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회장 후보 기호 2번 여한솔(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대한민국 의료체계상 대부분 진료과에서 PA(Physician Assistant)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PA 제도와 질적으로 다르기에 UA(Unlicensed Assistant)라고 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미국 PA 제도는 정부가 체계적으로 인력을 가르치고 면허로 보장하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훈련 되지 않고 의사 인력이 필요한 곳에 투입되는 우리나라 PA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일부 병원의 전공의 채용공고에는 'UA가 어떤 일을 하기 때문에 전공의가 자유롭게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올라온다. 이같은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왜곡된 의료정책 하나가 우리의 병원 생활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게 아닌가 싶어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전공의들이 UA 고용으로 '나의 몸은 편해질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고 일부분 공감한다. 수련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고 입원전담전문의나 전임의가 부족한 경우 그나마 UA가 있어야 한숨 돌릴 수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불가피한 제도라고도 한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같은 조치가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자가 의사에게 치료받지 못하고 병원 측은 이를 환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한다. UA가 교수 혹은 전공의의 ID로 대리처방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이유다.

환자가 너무 많아 제대로 쉴 수 없다고 하면 여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환자가 많으니 '의사들을 더 뽑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미봉책이기에 전공의들이 파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것이다. 하지만 망가져 있는 대한민국 의료전달체계로 인해 이 상황을 반전시키기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시 한번 앞으로 돌아가 보자. 전공의들은 왜 이렇게 힘든 환경에서 수련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첫째, 너무 많은 환자를 상대하고 있기에 그렇다. 둘째, 전공의가 하지 않아도 되는, 환자 진료와 무관한 잡무를 모두 도맡아 하고 있다.

대전협은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전공의 1인당 환자 수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대전협 의견에 동의해 미국처럼 전공의 담당 환자 수를 제한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는 교수들도 있었다. 이것을 제도화하기 쉽지 않으니 입원전담전문의 제도와 같은 대안이 현재 보건복지부 본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전공의 업무가 많다고 해서 무면허 인력이 그 일을 대신하게 하는 불법을 저지르면 안된다. 우리의 아래를 음지로 만들 게 아니라 위를 보고 '이런 제도가 문제가 있다. 개선을 해달라'고 양지로 끌어올려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이를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주도적으로 외쳐야 하고 의협과 공조해 문제점을 더욱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의료전달체계를 다시 바로잡기 위한 노력에 의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입원전담전문의도 더 채용하고 수가에 대한 부분도 지적해 더 많은 전문의가 수련병원에서 일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전공의들이 질 높은 수련환경 속에서 환자 하나하나를 대할 때 더 세밀하고 꼼꼼하게 보며 양질의 전문의로 성장해나갈 수 있다.

물론 쉬운 싸움이 아닐 것이고 한 번에 모든 것을 뒤집기는 어렵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을 우리 스스로가 하지 않고 잠깐의 달콤함 때문에 방관한다면 결과는 어떠할지 불 보듯 뻔하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 울타리 밖으로 나갔을 때 전문의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무면허 의료인력에게 지시받는 인턴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수련환경이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후배 의사들이라도 양질의 환경에서 수련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전공의법 연착륙을 위해 선배 의사들이 4년차 때 당직근무를 더 해가면서 후배들을 위해 헌신했다. 저 또한 그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후배 의사들을 위해 희생하며 노력하고 싶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오고 있었는지, 어떻게 개선해나가야 할 것인지를 되짚고 다시는 이런 잘못을 후배, 동료 의사들에게 대물림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진일보했음을 보여줍자. 다시는 정부 정책에 마냥 순응하는 바보들이 아님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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