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원 변호사

4대 의료정책과 관련한 근자의 사태가 결국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발동 및 일부 전공의들에 대한 형사고발로 인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해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입지가 위축될 수 있는 현 상황에서, 정부는 이 시기를 틈타 계속해서 이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사회뉴스에 신경 쓸 겨를 없이 밤낮을 잊고 응급현장에서 오로지 환자만을 바라보던 전공의와 전임의들이, 사직서까지 제출해 가며 정부의 이번 4대 의료정책을 재고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의사가 국민 건강을 담보로 위협하고 있다며 오히려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최재원 변호사
최재원 변호사

그리고 이런 정부의 대응에 대해, 일반 국민들은 정부의 성급한 의료정책 도입과 이번 사태를 대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입장도 있지만, 의외로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비난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과거 의약분업 파동이 있은 지 20년이 지난 지금, 또 다시 의사들이 단체로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에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이나 의료시스템에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적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의대 정원확대나 공공의대 설립과 같은 설익은 정책으로는 비인기과의 의사부족 문제나 지역의사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인들과 간간히 이 사태 관해 얘기를 하다 보면, 의외로 본 사태의 본질이나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막연히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번 정부 정책의 문제점이나 의료계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국민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 의협이나 대전협의 과오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여론의 흐름을 의협의 입장대로 선회시키고 정부의 전향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의협이나 대전협의 대국민 홍보나 설득도 꾸준히 이루어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의 이번 8월 26일자 업무개시명령은 의료기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수도권 소재 수련병원에 근무 중인 전공의, 전임의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의료기관이 아닌 해당 의사 개인에 대한 행정제재와 형사처벌까지 가능하게 된 것에는, 과거 의약분업 이후 형성된 국민적 여론의 영향이 컸다. 의료기관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및 이에 대한 처벌규정은 1994년부터 존재해 왔으나, 의료인 개인에 대한 업무개시명령과 그 처벌규정은 의약분업 파동 이후 2001년경 일부 의원들에 의해 처음 발의된 후, 그 다음해인 2002년에 도입된 것이다. 게다가 당시 통과된 의료법에는 위와 같은 규정 외에도 의료인의 행위를 제한하거나 처벌하는 내용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 많았다. 그 이유는 당시 의약분업 파동으로 인해 상당수 국민들이 고통을 겪자 의료인들의 단체행동을 문제 삼는 여론이 강해졌고, 나아가 의료인들에 대한 추가적인 제재 필요성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당시 의료법이 개정되는 과정에서 개정안의 적정성 여부가 널리 공론화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의협이나 기타 의사단체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충분한 논의의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사 개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한 조문이 도입되면서도, 여론의 등쌀에 밀려 해당 법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의사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법률이 공론화 과정 없이 법제화되는 것은, 잠재적 처벌의 대상이 되는 개인이나 그 개인이 소속된 단체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도 투명하고 건강한 법률 제정의 과정이라 볼 수 없다. 의협은 지금이라도 관련 조문들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여러모로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지금의 의료파업 사태가 심각한 상황이긴 하, 종국엔 정부와 의협 간에 합의점을 찾음으로써 어찌됐든 해결은 될 것이다. 부디 그러한 합의점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충분히 설득력 있는 결론이길 바란다. 그런데 필자가 현 시점에서 걱정스러운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 사태 이후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관한 것이다.

과거 의약분업 파동 이후 상황을 떠올려 보면, 이번 사태 이후에 의료계에 대한 어떤 조치가 취해질지, 또 다시 어떤 규제가 새로이 입법화될 것인지 그것이 걱정스럽다. 기우에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과연 의료인에 대한 처벌규정이 더 강해지거나, 의료인의 집단행동에 대한 원천적인 봉쇄정책이 입법화될 가능성은 전혀 없는가? 지금과 같이 일당이 국회 의석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선, 당론에 따라 법률안 발의부터 본회의 통과까지의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협과 기타 의사단체가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향후 발생 가능한 문제점과 대응책을 사전에 고민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문제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대안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작금의 사태도 걱정이지만,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서도 미리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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