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외래 임의 조작 피해액 16억원으로 추산…의사 15명도 연루
병원 내부 관계자 “간호사들, 의사 동의 하에 ‘가예약’ 할 수밖에 없어”

동국대일산병원 간호사 22명과 의사 15명이 지난 10년간 외래 진료 예약 시스템을 임의적으로 조작해온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병원 측은 지난 10년간 임의 조작으로 인한 피해액을 16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병원 측은 외래 진료 예약 시스템 조작 건수가 많았던 간호사 4명에게는 권고사직을, 나머지 간호사들에게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하지만 간호사 22명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외래 진료 예약 시스템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간호사 개인에게 전가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사실은 병원이 지난해 11월 외래 진료 예약 시스템이 조작된 정황을 포착하고, 10년치 내역을 전수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환자 1명당 5분 단위의 ‘슬롯’(slot)으로 외래 진료 예약이 가능하게끔 설정됐는데, 외래 간호사들이 편히 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가족이나 지인 등의 명의를 차용해 ‘거짓 예약’을 해왔다는 게 병원 측 주장이다. 병원 측이 추정한 손해배상액은 16억원에 달하고 있다.

병원 측은 오랜 기간 동안 외래 진료를 임의적으로 예약한 후 취소한 정황이 특정 외래 부서가 아닌 외래 전체 부서에서 발견되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근절을 위한 특단의 대책마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외래 진료 예약 시스템 임의 조작한 것으로 드러난 간호사 22명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징계 처분을 예고했다. 특히 간호사 22명 중 조작 건수가 많았던 4명에게는 권고사직을 제안했다.

임의 조작에 연루된 이들 중에는 의사 15명도 포함됐지만, 의사 15명은 손해배상 청구 없이 징계 처분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간호사들은 외래 진료 예약을 조작한 사실만 적시할 게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도 살펴봐 달라고 호소했다.

담당 의사의 동의 없이는 진료 일정을 독단적으로 변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5분 마다 촘촘하게 짜인 비효율적인 외래 진료 예약 시스템도 이 같은 사태의 원인이 됐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동국대일산병원 한 간호사는 최근 커뮤니티를 통해 “특정 의사들은 진료 도중 진료실을 종종 이탈하고 내·외부 회의로 급작스럽게 진료 종료 시간을 당겨달라고 요청하거나 개인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진료를 막아 달라고 요청하곤 한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한 “‘일정변경 요청서’라는 공식적 절차가 있었지만 담당의와 진료과장 서명이 필요해 당일 절차를 밟기 힘든 부분이 있었고 ‘예약 초과’로 진료 세션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은 있었지만 실제 세션 예약이 전부 들어가 있지 않으면 막을 수도 없다. ‘진료 지연’을 사유로 진료 세션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도 없다”고 했다.

그는 “교수들의 부탁이 있었고 병원 시스템은 현실 반영을 하지 않았으며 지속적으로 진료 지연과 관련된 민원으로 힘들었기에 외래 간호사들은 의사의 동의하에 ‘가예약’을 통해 진료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외래 진료 예약 시스템을 임의적으로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간호사들은 절차를 무시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원내 규정에 따라 징계 처분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철회해 달라는 입장이다.

병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실제 5분마다 환자 진료를 보기는 힘들다"며 "환자를 보고 상담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그렇다보니 (예약) 입력과 취소를 반복하는 것들이 관행으로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징계위원회에서 잘잘못을 따지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간호사들도 (조작을 한)행위는 사실이므로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문제는 인재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를 시스템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억대가 넘는 비용을 감당하라고만 하면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 수도 있을 것"이라며 "(간호사들이)병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병원에서도 곧 입장을 밝히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편, 간호사 4명 중 17년차 간호사인 A씨는 반복적으로 슬롯을 막고 취소하는 과정에서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가족의 명의를 차용한 사실이 드러나 해당 가족이 징계 압박을 받자 불안감과 우울감으로 지난 21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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