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차원 거버넌스 구축, 전주기 지원 체계 마련 강조
"의사과학자가 독립된 연구자로 성장할 훈련 과정 필요"
양성 과정 효율화·연구중심병원 설립 등 연구 환경 조성
병원과 대학 넘어 산업계 진출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해야

지난 30일 국회에서 진행된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방안' 대토론회에서 의학계와 교육계, 산업계 관계자들이 의사과학자 양성 활성화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지난 30일 국회에서 진행된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방안' 대토론회에서 의학계와 교육계, 산업계 관계자들이 의사과학자 양성 활성화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국내 기초의학 연구 환경에서 의사과학자가 한 사람의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의료·교육·산업 전 분야에 걸친 전주기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30일 김성주·조승래·신현영·이용빈 의원이 주최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 바이오의료산업을 선도할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방안’ 토론회에서는 의학계와 교육계, 산업계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의사과학자 양성 방안을 모색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한희철 이사장은 주제발표에서 정부 차원에서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의사과학자 전주기 지원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일본이 의사과학자 양성과 R&D 사업을 일원화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등 관련 부처로 사업이 분열돼 연속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한 이사장은 "미국은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 일본은 의료연구개발기구(Agency for Medical Research and Development, AMED)가 의사과학자 양성은 물론 관련 연구 사업까지 모두 책임지고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지금 의학 연구의 사령탑이 없다. 통합과 거버넌스 구축을 절실하게 느낀다"고 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김하일 교수는 의사과학자들의 직업 불안전성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기초과학에 투자는 많이 하는데 바이오메디컬 분야 경쟁력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과학자들이 독립적인 과학자로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라면서 "의사가 전공의를 마치고 전문의 자격을 땄다고 해서 바로 수술할 수 없듯이 의사과학자도 일정 이상 트레이닝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의사과학자들이 졸업 후 병원에 돌아가 펠로우를 하고 진료 교수 과정을 밟으면서 더 이상 논문을 내지 못하고 있다. 연구할 시간이 없고 공간이 없으니 아무리 지원해도 연구가 어렵다"며 "직업적 불안전성을 해결해야 한다. 선배들이 후배 의사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과학자가 독립된 연구자로 설 수 있는 기반 필요해

이어진 토론에서도 의사과학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마련이 강조됐다.

경희의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김성수 교수는 "미국은 펠로우 과정을 병행하면서 일주일 중 하루만 임상을 보고 나머지는 다 연구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서 "펠로우 과정과 연계해서 의사과학자 과정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또 “신약이나 의료기기처럼 신기술 개발이 중요하지만 우선 연구비 지원 제도 같은 실질적인 도움이 선행해야 한다"며 "현장에서 의사과학자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 충분한 재원을 지원해 전체 풀을 넓혔을 때 신약을 개발하고 IT기업에 진출하는 인재가 나온다"고 했다.

광주과학기술원 의생명공학과 오창명 교수는 의사과학자가 연구와 임상 두 분야에서 충분히 훈련할 수 있는 연구중심병원 설립을 제안했다.

오 교수는 "의사과학자가 현재 병원에서 트레이닝하며 환자가 기대하는 의료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KAIST 같은 기관에서 난치병처럼 '연구하는 의사'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을 만들었으면 한다"면서 "연구자로서, 임상의사로서 트레이닝할 수 있고 이들이 독립적인 연구자, 임상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기다려 줄 수 있는 새로운 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0일 토론회 플로우 토론 진행 광경.
30일 토론회 플로우 토론 진행 광경.

한편, 한국의학재단 의약학단장을 맡고 있는 서울의대 약리학교실 박종완 교수는 임상의사보다 낮은 보상이 기초의학 진로를 가로막는다고 했다.

박 교수는 "과정이 좋고 시스템이 좋아도 결국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 보여지는 결과다. 제가 교수로 30년 넘게 재직했는데 연봉은 1억원대다. 이것도 의대 기초의학 연구교수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면서 "이 정도 보수에 교육, 연구, 학교 행정까지 도맡아야 한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아는 학생들이 기초의학자를 선택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길고 힘든 과정을 거쳐 의사과학자가 된 결과로 돌아오는 보상이 이 정도인데 아무리 기초의학과 융합학문 중요성을 강조한들 지원자가 나오기 어렵다"며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지 학생들에게 왜 연구를 선택하지 않느냐, 재능을 발휘해보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의사과학자의 산업계 진출이 활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바이오산업계의 기초의학자 수요가 높은 만큼 대학과 병원 외 진로를 도와야 한다는 것.

KAIST 의과학대학원 주영석 교수는 "임상의사의 보수가 높은 것은 병원이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대의 최대 산업이 병원이어서는 안 된다. 이를 뛰어넘는 진단기업, 신약기업을 만들어 가야 한다"면서 "지금 젊은 의사와 의대생에게 병원 산업 외에도 또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은 너무 임상의사, 병원이라는 틀에만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메디사피엔스 강상구 대표는 "기초의학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정작 산업계는 이런 연구자 구인난에 빠졌다. 인재들이 병원 바깥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바이오 분야는 정말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 병원과 대학에서 연구하는 것 외에도 많은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졌으면 한다"고 했다.

의사과학자가 산업계에서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학부 과정부터 관련 교육이 준비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나군호 네이버헬스케어연구소장은 "미국은 빅데이터 기반으로 공공의료분야를 효율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영역도 가능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국내 의대는 학생들에게 데이터 사이언스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어려운 환경"이라면서 "의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기계공학, 엔지니어링, 데이터 사이언스를 융합해 산업계가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커리큘럼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도 의사과학자 양성 정책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면서 연구개발에 역점을 두는 환경 조성에 병원도 나서주길 요청했다.

과기부 이병희 생명기술과장은 "병원이 연구개발기업으로 전환되고 기술 개발을 통해 자연스럽게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현재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본다. 정부가 연구중심병원으로 시설과 장비를 지원하고 R&D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수익성 보완 차원에서 임시방편 정도인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 과장은 "의사과학자 개개인 차원의 인력 양성과 함께 연구와 수익을 보장하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정부가 바이오의료산업 육성 차원에서 임시방편을 벗어나야 겠지만 병원 차원에서도 인식전환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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