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중심' 병원을 가다②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


▲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는 2013년부터 환아들을 위한 ‘세브란스 테라피 독 체험’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김형진 기자

[청년의사 신문 정승원]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 때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이유는 서비스가 동선 등 소비자경험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즉 고객의 입장에서 서비스가 설계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소비자 경험은 병원에서 환자 경험(Patient Experience)라는 용어로 바뀌게 된다.

환자경험이란 말 그대로 환자가 병원에서 접하는 모든 상황들을 의미한다. 이를 제대로 반영해 서비스를 설계해야 모든 병원들이 외치고 있는 ‘환자중심병원’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국내 병원들 중에서도 서둘러 환자경험 서비스를 설계해 시행하고 있는 곳이 있다. 지난해 3월 출범한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다. 창의센터는 웨스틴조선호텔 업무지원상무였던 김진영 센터장을 영입하며 본격적인 서비스 디자인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설계된 디자인은 최근 개원한 연세암병원에서 빛을 발했다.

세브란스병원의 환자경험이란?

창의센터는 세브란스병원 소속이지만 연세의료원 전반의 혁신 업무를 담당한다. 의료원 소속보다는 병원 소속으로 있는 것이 현장에 더욱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창의센터가 설립될 때만 해도 연세의료원 내에는 환자경험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았다. 기존의 환자경험이라는 정의에 세브란스병원의 정신을 녹여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브란스병원의 환자 경험은 바로 ‘진심 어린 배려’다.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한 환자와 가족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가 눈에 보이는 부분은 물론 보이지 않는 부분에까지 구현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렇게 창의센터는 세브란스병원의 환자경험을 개념화했고, 더불어 세브란스 정신을 구체화 하는 데 힘쓰기 시작했다. 130년 역사 동안 지니고 있는 가치를 현실화하고 세브란스병원이 가진 100가지의 장점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이후에는 병원 내에 표준화 돼 있지 않는 부분들을 하나로 통일했다.

그 다음 단계로는 환자경험 적용의 대상과 범위를 정해야 했다. 기존의 의료서비스는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영역’에서 ‘친절함’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환자경험은 대상은 물론 범위와 개념도 기존보다 확대됐다. 환자는 ‘환자와 가족’으로, 진료영역 중심은 ‘환자와 가족이 병원에서 접하는 모든 결정적 순간(Moment of Truth)’으로, 친절함은 ‘쾌적함’의 영역으로 확대시켰다. 김진영 센터장은 “기존 고객만족(Customer satisfaction)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환자경험은 이를 더욱 넓은 범위로 확대시킨 것”이라며 “주차장에 들어설 때부터 출구를 통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환자와 그들의 가족이 접하는 모든 부분에 있어 친절하고 쾌적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병원 내 있는 카페의 커피 맛이나 주차장의 친절함은 진료와는 관계없지만 환자경험에서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환자와 직원 모두의 문제에 귀 기울이다


가치를 정하고, 개념화와 표준화를 거친 뒤에는 실제로 환자들이 병원에서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지 조사하는 일이 필요했다. 때문에 창의센터는 환자 및 가족들은 물론 병원 직원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해야 했다. 환자와 가족들의 의견을 듣는 일은 많은 시간이 들었지만 반복될 수 있도록 명확한 문제들을 보여줬다. 창의센터는 실제로 환자를 따라다니며 환자가 병원에서 실제로 겪는 문제들을 진단했다. 김진영 센터장은 “환자를 따라다니면서 병원 내 환자의 동선(Patient journey)를 실제로 확인했다. 진료 받기 전부터 마칠 때까지 환자를 추적했다”고 설명했다. 환자가 병원에서 겪은 일을 수렴하는 방법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병원 홈페이지나 방문, 서면 등으로 접수되는 ‘고객의 소리(Voice of Customer)’도 환자경험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문제를 들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실제로 서비스를 시행하는 이들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서 창의센터는 병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의견 수렴 창구를 확보하고 있다.

우선은 각종 위원회가 참여하는 회의를 매주 진행한다. 이 중 창의센터가 참여하는 위원회 회의만 10개가 넘는다. 김 센터장은 “각종 위원회와 회의체 등 창의센터와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이 모두 20개나 된다. 위원회 중에서는 환자경험 추진위원회, 환자경험 실천위원회 등이 있고 운영위원회도 있다”며 “여기에 각종 부서장 회의, 임상과장 회의에서 발제하는 기회도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연세의료원장 및 세브란스병원장이 창의센터의 프로젝트에 귀 기울인다는 것도 강점이다. 김 센터장에 따르면, 연세의료원장과 세브란스병원장 모두 창의센터의 발제시간에 자주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월 1회 있는 조찬간담회 등에서도 창의센터의 프로젝트를 담은 유인물을 교수들을 대상으로 배포해 프로젝트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환자경험을 중시하는 다른 병원과 비교해도, 센터가 필요한 점을 알리고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다. 또한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제한이 없어서 세브란스가 환자경험과 관련된 업무에서 보다 빨리 치고 나갈 수 있었다”며 “의료원장과 병원장에 필요한 사안을 보고하는 일도 자주 있다는 것도 강점”이라고 전했다.

세브란스 창의센터의 POWER


이미 환자경험을 병원에 실현한 외국의 병원들은 O3의 원칙에 중점을 두고 있다. 환자가 자신의 증상이나 상태에 대해 설명간호사 등 단 한사람에게 한 번만 말하면 모든 프로세스에 전달되는 Only one, 진료가 시작되기 전에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세심하게 설명해주는 Orientation, 이러한 설명이 적절한 시기에 제공되는 On time이 그것이다.

창의센터는 여기에 POWER(Pleasant, Organizational, Welcoming, Easy, Respectful) 모델을 추가했다. Pleasant는 쾌적함을 뜻하며 이는 채광, 온도, 습도, 소리 등을 모두 포괄한다. 가급적 자연 채광을 사용하고 환자와 가족들이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이동형 침대의 바퀴 재질을 교체하는 일 등이다.

Organizational은 환자와 그들의 가족이 병원 측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몸이 불편한 환자에 대한 동행 안내 서비스나 설명간호사 배치가 그것이다.

Welcoming은 환자를 진심으로 응대한다는 측면에서 ‘진심 어린 배려’와 통하는 부분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환자 친화적인 인테리어를 배치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외에도 Easy는 병원을 예약하고 진료받기 쉽도록 한 것이며, Respectful은 환자가 병원에서 서비스를 제공받으면서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러한 POWER 모델은 연세의료원 산하 병원 곳곳에 구현돼 있다. 김 센터장은 “연세암병원 지하에는 아웃도어 매장이 있다. 병원에 웬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이냐는 말들도 있지만 많은 환자들이 입원하면서 드는 생각이 ‘건강할 때 여행 한 번 제대로 못 갔다’라는 것”이라며 “환자는 아웃도어 매장을 보면서 ‘빨리 회복해 등산복 사서 여행을 가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웃도어 뿐만 아니라 꿈과 희망을 판매하고 있는 셈”이라고 전했다.

연세암병원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길

환자경험을 중시하는 창의센터의 서비스는 지난 4월 개원한 연세암병원에 구체화돼 있다. 암병원 개원 당시 지향하는 ▲설명 잘하는 병원 ▲잠 잘 자는 병원 ▲통증 없는 병원 ▲기다림이 적은 병원 등을 실체화하기 위해 크고 작은 서비스에서 변화를 준 것이다. 김 센터장은 “우선은 눈에 보이는 것인 인테리어 쪽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일명 가족 친화적 가구(Family Friendly Furniture)라는 것으로 여기에는 병동뿐만 아니라 진료실 인테리어도 포함됐다”며 “뿐만 아니라 현재 암병원 뿐만 아니라 병원 전체에서 환자가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채혈 시간을 조정하고 소음이 덜 발생하는 바퀴들로 교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소아암병동 대기실에 설치된 무선 동작인식 카메라로 지루할 수 있는 병동에 재미를 입히는 등 창의센터의 아이디어는 연세암병원 곳곳에 녹아있다.

하지만, 창의센터의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창의센터는 설립 이후 그동안 추진해 온 환자경험 서비스들을 앞으로 정착시켜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the First & the Best’를 지향하는 세브란스병원이 앞으로 환자경험이라는 측면에서도 국내 최초이자 최고의 병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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