역균형발전에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지역 학계는 단순히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카이스트가 의대 설립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의사과학자’ 양성을 충북의대가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근거자료도 만들었다.

본지가 입수한 충북대병원의 ‘카이스트 오송 바이오메디컬 캠퍼스 타운 조성’ 검토의견을 보면 충북대병원은 ‘의대 정원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유관단체들과의 충분한 의사소통과 중장기적 정책비전 제시 등이 부재한 상황에서 사업 추진은 사회적‧지역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역거점대학의 의학‧공학‧생명공학 연구비 상당수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재원인 상황에서 경쟁적으로 의대가 설립될 경우 해당 분야 연구비 상당수가 과기 특성화 대학으로 집중돼 지역거점국립대 연구력 위축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카이스트 등 특정 학교를 중심으로 한 의사과학자 양성 보다는) 의대 졸업자 중 극소수만 기초의학을 선택하는 상황에 대한 시스템 개선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카이스트 의대를 통해 의사과학자에 대해 일정 기간 임상진출을 제한하는 법적 규제를 만들더라도 ▲개인에 대한 연구의지 강제가 불가능하고 ▲의사인력 양성에 경험이 전무한 카이스트에서 어느 정도 수준 연구직 의사를 배출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카이스트 의대 설립과 함께 추진되는 오송 1,100병상 규모 병원 추진 타당성도 검토했다. 오송 병원의 예상진료권을 오송을 중심으로 거리와 도로교통 상황을 고려해 대전‧세종‧충남 천안 지역으로 예상했다.

이같은 오송 예상진료권 내 주요 의료기관은 충북대병원을 포함해 상급종합병원만 4개소 3,984병상, 종합병원만 청주시 6개‧대전광역시 2개‧세종특별자치시 1개 등 9개소 4,478병상으로 총 13개소 8,462병상에 달한다.

충북대병원은 이런 상황에 카이스트 의대 병원까지 설립되면 ▲진료권 중첩에 다른 재원 중복 투입 ▲1,100병상 운영을 위해 필요한 교원‧전문의‧간호사 등 의료 인력 확보 문제 ▲카이스트에 임상의료 인력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한정된 예산 등을 고려했을 때 의료기관 등이 충분한 오송보다 단양, 충주, 제천, 음성, 괴산 등 충북북부 지역 의료기관 설치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문제를 고려해 충북대병원은 “국내 최고 연구역량을 보유한 카이스트가 오송에 바이오메디컬 캠퍼스타운을 조성하고 지역 대학 간 협력을 통한 공동연구를 추진하는 것에는 적극 찬성한다”며 “하지만 1,100병상 병원을 설립하는 것은 카이스트 설립 목적과 부합하지 않고 지역 대학과 의료기관 등과 갈등 요소가 있다”고 밝혔다.

충북대병원은 “병원과 의대 건립에 대한 주장이 공식화 됐을 때 지역대학, 병원, 의료단체들의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으며, 공동 연구와 협력이라는 좋은 취지의 지역발전 공약이 카이스트 의대 설치를 위한 단계라고 인식됐을 때 사업 추진 자체의 좌초와 지연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역 학계 반발이 거센 가운데 카이스트는 오송 캠퍼스 추진 의지는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카이스트 경영전략팀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의지가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다”라며 “반대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고 독단적으로 밀고 나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카이스트는 (오송 분원에) 의대를 설립하고 직영 병원을 건립하는 계획은 없다. 다른 대학이나 병원과 연계해 캠퍼스 내 병원을 유치하고 공동 연구를 할 계획은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포스텍 등에서도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의대 설립을 추진 중인데 큰 반발이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만 두드려 맞는다는 느낌도 있다. 비판 여론이 있으니 잘 추스려서 협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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